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교회를 가다➈ 평양장충성당 편(하)

이번 시리즈는 총 20회에 걸쳐 북한의 ‘범 기독교 교회’들을 탐방한 ‘북한교회를 가다’를 연재합니다. 남한이나 서구식 기독교가 아닌 ‘북한식 기독교’의 실상을 살펴보며 마치 초대교회 형태처럼 정착한 ‘북한식 사회주의 교회’에 대한 인식과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합니다. (최재영 목사 이메일: 9191jj@hanmail.net)

편집자 주: 통일뉴스 동시 게재

 

부활절에 다시 찾은 장충성당

2014년 4월, 부활절 아침이 밝자마자 나는 장충성당을 방문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다. 개신교 목회자가 부활절에 가톨릭 성당을 찾는 것이 이상하게 비칠 수 있겠지만 이북 영토내에 세워진 교회들을 모두 참관하겠다는 프로젝트를 세웠고, 어린시절에 가톨릭성당을 다녔던 인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다. 더구나 성당측에서는 나에게 부활절 메시지와 인사말을 간단하게 해달라는 연락을 미리 알려왔기 때문에 설레이는 마음으로 일찍 일어나 메시지 문장을 짧게 다듬는 작업을 했다. 또한 이날 갖춰 입으려고 평소에는 잘 입지 않는 로만칼라까지 미국에서부터 준비해 왔다.

지난해 방문할 무렵에는 벌써 성당 설립 25주년(2013년 10월 30일)을 맞았으니 천주교 용어로 말하자면 ‘은경축’에 해당되는 연륜이 됐다. 성당 건설계획에 따라 ‘평양시 선교구역 장충1동’ 공원옆으로 부지가 확정된 장충성당은 1988년 3월말에 착공해 6개월만인 9월에 완공됐고 연이어 10월 30일과 11월 1일 양일에 걸쳐 성당 봉헌미사를 드림으로 전후 이북 최초의 가톨릭교회로 정식 출발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지난번 방문 때는 신자들이 평일에도 성당에 찾아와 모임을 갖거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목격했었고, 주일이 되면 성당 신도회장의 주관하에 미사를 대신한 공소예절을 드리거나 기도회를 갖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번 잠시 봤던 율리아노, 카타리나, 모이세, 수산나, 벨레아인, 아네스… 등 남녀 신자들의 얼굴과 이름들이 어렴풋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개신교 목사로서 장충성당에서 부활절 메시지와 인사말을 전하는 필자. ⓒ최재영
개신교 목사로서 장충성당에서 부활절 메시지와 인사말을 전하는 필자. ⓒ최재영

 

‘신부님처럼 아주 잘 어울리십니다’

주일미사가 시작되기 1시간 전에 일찌감치 성당 마당에 도착하니 성당 신도회 김철웅 회장이 훤칠한 미남의 부회장과 함께 달려나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회색양복에 로만칼라를 갖춰 입은 내 모습을 본 김 회장이 한 마디 건넸다.

“어이구, 최 목사님을 뵈니 얼굴도 좋아지셨고 마치 신부님같이 아주 잘 어울리십니다. 우리 성당에 아주 오셔서 담당 신부님을 하셔도 되겠습니다. 하하(크게 웃음).”

“아. 로만칼라 셔츠가 보기에 괜찮습니까? 사실은 이 로만칼라가 천주교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원래 스코틀랜드 개신교 목사가 만들었지요. 그때부터 전 세계적으로 개신교회 목사님들이 먼저 착용하고 다녔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저는 ‘끌라지’를 천주교에서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김 회장은 검은 셔츠에 목에 흰 띄를 착용한 로만칼라를 ‘끌라지(Clergy)’ 라고 불렀다.

“오대양 육대주 세계 각국의 목사님들은 색깔과 모양도 다양한 셔츠에 로만칼라를 하고 다닙니다.”

“참 신기합니다. 새로운 사실 하나 배웠습니다.”

“제가 평소 이런 질문을 가끔 받아서 로만칼라의 유래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천주교 신부님들이 입고 다니는 로만칼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폐회한 1965년부터 시작됐습니다.”

