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 윤이상 서평]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

<내 남편 윤이상>을 읽고

곧 2월 9일이면 평창 동계올림픽이 시작된다. 평창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단일팀이 구성되어 남북의 선수들이 서로 섞여 훈련하거나 서로의 생일을 축하하는 모습, 골을 넣고 한데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훈훈하다. 사실 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평가전 경기를 보며 누가 북녘 선수인가 마음속으로라도 좀 더 응원을 보내고 싶어 알아보기 위해 유심히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남녘 선수와 북녘 선수를 구분할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오늘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은 분단 이전을 겪어보지 못했다. 원래 하나였던 민족이 외세에 의해 갈라지게 된 것이 분단이고, 다시 원래대로 하나가 되는 것이 통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 자신은 분단된 나라에서 나고 자랐기에, 분단이 자연스럽고, 통일이 큰 변화이지 않은가.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그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 눈에 들어온 책이 <내 남편 윤이상>이다.

<내 남편 윤이상>은 윤이상 선생님의 아내인 이수자 선생님께서 쓰셔서 1998년에 창작과 비평사에서 출판된 책이다. 1995년에 윤이상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후 1998년 탄생 80주년을 기념하며 이수자 선생님께서 윤이상 선생님의 업적을 기록하기 위하여 쓰셨다. 서문을 보면 사후에도 반북이념공세가 심하여 윤이상 선생님의 생애와 업적을 어지럽히는 시도도 있었던 듯 하다. 지금도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윤이상 선생님에 대해 시비를 걸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수자 선생님이 책을 쓰시며 보람도 넘쳤겠지만, 또 얼마나 슬픈 마음으로 쓰셨겠는가,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1. 윤이상 선생님의 생애

윤이상 선생님은 독일을 기반으로 한 작곡가로서 현대음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음악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지만, 현대음악에서 동양인 음악가를 꼽을 때 지금도 첫 번째로 꼽히며, 작곡에서는 윤이상 선생님의 곡을 듣고 분석하는 공부를 한다고 한다.

윤이상 선생님은 1917년생으로, 1935년 에 일본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작곡을 배운 후, 한국으로 돌아와 고등학교 및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음악 및 작곡을 교육하였다. 1957년, 40세라는 늦은 나이에 베를린으로 유학하여 1959년부터 유럽 현대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 후 뮌헨 올림픽 개막 공연 오페라를 작곡하는 등 현대음악의 5대 거장으로 꼽히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곡가가 되었다. 그러나 사실 나는 남북관계와 통일문제에 관심을 두기 전까지 윤이상 선생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친일 작곡가와 친일 시인 이름은 알아도 민족이 낳은 위대한 음악가를 분단 때문에 모르고 살아간다.

윤이상 선생님이 창작 활동을 이어가시던 중 1967년 6월 17일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에 의해 베를린에서 서울로 납치되어 간첩이라고 자백하길 강요당하셨다. 이것이 ‘동베를린간첩단사건’이다. 1심에서 종신형을 받았으나, 세계 음악인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독일 정부의 조력으로 1969년 특사로 석방되었다. 그 후 윤이상 선생님은 해외민주화운동에 헌신하였으며, 해외동포들의 통일운동을 꾸려나갔다. 5.18 소식을 접하고 81년 ‘광주여 영원히’를 작곡하는 등의 예술 활동과 한국민주민족통일해외연합 유럽본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해외본부 의장을 맡는 등의 사회운동을 펼쳐나갔다. 창작 활동과 통일운동을 정력적으로 해나가시던 윤이상 선생님은 1995년 11월 3일 베를린에서 영면에 드셨다.

2. 타고난 사랑꾼, 윤이상 선생님

현대음악의 대가답게, <내 남편 윤이상>에서도 음악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러나 음악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윤이상 선생님의 사랑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내 남편 윤이상>을 처음 읽게 되면 누구나 닭살 커플의 애정행각(?)을 목격하게 된다. 젊어서 결핵을 앓았던 윤이상 선생님이 집안의 반대를 극복하고 결혼한 탓일까. 윤이상 선생님은 아내이자 저자인 이수자(애칭은 자야) 선생님이 없이는 죽고 못 산다. 이런 윤이상 선생님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것은 아내에게 보낸 편지이다.

나는 당신을 일주일 동안 전혀 생각하지 않기로 하겠소. 그렇게 호소하고 애원해도 안 들어주는 마누라에게……당신은 미련하고도 야속하고도, 어리석은 바보요. 당신은 나에게 편지 늦추지 않기로 약속하고도 이게 몇 번째요.

