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 문제’ 터뜨린 트럼프-아베 왜 지금?

 

일본을 찾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 관련한 ‘초대형급 말폭탄’을 잇달아 터뜨리면서 또 다시 한반도의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인북한납치피해자의 귀국문제를 언급하며 대북 제재여론을 부채질해 북미대결을 유리하게 끌고 가겠다는 포석이다.

11월5일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의 첫 일정으로 토쿄도(東京都) 요쿄타(橫田) 미군기지를 찾았다. 상의를 군복으로 갈아입고 200명에 달하는 주일미군 병사들의 열렬한 환호성 속에 연설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미국은 압도적인 능력과 자금을 구사해 항상 승리할 것. 미국의 결의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라면서 북한을 겨냥한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 방문 이전부터 일본에 방문한 백악관의 특별 고문인 트럼프의 딸 이방카를 극진히 대접하면서 미국과의 돈독한 관계를 강조한 바 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 방일 이후에도 ‘도널드의 친구 신조’를 자처하며 융숭한 골프 외교에 나섰다.

일본 총리관저는 토쿄올림픽 경기장으로 사용될 예정이며 본래 정회원만 사용할 수 있는 사이타마(埼玉)현의 카스미가세키컨트리클럽 골프장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유명 프로골퍼를 대동한 채 골프를 즐기는 모습을 페이스북 공식계정에 올리기도 했다. 당장 총리가 권한을 남용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지만 일단 ‘트럼프 국빈대접 연출’만큼은 성공한 모양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래 일본에서 처음 열리는 미일 정상회담. 총선을 막 통과한 아베 총리는 지지율 굳히기를 위한 ‘대국민 이벤트’로 회담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일 정상회담은 ‘북한납치피해자 문제’를 중심으로 적어도 수개월 전부터 차근차근 조율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9월 19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이 자국 스파이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기 위해 선량한 13살 일본인 소녀를 납치했다”고 말했다. 이후 9월 21일 아베 총리는 미일 정상회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할 때 요코타 메구미(横田めぐみ) 씨의 부모님과 납치피해자가족을 만날 시간을 내줬으면 좋겠다”라고 제안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만나겠다”라며 승낙한 것으로 전해졌다.

11월 6일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메구미 씨의 어머니 등으로 조직된 납치피해자 가족모임, 일본으로 귀환한 생존 납치피해자 등을 만났다. 미국 대통령과 납치피해자 가족의 만남은 부시 행정부(2006년), 오바마 행정부(2014년)에 이어 3번째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납치된 사람들이 돌아갈 수 있도록 아베 총리와 힘을 합쳐 가겠다”라고 말했다. 납북피해자 문제 해결에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한 아베 총리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정황을 종합해보면 이번 만남은 언론에 알려지기 훨씬 이전부터 미일 양국 간 조율을 거쳤을 가능성이 높다. 오는 11월 15일은 당시 13살이었던 메구미 씨가 북한으로 납치된 것으로 알려진 지 40주년이 되는 날. 이런 정황은 이번 만남이 미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사전에 기획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서로의 의사를 확인한 내용이 언론에서 흘러나왔지만 이 역시 양국의 분위기를 달구려던 연출일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일본의 납치피해자 문제는 요코타 메구미 실종사건을 거치며 공론화됐다. 1977년 11월 15일 동해와 맞닿은 니이가타(新潟) 현의 한 마을에서 13살의 여중생 요코다 메구미 씨가 집에 돌아오지 않은 채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메구미 씨의 가족들은 출처를 밝힐 수 없는 ‘증언’을 토대로 메구미 씨가 북파공작원에 의해 선박에 실려 북한으로 납치됐을 거란 주장을 펼쳐왔다.