“남조선에서는 목사선생들도 이렇게 입고 다닌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많은 분들이 천주교 사제만 입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남쪽에는 성공회와 루터교, 감리교에서도 많이 합니다. 그렇다고 개신교에서 무조건 모두 다 하는 것은 아니고 침례교와 장로교는 좀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편이지요. 최근엔 천주교 사제들과 구별한 개신교목사들의 새로운 복장이 또 나왔습니다.”

스페인에서 온 다큐멘터리 촬영 팀을 만나다

성당안으로 들어가자 몇몇 성가대원들이 연습을 마무리하는 중이었고 미사를 준비하느라 회중석을 바삐 오가는 복사들과 여성신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성당내부를 다시 한번 둘러보니 벌써 지어진 지 25년이 되다보니 여기저기 허름한 구석도 보였고 보수작업이 필요해 보였으며 신자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공간들도 부족해 보였다. 김 회장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대뜸 내 귀에 대고 ‘잠시 후 스페인에 있는 유명한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촬영팀이 방문하기로 했다’고 귀띔해 주었다.

“외국 방송국에서 무슨 일 때문에 여길…?”

“가끔 외국 방송국에서 오긴 합니다. 몇 해 전엔 우리 성당에서 매년 드리는 크리스마스 미사를 찍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아. 그래요? 성탄절 행사를 해마다 어떻게 드립니까?”

“한 10년전부터 계속 해오고 있는데 이날 남자들은 양복을 입고, 려성들은 조선옷을 곱게 차려입고 각지에서 200명 신자들이 모여듭니다. 미사를 드린 후엔 우리끼리 모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축제를 벌이는데 외국 방송국에선 그런 모습이 신기한가 봅니다.”

“성탄절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축제를 벌인다는 소식은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성탄절 미사 후에는 아주 흥겹습니다. 성가대 공연도 있고 연극도 하고 음식도 나눠 먹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방송용 카메라를 둘러멘 외국 기자 서너 명이 성당안으로 들이닥쳤다. 마침 기자들 일행 중에는 평양의 행사장이나 식당에서 자주 마주쳤던 스페인 출신의 낯익은 중년 ‘미스터 페레스’가 섞여 있었다. 태국의 ‘조선우호협회(약칭 KFA)’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알레한드로 페레스(Alejandro Pérez)’라는 이름의 친북파 인사인데 워낙 풍채가 좋아 금세 눈에 띄었다. 그는 북을 열심히 방문하는 탓에 ‘조선은 하나다’라는 의미의 ‘조선일(朝鮮一)’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으며 영어도 곧 잘 했다. 그도 나를 알아보며 다가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으며 이날 그는 기자들을 따라다니며 촬영을 돕고 있었다.

“오늘 저 사람들은 미사드리는 장면을 찍을 것이고 저희들(신도회장, 부회장)도 찍을(인터뷰)예정인데 아마 최 목사님에게도 (인터뷰) 요청할 수 있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취재팀들은 신자들이 부활절 예식을 올리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찍었으며 신도회 간부들과 깊은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미사시간에는 앞자리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찍었고 미사를 마친 후에도 자신들이 궁금해하는 북의 종교현황에 대해 ‘미국에 거주하는 목사의 입장에서 어떻게 보느냐’면서 이것저것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내가 얼핏 볼 때 취재팀들은 나름대로 북의 종교 실상에 대해 매우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신자들이 미사를 드리는 모습을 촬영하는 기자의 모습. ⓒ최재영
신자들이 미사를 드리는 모습을 촬영하는 기자의 모습. ⓒ최재영
미사를 마친 후 스페인 다큐멘타리 촬영팀과 인터뷰하는 모습. ⓒ최재영
미사를 마친 후 스페인 다큐멘타리 촬영팀과 인터뷰하는 모습. ⓒ최재영
다큐멘타리 촬영을 모두 마친후 기념촬영(좌측은 알레한드로 페레스, 우측은 다큐멘터리 감독). ⓒ최재영
다큐멘타리 촬영을 모두 마친후 기념촬영(좌측은 알레한드로 페레스, 우측은 다큐멘터리 감독). ⓒ최재영

 

가톨릭과 개신교가 동일한 성경책을 사용 중

다큐멘터리 취재팀이 북측 관계자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니 ‘지금까지 조선가톨릭협회가 해 온 일들은 어떤 일들인가?’에 대한 질문과 답변들도 오가는 소리가 들렸다.