아마도, 아내가 편지를 몇 번 보내지 않자 역정을 내신 것이다. 하나 더, 윤이상 선생님이 파리로 가는 도중 일본에서 아내에게 쓴 편지 일부를 옮긴다.

짐을 챙겨보니 당신의 블라우스가 들어 있지 않소. 그래서 반갑기도 하지만은 이 길을 잃은 당신의 꺼풀을 어떻게 우편 소포로라도 당신에게 보내야하겠는데, 이왕 보낸다면 멋진 블라우스를 하나 사서 같이 보낼까 하는데 오늘이 일요일인가. 오늘 밤 12시가 지나면 새벽 1시에 홍콩으로 떠나야 하니까 홍콩서 부칠는지, 아니면 빠리 가서 두고두고 당신의 냄새를 맡을는지도 몰라… 떠나고 보니 잊어버린 게 있어. 뭔고 하면 내 땅의 흙 한줌과 당신의 머리칼을 다음 소포에 부쳐주도록 하오.

한국에서 일본에 가는 짧은 시간에 그렇게 애틋할까. 어느 편지에서는 끝맺기 싫었는지, 마지막 ‘안녕’이라는 인사말을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적어 넣고는 ‘열렬한 뽀뽀를 당신에게’라며 끝맺는다. 닭살이 돋아 책을 덮으려던 중에, 편지의 ‘내 땅의 흙 한줌’ 이라는 문구가 눈에 다시 들어온다.

윤이상 선생님이 열렬히 사랑하던 것은 아내만이 아니다. 고향과 조국과 사람이었다. 윤이상선생님에게 고향은 늘 그리운 곳이었다. 공연에 참석차 어딘가를 가려 하면 바닷가를 곧잘 찾으셨다. 바닷가를 보며 “고기가 이런 곳에 숨어 있으니 여기에 낚시를 던지면 잘 물린다.”라며 어린 시절을 회상하였고, 독일에 살면서 마음이 아프고 슬플 때는 남도창을 틀어놓고 향수에 젖으셨다고 한다. 독일 망명 후 94년에 한국으로 귀국하기 위한 마지막 노력이 좌절되어 윤이상 선생님은 실망하여 앓으셨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선생님의 소지품에는 남도 민요 CD가 있었다고 한다. 남도창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남기고자 했으나 끝내 이루지 못하셨다.

나는 책을 읽으며, 윤이상 선생님이 예술적으로도, 통일운동사적으로도 큰 역할을 하셨던 것은 윤이상 선생님의 타고난 사랑에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식민지배에서 막 벗어나고, 전쟁까지 치른 낙후한 국가에서 서유럽의 발전된 나라를 보며 학문을 하다 보면 숭배하고 압도당하기 십상이다. 윤이상 선생님 음악의 특징인 동양음악의 음과 철학을 서구의 악기로 구현하기를 성공하며, 새로운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완성하기란 그런 바탕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리라.

3. 사랑이 낳은 정열

윤이상 선생님이 토로하는 절절한 사랑을 보며, 나는 그로인해 선생님의 예술가적 투혼을 키우고, 조국을 위해 그처럼 치열하게 사셨는가 하고 생각이 들었다.

윤이상 선생님은 간첩으로 몰려 조국에서 모진 고문과 모욕을 당하며 자백을 강요받던 어느 날 아내 이수자 선생님을 면회하게 되었다. 책에서 이수자 선생님이 쓰길, 남편이 얼굴은 퉁퉁 붓고 머리에는 붕대를 칭칭 감은 상태였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도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과 연주곡 ‘율’과 ‘영상’을 창작하셨다니 감탄스러웠다. 또한, 95년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창작을 멈추지 않았는데, 그곡이 90년대 분신 투쟁을 한 학생들을 추도하는 교향시곡 ‘화염 속의 천사’이다.

윤이상 선생님은 예술로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일에도 헌신하셨다. 하루는 윤이상 선생님은 38선에서 남북음악제를 열 구상을 하였다.

정치가는 음악가가 될 수 없지만, 음악가는 정치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예술작품 혹은 예술행위가 놀랄 만한 일을 이루어낼 수도 있다. 남북이 무엇을 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고 있다. 정치협상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열려고 하는 것이 나의 음악제의 구상이다.

