지난 7월 12일 채널A의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하 이만갑) 186회에서 황당한 주장이 나왔습니다.
북한 황해도 지역 요리전문가인 추향초 씨가 염소고기를 엿과 함께 졸여 만든 “염소엿”이라는 요리를 소개하면서 이 요리가 북한의 간부들이 먹는 보양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운곡목장에서만 염소를 기르고, 일반인들은 염소 고기를 구할 수가 없으며 염소고기가 비싸서 심지어 보지도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추향초 씨의 고향은 황해도이지만 한국전쟁이 터지고 6살 때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고 합니다. 이분은 외식업에만 약 40년을 종사한 분입니다. 따라서 추향초 씨는 북한요리 전문가일지는 몰라도 북한 사회에 대해 공부한 전문가는 아닙니다.
추향초 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에서는 염소를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많이 기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북한은 풀을 먹고 자라는 가축을 기를 것을 장려했고, 이 때 풀을 먹고 자라는 토끼와 염소 등의 사육을 장려한 것입니다.
2003년 6월 25일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스위스를 롤모델로 삼아 1990년대 중반 축산전문가들을 스위스에 보내 염소 사육 교육을 받도록 조치했다고 합니다. 2001년 3월에는 황해북도 봉산군 은정리에 대규모 염소종축장을 건설하고 2002년에는 여기 종축장에서 나온 염소를 각 도에 32마리씩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때 맞춰 한국에서도 북한에 많은 염소를 보내주었습니다.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2000년대 초중반 북한 은정목장과 약전목장 등에 염소를 보내주는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 때 받은 염소가 생산한 염소젖을 이용하여 치즈를 만들거나 요구르트를 만드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7일 <조선중앙통신>은 북한의 강동군 태잠축산전문협동농장에서 염소와 유제품 가공기지를 소개하는 보도를 했고 6월 22일 연합뉴스TV는 은정축산전문협동농장의 염소젖 가공공장을 소개했습니다.
북한에서 염소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염소 사육과 관련하여 2014년 유엔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현재 양과 염소를 합친 숫자가 약 377만 마리 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정보들을 종합해 보면 염소가 운곡목장에서만 길러진다는 주장이나 일반인들이 염소 고기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염소엿”이라는 요리가 북한 간부들의 보양식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부족합니다.
통일부가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 2011년 8월 27일자 글에 따르면 “염소엿”을 민간 보양식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데일리NK도 2011년 8월 3일 기사에서 “염소엿”과 관련 한 탈북자가 “감옥에서 나와 영양실조에 걸렸다. 그 때 가족처럼 지내던 형이 염소를 잡아 물엿에 담가 줘서 건강을 회복했다”고 회상한 것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런 정황을 봤을 때 “염소엿”이 간부들만 먹는 음식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연예오락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잘못된 내용을 내보내도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아무리 연예오락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이만갑의 경우 인기프로그램인데다가 한국인들 대부분이 잘 알지 못하고 가서 확인해볼 수도 없는 북한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만큼 사실 관계 확인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탈북자도 아니고 북한전문가도 아닌 사람의 자극적인 주장을 전혀 검증하지 않고 내보낸 것은 당사자의 책임도 있지만 방송을 내보낸 채널A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특히 2013년 9월 1일 방송된 이만갑 90화에서는 염소를 끌고 가는 북한 군인의 사진을 주제로 탈북자들이 이야기 한 적도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출연자들이 북한 민간인 가정에서 염소를 기르고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탈북자 신은희 씨의 경우에는 두만강 근처에 있는 목장에서 군인들이 염소젖을 훔쳐 먹는 모습을 봤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신은희 씨는 문제가 된 186화에도 출연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수많은 탈북자들 중에 일부는 북한에서 “염소엿”이 간부용이 아니라 민간 보양식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과 북한 곳곳에서 염소가 많이 길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왜 이 사실에 대해 침묵했을까요?
이동훈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