또한 북에서 사용하는 성경책은 어떤 경로로 만들어졌으며 신자들은 자신들의 신앙생활 향상을 위해 주로 어떤 서적들을 읽느냐는 질문도 이어졌다. 마침 진한 커피색의 회중석 장의자 위에는 성경책들이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는데 유심히 바라보니 개신교회인 봉수교회와 칠골교회에서 현재 사용하는 책과 동일했다. 책을 들춰보니 ‘조선기독교도련맹 중앙위원회’에서 공동번역본으로 만든 ‘성경전서’였다. 이로써 북에는 현재 신구교가 성경을 같이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조선가톨릭협회’는 그 동안 신자들을 위해 1991년 이후 지금까지 ‘조선천주교인협회 중앙위원회’ 라는 명의로 여러 권의 천주교 서적을 출판했는데 이중에는 교리서 두 권과 기도서 한 권이 포함됐다.「천주교를 알자」라는 교리서는 장충성당 신도회장을 맡았던 차성근과 엄진섭, 김은주 3인이 공동 집필한 교리해설서였다. 이 책은 원래 한자로 된 책이었는데 차성근 신도회장이 주도해서 북측 표기법으로 번역작업을 했는데 출간되자마자 교인들이 늘 들고 다니며 읽는다고 한다. 차 회장이 이 책을 만든 계기는 한자를 모르는 젊은 세대 신자들과 새로 입교한 신자들이 교리를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출판한 것이라고 한다.「신앙생활의 걸음」은 ‘조선천주교인협회’ 국제부 소속의 고영희가 집필한 책으로 천주교를 초보적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해왔으며 이 두 권 모두 1991년 10월 1일자로 발행됐다.

「가톨릭기도서」는 원래 남측 가톨릭에서 발행한 책인데 북측 표기법에 맞춰 그대로 수록했다. 이 기도서가 발행되기 전에는 몇몇 신자들이 사용하고 있던 아주 낡아빠진 공과책을 이용했으며, 1998년 들어 서울대교구 장익 신부가 미사경본을 기증한 이후에는 이 책을 줄곧 사용해왔다고 한다.

또한 발행 날자는 확인할 수 없으나「선태과 실천」이라는 12쪽짜리 소책자도 ‘조선천주교인협회 중앙위원회’ 이름으로 간행됐는데 신자 교육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였으며 북측이 강조하는 민족통일의 당위성과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의 정당성을 성서에 근거해 설명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장충성당과 봉수교회는 조선기독교도련맹에서 발행한 같은 성서를 사용하고 있었다. ⓒ최재영
장충성당과 봉수교회는 조선기독교도련맹에서 발행한 같은 성서를 사용하고 있었다. ⓒ최재영
신구교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성경책 내부 모습. ⓒ최재영
신구교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성경책 내부 모습. ⓒ최재영
장충성당 신자들이 사용하는 가톨릭성가집. ⓒ최재영
장충성당 신자들이 사용하는 가톨릭성가집. ⓒ최재영
가톨릭 성가집 내부 모습. ⓒ최재영
가톨릭 성가집 내부 모습. ⓒ최재영
남측에서 발간한 가톨릭기도서. 이 책을 북측에서 개편해 사용하고 있다. ⓒ최재영
남측에서 발간한 가톨릭기도서. 이 책을 북측에서 개편해 사용하고 있다. ⓒ최재영

 

사제처럼 능숙하게 집전하는 김철웅 신도회장

오전 10시 정각이 되자 성당안에는 미사가 아닌 공소예절이 시작됐다. 어느덧 스물 다섯 살 청년의 모습을 지닌 장충성당은 겉으로 볼 땐 큰 변화가 없어 보이는 듯했으나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의 모습을 일일이 살펴보면 절제되면서도 농익은 듯한 분위기가 느껴지며 진리를 갈급해 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신도들의 편균 연령은 약간 낮아졌으며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되고 있는 듯 했다. 마침 신도회 간부들은 물론 가톨릭협회 간부들조차 이미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라 그런지 전체적인 분위기는 나름대로 젊고 새롭게 보였다.