북한 정부는 윤이상 선생님의 뜻에 동의했으나 남한 정부의 방해로 38선 음악제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에 윤이상 선생님은 38선에서는 못하더라도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할 수는 있지 않겠는가 하여 추진하였다.

이때가 1990년인데, 이 해에 윤이상 선생님은 건강이 썩 좋지 않았다. 윤이상 선생님의 건강에 비해 일정이 너무 벅찼던 것이다. 3월에 서독에서 신곡 초연과 영국에서 열린 음악제, 7월에 일본의 음악제에 초청되어 다녀왔다. 이어서 스위스의 연주회에 참가하였는데, 이수자 선생님이 돌아오는 윤이상 선생님을 마중 나가니 밀차에 실리어 나오고 있더란다. 자동차 사고가 난 것이다. 그리하여 9월에는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어찌하여 인터뷰가 잡혔다. 그러나 다섯 발자국을 걷기도 힘들어 시작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남북통일음악제를 추진하려니 건강이 상당히 걱정스러운 정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때를 아내 이수자 선생님은 이렇게 회상하였다.

10월에 들어서서 날씨는 한층 나빠져가고 있었다. 아침에 남편은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며 “여보, 이젠 난 아무것도 못하겠소. 숨쉬기가 이렇게 힘이 드는데 뭣을 하겠소.” 하며 괴로워했다. 남편이 일어나기 전에 한국서 소식을 받은 나는 “여보! 정신 차려요. 당신 일어서야 해요. 한국 통일원에서 북에 갈 음악인들에게 정식으로 허락이 내렸대요.” 하며 부축해 일으켜 주었다…… 금새 꺼질 것 같던 그의 눈은 순간 빛을 발하며 기쁜 표정이 얼굴에 스쳤다…… 남편은 생의 밑바닥에 가라앉으려던 힘을 다시 내어 일어섰다.

그렇게 1990년 10월 14일 서울전통음악연주단 일행이 민간인으로는 45년 만에 처음으로 북을 방문하였고, 18일 범민족통일음악회가 개막되었다.

4. 다시 태어나는 새 생명들에게 어떤 나라를 주어야 할까.

윤이상 선생님이 아내 이수자 선생님과 다시 태어나면 무엇으로 태어날 것인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윤이상 선생님이 “다시 태어나지 않겠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수자 선생님이 윤이상 선생님께 당신의 재능은 천부적인 것이니 다시 작곡가로 태어나라고 권하였는데 그 때 이런 대화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후생에서도 이생에서와같이 또 이렇게 되풀이되면 어떻게 하지?”
“여보! 그때에는 우리나라가 통일이 될 것이고, 남북이 갈라져서 당신이 그 사이에 끼여 고생할 것도 없을 테고 다음 세상에는 우리 고생 적게 할 거야.”
“그럼 그렇게 하지.”

이때가 분단이 50년 되었을 때인데 지금은 73년이 되었다. 윤이상 선생님이 혹여 다시 태어났다면 얼마나 실망하겠는가 생각이 들어, 이제 나는 매 순간 태어나는 새 생명을 볼 때마다 이 생각이 날 것 같다. 윤이상 선생님이 간첩으로 잡혀갔던 것이 60년대, 통일음악회를 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시던 것이 90년인데 오늘날에도 그때와 다른 듯 같은 모습이 되풀이되고 있다.

몇 년 전 북한 방문 사진을 보여주며 여행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쫓겨나야 했던 신은미 선생님이 생각난다. 한편 오늘날 진천규 기자님이 북한에서 찍은 영상이 티비를 통해 나오곤 한다. 어떤 이는 처벌했는데 어떤 이는 무사한 것을 보면, 법이란 것이 원칙이 없고 제 입맛대로 적용되니, 이 얼마나 엉터리인가. 북한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잡혀가거나 종북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보다,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오가는 북한을 우리만 오가지 못하는 게 더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러운 일이 아닌가.

다시, 평창올림픽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문재인 정부가 단일팀을 비롯한 모든 노력을 다하는데 지지를 보낸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평화올림픽으로 성공하는 것은 되면 좋은 것이 아니라 절박한 일이다.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글의 제목을 정하며,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 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윤이상 선생님이 쓴 교성곡의 제목인데, 이 곡은 남녘의 민주, 통일 운동을 한 투사들의 시를 엮어 만든 한글 가사 곡이다. 한번씩 들어보시길 권한다.

이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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