2002년 9월 17일은 온갖 의혹만 무성하던 납치피해자 문제의 분기점이었다. 당시 코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는 북일국교정상화 논의를 위해 평양을 찾았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납치를 인정하며 사과를 표명했고 양국 정상은 일본의 식민지배 사과와, 북한의 핵동결 등의 내용을 담은 북일평양선언에 서명했다. 북한 측은 북한납치피해자에 대해 생존 8명, 사망 5명, 북한입국이 확인되지 않는 인원은 2명이라고 발표했다. 메구미 씨는 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04년부터는 생존자 명단에 있던 납치피해자들이 일본으로 귀환했다.

하지만 일본 측에서는 북한 측이 보내온 메구미 씨의 유골을 DNA감정 해본 결과 메구미 씨의 유골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2005년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핵계획포기를 명기한 공동선언이 채택됐지만 미국이 북한에 대규모 금융제제조치를 가하면서 북일평양선은 뒤집어졌다. 이에 반발한 북한이 2006년 핵실험을 재개하고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자 일본 정부는 북한 측과의 공식 통로를 닫았다. 이후 북일국교정상화와 납치피해자 문제는 좀처럼 진척되고 있지 않다.

일본 정부가 납북피해자 문제가 해결돼야 북일국교정상화 논의가 재개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 반면 북한 측은 이미 문제는 해결됐다고 주장해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7년 기준 일본에서 실종신고 된 인원 중에서 대략 20명 남짓을 납북피해자로 추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10월 11일 지지통신은 지난 9월 9일 건국기념일을 맞아 평양을 찾은 안토니오 이노키(アントニオ いのき) 참의원을 필두로 한 방북단의 발언을 인용해 납치문제에 관한 북한의 입장을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리주 조선노동당 부위원장은 “아베 신조 총리는 2002년 코이즈미 총리 방북으로 해결된 납치문제를 장난삼아 정치이용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납치문제에 대한 북한과 일본의 주장이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음이 확인된 것.

그렇다면 왜 트럼프 대통령이 방일한 하필 지금 납치피해자 문제가 불거진 걸까. 시점이 매우 절묘하다. 7일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이 예정된 가운데 ‘한반도의 길목’인 일본에서 북한을 자극하려는 미일 정부의 공동 전략일 개연성이 높다. 생각해보면 당초 2002년 북한과 일본 간의 국교정상화를 둘러싼 양자회담이 열렸을 당시에는 미국이 끼어들 여지가 아예 없었다.

하지만 이후 일본 정부가 미국과의 연계방침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반북 여론’의 판이 크게 조성됐다. 이는 식민지배에 대한 진심 어린 사죄와 배상에는 입을 싹 닫으면서 납치피해 문제를 부각해 본질을 흐리려는 일본 정부와,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 정부의 노림수가 담겨있다고 봐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더구나 납치피해자 문제는 그 진상이 아직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일본 측에서는 북한 측이 납치피자들에 대해 한국에 잠입하기 용이한 일본인 스파이로서 양성, 한국에 잠입하는 북한 측 스파이에게 일본어와 일본문화를 교육하는 가르치는 선생의 역할을 부여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정만 하고 있다. 2002년부터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도 상황이 이렇다. 북한 측과 일본 정부 간에 제대로 된 대화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강력한 반증이다.

이처럼 북일국교정상화에 임하던 일본 정부가 갑자기 궤도를 벗어나 미국을 등에 업고 국제적 공론화에 나선 데에는 명백히 특정한 의도가 있다. 일본열도를 지렛대 삼아 한반도의 여론을 뒤흔들려는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를 외치는 무기 팔이 장사꾼 트럼프 대통령의 장사 전략을 아베 총리가 옆에서 열심히 거드는 모양새다.

만약 미국과 일본이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를 자국의 이익에 맞게 휘저으려 하는 계산이 깔려있다면 그 행동이 불러올 참상을 깊이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트럼프 규탄집회’를 가로막고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온 국민이 성원 해 달라”는 정부의 공식입장은 매우 납득하기 힘들다.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고향인 미국을 비롯해 지구촌 도처에서 ‘트럼프는 나가라’라는 구호가 왜 터져 나오고 있는지, 그 민심의 무게를 지금이라도 가늠해야 한다. 트럼프의 방한을 심각하게 걱정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솔직하게 전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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