그 동안 연로한 신자가 대부분이었으나 어떤 과정으로 입교했는지 알 수 없으나 젊은 신자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이날은 기독교의 최대 명절인 부활절인데도 불구하고 담당 사제가 없어 그런지 쓸쓸한 분위기가 느껴졌으며 오늘따라 미국에서 자주 방문하는 박창득 신부님도 안보여 가슴 한켠이 저며오는 듯했다.

시작 종이 울리자 김철웅 신도회장이 예식을 집전하기 시작했는데 어찌나 능수능란한지 마치 중견 사제처럼 보일 정도였다. 김 회장 좌우에는 장년신자 두 명이 복사역할을 하며 집례를 도왔고 4명으로 구성된 성가대의 찬양은 숫자는 약했으나 봉수교회 못지않게 매우 실력있어 보였고 우렁찼다. “원래 우리 장충성당은 성모님을 모신 성당이기 때문에 신자들 대부분이 모두 여성신자들입니다”라고 증언한 조선가톨릭여맹위원장의 말을 뒷받침하듯 이날도 여성 신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강론 직전에 김 회장은 회중석을 향해 나를 소개하더니 앞으로 나오도록 해 부활절 메시지와 인삿말을 전하도록 배려했다. 나는 단으로 나가지 않고 그냥 제단 아래 중앙통로에 서서 미리 준비한 짤막한 메시지를 원고 없이 전했다.

“오늘 장충성당 신자 여러분과 함께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미사를 올리게 돼서 기쁘게 생각합니다….(중략)…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남과 북이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대결하기보다는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 우리 조국의 평화통일이 앞당겨지도록 여러분들이 큰 역할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진리야말로 우리 민족의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분단의 장벽이 허물어질 수 있게 하는 비결이 들어 있으며 큰 위로와 소망을 주는 사건입니다.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야 부활의 기쁨이 주어지는 것처럼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고난을 잘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메시지를 마치자 회중들은 힘찬 박수로 화답했다. 이어서 김철웅 회장의 강론이 시작됐는데 오늘따라 예수의 부활보다는 성모 마리아에 관한 언급이 더 많았다.

“…우리 북과 남이 모두 이 성당을 거룩하신 성모님께 봉헌했으니 북남의 교회가 성모님의 은혜로 하나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우리들 마음 속에 확신을 가지고 성모님을 모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며…”

신도회장의 강론은 기성 가톨릭 교리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정치적인 발언은 일절 없었으며 가톨릭의 특징인 성모신심도 남달리 돈독해 보였다. 230년전 이 땅에 최초로 천주교가 들어올 때도 사제가 없었고 성체도 없었으나 오직 마음속에 천주를 향한 믿음과 성모신심이 가득해 시작했듯, 비록 장충성당에도 사제도, 성체도 없으나 신자들과 간부들 모두가 성모신심이 확고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김철웅 신도회장이 사제를 대신해 복사들의 도움을 받으며 부활절 예식을 집전하는 모습. ⓒ최재영
김철웅 신도회장이 사제를 대신해 복사들의 도움을 받으며 부활절 예식을 집전하는 모습. ⓒ최재영
회중석 앞자리에 앉아 부활절 예식에 참석하고 있는 필자(우측 맨앞자리). ⓒ최재영
회중석 앞자리에 앉아 부활절 예식에 참석하고 있는 필자(우측 맨앞자리). ⓒ최재영
외국인과 해외교포들도 부활절예식에 참석한 모습. ⓒ최재영
외국인과 해외교포들도 부활절예식에 참석한 모습. ⓒ최재영
강론이 끝나고 헌금바구니를 돌리고 있는 헌금위원. ⓒ최재영
강론이 끝나고 헌금바구니를 돌리고 있는 헌금위원. ⓒ최재영

 

‘전국적으로 신자들이 몇 명이나 됩니까?’

은혜로운 분위기에서 미사가 끝나자 특별한 순서없이 신자들 대부분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신도회의 몇몇 간부들과 다시 모여 못다 나눈 대화를 계속 이어갔으며 촬영 팀들은 계속 남아 우리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는 궁금하게 생각하는 질문들만 몇 가지 골라 이것저것 물었다.

“오늘 보니 70명 정도 오셨는데 평소에도 이렇게 참석합니까? 원래 성당에 나오는 신자들이 모두 몇 명이나 됩니까?”

“절기 때는 200명이 참석하고 평소에는 70-80명 정도 참석합니다. 저기 사무실 세례책자(세례대장)에는 그 동안 우리 성당에서 세례받은 신자들 명단이 800명 넘게 기록돼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꾸준하게 나오는 사람은 모두 300명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그래도 상당히 많군요. 담당신부님이 상주하고 계신다면 더 많을텐데 많이 아쉽습니다. 저분들 중에는 전쟁 이전에 세례를 받은 구교우뿐만 아니라 성당 건립이후 새롭게 영세 입교한 신자들이 포함된 것이겠지요?”

“아. 그거야 뭐 그동안 우리 신도들의 평소 염원이고 신부님을 잘 모시고 미사를 드려야 원칙이지만 모실만한 형편이 안되니… 그럴수록 자체적으로 더 신심을 모아 신도가 해야 할 도리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처음에는 신도들을 찾아 다녔지만 지금은 신도가 되겠다고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아마 전국 각지에 있는 신자들을 모두 합치면 3천명이 조금 넘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내가 확보한 자료에 의하면 해방 당시 북에서 신앙생활하던 천주교 신자는 대략 5만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대부분의 사제와 수도자, 수녀들은 월남했고 북에 남아있는 신자 가운데 생존자는 거의 없고 남아있는 분들은 대부분 활동이 불가한 고령이다.

“제가 알기로는 남측 가톨릭교회에서 북측지역인 평양교구와 함흥교구, 덕원자치수도원구 등 3개 교구를 현재 관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 시기까지 이북에 있었던 성당들은 사제도 한 명 남지 않아 텅 빈 상태를 남측에서는 ‘침묵의 교회’로 부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물론 잘 알고 있으나 그 문제는 우리 성당 신도회에서 관여할 문제가 아니고 협회(조선가톨릭교협회 지칭)소관입니다. 남쪽에서는 우리 공화국 영토에 있던 성당들을 자꾸 ‘침묵의 교회’다, ‘침묵의 교회’다 말하는데, 왜 우리 교회가 ‘침묵의 교회’입니까? 오히려 일제시대와 조국해방전쟁(6.25전쟁) 시기를 전후해서 가장 많이 제국주의자들의 앞잡이 노릇을 한 종교가 바로 천주교 아닙니까?”

순간, 북측에서는 ‘침묵의 교회’라는 말을 사용하는 걸 싫어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됐다. 북측에서 발행한「가톨릭기도서」는 원래 남측 가톨릭에서 발행한 책인데 그걸 가져와 북측 표기법으로 옮겨 인쇄한 것이다. 그 책의 내용 중에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가 있는데 북측 가톨릭에서는 그 부분을 의도적으로 삭제해 버리고 그 대신 ‘조국통일기원미사’를 대체해 첨부할 정도로 ‘침묵의 교회’라는 말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전쟁시기의 시대적 상징성을 대변하는 사건이지만 북측에서는 이것을 ‘남측의 일방적 표현’으로 받아들이며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아. 그렇겠군요. 그럼 이북 전체의 천주교 신자들은 모두 얼마나 됩니까?”

“우리 조선가톨릭교회는 남측 가톨릭과는 달리 자체적으로 평양지구, 동해지구, 서해지구 이렇게 3개 지구로 나눠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각 지역마다 성당이나 공소가 건축돼 있나요? 그분들은 주일에 어디서 모입니까?”

“각 지구마다 가정 예배처소가 있으며 주일이면 가정교회로 모여서 묵주심공하면서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합니다. 평소에도 신자들끼리 모여 기도와 신공을 드리고 공부도 합니다. 지구에 속한 신자들을 위해 남포와 원산에 조만간 공소를 세울 예정입니다.”

“각 ‘교구’를 ‘지구’라고 부르시는 것이지요?”

“맞습니다. 교구대신 자체적으로 지구협회가 있습니다. 3개 지구 중에 신도가 가장 많은 곳은 서해지구인데 신자들이 1500명 정도 됩니다. 평양중심으로 조직된 ‘평양지구’, 강원도 원산지역을 중심으로 만든 ‘동해지구’, 평안도와 황해도지역을 중심한 ‘서해지구’ 중에서 서해지구가 변함없이 가장 우세합니다.”

그러나 3개의 자체교구를 운영해도 현재 단 한 명의 성직자나 수도자도 없으며 장충성당 외에 그 어떤 성당이나 공소 혹은 수도원이 아직도 없다. 정통 가톨릭교회는 평신도-수도자-성직자로 구성되는 신앙공동체가 운영되어 7성사를 모두 집전해야 하고 교계 제도를 갖춰야 하는데 아직 이북의 가톨릭 커뮤니티는 이와 같은 온전한 단계에는 못 미치고 있었다.

‘북남합작 성상(聖像)조각할 때처럼 힘을 모읍시다’

나는 북의 가톨릭관계자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꺼내려고 준비했던 말이 갑자기 생각나 화제를 바꿨다. 화강석 개발을 위해 7년전에 설립된 남북합작 석재공장에서 남과 북의 조각가들이 수시로 만나 천주교 조각상을 만든 이야기를 꺼냈다.

“김철웅 선생이 신도회장을 맡기 전이겠지만 2008년 여름에는 그래도 분단 이후 최초로 남과 북의 조각가들이 힘을 합해 ‘성(聖) 모자상(母子像)’을 조각하지 않았습니까?”

“아. 저도 그 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 참, 그런데 지금은 그 작품이 어디 모셔져 있습니까?”

“네. 제가 알기로는 마산교구 어느 성당이 봉헌식 할 때 그 교회에 모신 걸로 압니다.”

“그때 우리 장 회장님(조선가톨릭협회 장재언 회장)이 각별히 관심을 가지셔서 일이 잘 성사됐지 않았습니까? ‘봉동석재소(개성공단 옆에 있는 ‘아리랑 태림석재합영회사’)’에서 4개월 동안 정성껏 만들어 완성했잖습니까?”

“아. 그러게요. 남북의 가톨릭교회가 이렇게 힘을 합치면 그것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지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북남합작 성상(聖像)조각할 때처럼 이제 북남이 다시 힘을 합쳐야 합니다.”

성 모자상 조각품은 ‘아리랑석재’의 조형파트 자문을 맡은 경남대 임형준 교수가 2006년 개성에서 북측 조각가들과 합의해 시작됐으며, 남측에서 4명, 북측에서 8명이 참여해 완성했다. 조각상은 개성에서 마산으로 옮겨져 마산교구 월영성당 봉헌식 때 본당 사제관 앞에 설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장충성당 사제관 모습. 성당설립 이래 지금까지 상주하는 담당 사제가 없다. ⓒ최재영
장충성당 사제관 모습. 성당설립 이래 지금까지 상주하는 담당 사제가 없다. ⓒ최재영
남북합작으로 제작된 성 모자상이 마산교구 월영성당 사제관 앞에 설치된 모습. ⓒ최재영
남북합작으로 제작된 성 모자상이 마산교구 월영성당 사제관 앞에 설치된 모습. ⓒ최재영

 

25년간 북의 가톨릭 공동체를 이끈 인물들

계속해서 나는 북의 가톨릭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일꾼들에 대해 무엇보다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알아봤다. 장충성당 역대 신도회장을 살펴보면 초대회장에는 박경수(바오로)가 선임되어 장충성당 건축에 앞장섰고 그후 1990년 여름에 지병으로 선종했다고 한다. 그 뒤를 차성근(율리아노) 회장이 이어받아 주일 공소예절을 주관하며 활동하던 중 임기를 마치고 그의 후임으로 김영일 회장(시몬)이 선임되었다. 김 회장 역시 사제를 대신해 공소예절을 집전하며 왕성하게 활동하던 중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2010년에 들어서 현재의 김철웅 이 선임되어 젊고 활기차게 신도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내가 장충성당을 방문하기 전에 그동안 ‘조선가톨릭협회(이하 협회)’를 이끌어 온 장재언 회장과의 면담을 원했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치료중이라는 말을 들어 성사되지 못했다. 장 회장은 지난 25년간 변함없이 ‘협회’의 대표직 뿐 아니라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각 종교단체들의 연대 모임인 ‘조선종교인연합회’의 총수장직도 맡았다.

가톨릭대표와 종교계 전체대표를 동시에 맡아 북의 모든 종교단체를 아우르며 조율하는 임무를 맡은 장 회장의 본명은 장재철이며 영세명은 사무엘이고 나중에 장재언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그는 ‘협회’를 창설해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동시에 ‘조선종교인연합회(KCR)’도 창설해 초대 회장직을 지금까지 맡아왔다. 한때는 ‘조선적십자사’ 회장직도 겸직하는 등 탁월한 관운과 지도력을 보여주며 북의 대내, 대외 종교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이처럼 가톨릭계와 전체 종교단체를 좌지우지해 오며 국제사회 종교단체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초를 닦은 그는 국제기구인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와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와도 연대하거나 남측의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와도 교류하는데 큰 힘을 써왔다.

특유의 추진력과 설득력을 지닌 장 회장은 복잡한 종교정책을 진두지휘하던 과정에서 지병을 얻어 건강을 염려할 정도의 상태까지 이르게 되자 자신의 뒤를 이을 수 있는 후계자를 선정해 자신의 경험과 정책을 가까이서 배우도록 했다. 장 회장 가까이에서 실무를 배우며 협회 부회장과 조선종교인협의회 상무위원직을 맡았던 인물이 바로 강지영이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장 회장의 후계자로써 북의 종교정책을 익히던 중 2011년 10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장에 발탁돼 대남 업무를 관장하게 됐다.

한편 장 회장은 2015년 4월, 북경에서 열린 남북 종교단체들과의 만남을 갖고 귀국했으나 다음달인 5월, 뇌출혈로 건강이 악화돼 더 이상의 직무수행이 불가능해 모든 일선에서 물러나 사퇴했다. 그 후 5개월의 공백을 깬 지난 2015년 10월, 조평통 서기국에 있던 강지영 국장이 나의 예상대로 장재언 회장의 바톤을 이어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겸 ‘조선카톨릭협회’의 회장(중앙위원회 위원장)에 전격 취임했다. 강 위원장 밑에서 협회의 실무적인 총무 역할을 맡고 있는 인물은 서철수 서기장이다.

미사와 인터뷰를 모두 마친 후 장충성당 신도회장(우), 부회장(좌)과 함께한 필자. ⓒ최재영
미사와 인터뷰를 모두 마친 후 장충성당 신도회장(우), 부회장(좌)과 함께한 필자. ⓒ최재영
건강하던 시절의 장재언 회장이 영국에서 방문한 Dr. Rowan Williams 내외를 맞이한 모습(2004년). ⓒ최재영
건강하던 시절의 장재언 회장이 영국에서 방문한 Dr. Rowan Williams 내외를 맞이한 모습(2004년). ⓒ최재영
장재언 회장(앞줄 우측에서 두 번째)의 마지막 공식 활동 모습(2015년 4월 24일). ⓒ최재영
장재언 회장(앞줄 우측에서 두 번째)의 마지막 공식 활동 모습(2015년 4월 24일). ⓒ최재영
장 회장의 뒤를 이은 강지영 회장이 금강산 남북종교인모임에 참석한 모습. 바로 뒤는 서철수 서기장(사진제공: 통일뉴스 김치관). ⓒ최재영
장 회장의 뒤를 이은 강지영 회장이 금강산 남북종교인모임에 참석한 모습. 바로 뒤는 서철수 서기장(사진제공: 통일뉴스 김치관). ⓒ최재영
'조선카톨릭협회' 서철수 서기장의 모습. ⓒ최재영
‘조선카톨릭협회’ 서철수 서기장의 모습. ⓒ최재영

 

북측 가톨릭교회가 남측 가톨릭에 간절히 원하는 것

사회주의 가톨릭은 아무래도 활동무대가 제한되다보니 전쟁 전후에 믿었던 기존의 신자를 발굴해 그들을 조직화하려는 일 외에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통해 새로운 신자를 확보하려는 노력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철저한 조직사회인 북 체제의 특성상 모든 사람들은 관리조직에 들어가 있는 시스템인데 장충성당 지도자들과 신자들이 그 조직을 뚫고 들어가 적극적으로 선교할 수 있는 상황이나 여건은 안되기 때문에 남측에서 기대하는 외적 성장은 기대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북측 가톨릭 커뮤니티는 남측 가톨릭을 향해 엄청난 돈다발과 구호물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당장 상주할 사제나 수녀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사제후를 양성하기 위한 신학생 교육도 아니었다. 북측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는 종교문제가 아니라 의외로 외세문제와 주권문제였다. “흡수통일을 염두에 둔 남측 집권세력이 민족공조보다는 외세에 의한 사대주의적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남측이 과감히 전쟁연습을 중단한다면 종교적, 정치적 관계를 정상화하고 교류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촌에 존재하는 종교는 수천 가지가 넘을 정도로 다양한데 만일 그 종교를 믿는 사회가 자국 민족의 자주성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그 종교는 이미 존재 의미가 상실 된 것으로 봐야 한다. 자기 민족을 구속하고 압박하는 외세를 거부하지 않거나 사회정의를 외면한다면 그 종교는 아무리 인류 보편적 고등종교라 해도 존재가치를 보존할 수 없다.

일제 36년에 이어 미국은 우리 민족을 60년 이상 정치, 군사, 문화, 경제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미국은 그 동안 주권을 지키려는 나라들을 매우 싫어해 왔으며 특히 자주성 실현을 위해 대미투쟁의 최일선에 있는 북한과는 첨예한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측 가톨릭은 미국을 향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며, 동족이자 통일의 파트너로서의 북과는 어떻게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지를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측 가톨릭교회가 가장 먼저 북에 대한 적대적, 부정적 관점을 버리고 민족의 앵글에서 통일지향적 정책을 추진해야 하며 그 어떤 종교보다 앞장서 북에 대한 객관적 시각과 안목을 지녀야 한다.

또한 북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더불어 그 체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며 민족공조의 선두자자 역할을 뿐만 아니라 남북문제와 통일문제에 있어 비본질적인 것에 매달리지 말고 문제의 핵심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화해’는 정치적 이슈가 아닌 복음적 이슈이니만큼 먼저 상대의 입장과 필요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출발해 일회성 퍼포먼스나 이벤트성 남북 교류에서 벗어나 본질에 접근한 화해와 협력의 단계로 나가야 한다.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면 남측 고위성직자가 평양에 가서 몇 번 미사를 집례하거나 회의를 했다고 해도 북은 요지부동일 것이다. 이제는 친미반공의 성향에서 과감히 벗어나 우리 민족을 향해 통일지향적인 신학적, 사목적 견해를 제시해 주어야 하며 북측을 향한 내재적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비록 세계국가를 상대로 하는 바티칸 종교지만 민족 공동체로서의 인식과 더불어 자주성을 회복하는데 앞장서야 하며 더 넓은 관점에서 북측이 세계적 공교회 커뮤니티로의 진입을 시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최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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