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청년의 통일의식 변화체험기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남측을 찾은 김여정 북한 특사가 문재인 대통령에 “평양 방문”을 요청했다. 18년 만에 남북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오르고 있다. 우리민족과 지구촌은 전쟁이 거론되던 한반도의 위기가 급격히 평화통일로 전환되는 역사적 순간에 놀라워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루하루 급격하게 바뀌어가는 한반도정세를 물끄러미 응시하면서 통일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 없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지금 같은 날이 오리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흘러간 기억의 옛 장면을 소환해 통일과 민족의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통일교육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 단일기

올해 나는 29살이다. 초등학교·중학교 다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학교에서는 북한을 제대로 알자는 취지의 ‘통일교육’이 이뤄졌다. 2000년 6.15공동선언으로 ‘우리민족끼리 주도하는 남북통일과 상호번영’이 화두에 오르면서 교재에 실린 김일성화, 김정일화의 붉은 빛 감도는 사진이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당시 내게 북한은 ‘별난 이웃’ 쯤으로 비춰졌던 것 같다. 우리 민족이라고 여기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북한사람들은 머리에 뿔을 달고 있다’는 식의 반공의식도 없었다. 교재에 소개된 사진과 간단한 만화를 보며 북한을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 정치체제가 다르고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 말투도 차이가 커 서로 다투기도 하지만 결국 마주하고 공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북한, 그리고 북한 사람들이었다.

6.15의 여파는 국제무대에까지 널리 미쳤다. 티비를 통해 본 남과 북이 2000년 9월 15일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 당시 옷을 하나로 맞춰 입고 단일기를 휘날리며 공동으로 입장하던 남과 북 선수들의 모습이 살짝 떠오른다. 분단의 질곡은 모른 채 어린 마음에 그저 ‘신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 기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한동안 뇌리에서 완전히 잊혀졌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고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통일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남과 북이 통일을 지향해야 할 한 뿌리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게 됐다. 학교교육과 시드니올림픽을 통해 희미하게나마 새긴 통일의 감각이 무뎌져 돌이킬 수 없게 된 것이다.

2017년 10월 한가위, 일본 동포사회

2017년 1월 말부터 6.15공동선언의 가치를 내건 언론 <주권방송>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촬영용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뛰며, 한반도 분단의 본질적 원인이 외세의 개입에 있음을 알아가며 점점 통일의 열망을 키워나갔다.

그러던 중 지난 2017년 10월 한가위. 나와 <주권방송> 취재진은 재일동포들을 만나기 위해 일본 토쿄(東京)를 찾았다. 한가위를 맞아 6.15공동선언실천 일본지역위원회 청년학생협의회가 6.15공동선언실천 남측 청년학생본부를 초청해 성사된 당시 만남은 그리 수월치 않았다.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처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으로 입장이 나뉜 동포사회는 서로의 만남을 조심스러워했다.

토쿄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의 절차는 무척 복잡했다. 먼저 통일부 홈페이지의 남북교류협력시스템을 통해 ‘북한주민 사전접촉 신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여러 차례 주의사항을 전했다. 아직 남북관계가 조심스러운 만큼 언동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달라는 취지였다. 북측과 가까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동포, 그러니까 사실상의 북한주민을 만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만남이 검열 받은 셈이다.

남북 동포들 간의 만남은 10여 년만이라고 했다. 나는 동포들이 무척 반가웠지만 마음 한 구석이 개운치만은 않았다. 남한에 있을 때 북한은 상상 밖의 영역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적나라한 현실 그 자체였다. 각각 남과 북의 체제를 지지하는 동포들이 함께 통일을 건배사로 외치며 잔을 들었다. 같이 이야기하고 웃으며 민족의 분단이 허물어진 듯한 느낌을 반짝 받았지만 금세 분단이 견고한 현실임을 깨닫는 순간이 여러 차례 되풀이됐다.

분단의 병폐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일본의 동포사회는 평화통일의 당위성을 뒷받침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 평화통일의 중요성을 목소리 높여 강조하게 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이번 평창올림픽은 나와 우리의 숨겨있던 민족애를 일깨워줬다. 시드니올림픽에서 토쿄를 거치며 ‘분단이 안타깝다’ 여기던 막연한 느낌이 ‘반드시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다짐으로 전환됐다.

다시, 2018년 강원도 평창과 남북정상회담

지난 2월 9일 올림픽 개막식에서 마지막 순서로 단일기(한반도기)를 환하게 흔들고 올림픽스타디움에 입장해 김연아 선수와 성화를 밝히는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소속 남측 박종아, 북측 정수현 선수의 모습을 집중해서 봤다. 시드니올림픽 때와는 딴 판인 감정이 솟구쳤다. 가슴이 쿵쾅쿵쾅 울려 참 벅찼다.

나는 유일하게 분단된 행정구역인 강원도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내면에 묻혀있던 민족애를 불러들였다. 6.15가 다가온 어느 날 사회참여동아리 ‘강원 청춘의지성’ 회원이었던 나와 후배들은 <분단된 강원도의 통일과 전망>을 주제로 많은 학생들 앞에서 발표했다. 경제기반이 낙후하고 인구가 적은 강원도를 살리기 위한 답이 통일이며, 강원도를 중심으로 통일의 가치를 드높여야 한다는 내용으로 남북통일의 청사진을 제시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만큼 남녘 강원도의 평창군이 남북만남을 활짝 열어젖히는 역사적 관문이 되어 몹시 감격스럽다. 평창을 필두로 북녘 강원도 원산시의 갈마비행장과 마식령 스키장이 열려 남측 선수들이 방북하고, 남녘 강원도 동해시의 묵호항이 열려 북측 참가단을 태운 만경봉 92호가 방남 했다. 뿐만 아니라 강릉 오죽헌 야외에서 북측응원단이 고적대 공연을 펼치자 주변으로 모여든 남측 대학생응원단은 “우리는 하나다”를 외쳤다. 내가 대학생이었다면 분명 저 자리에서 함께 몸을 들썩이며 흥겨워했으리라.

울컥하고 설레는 이 감정은 절로 끓어오르는 민족애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본디 하나였던 조국, 일제가 떠나고 미군정과 소련이 들어오더니 남과 북에 각기 다른 국가가 성립됐다.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남과 북. 서로를 각자의 정식국호인 대한민국(한국)이라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라고 부르지 않는 남북은 결국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중립적인 기호 ‘코리아’를 달아야했다.

이제 구체적인 물음이 인다. 남북한 해외동포를 합쳐 8000만 명이 넘는 우리민족이 모두 한 마음으로 통일이라는 뜻을 품을 수 있는 걸까란 의문. 지구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땅 한반도(북측과 일본에 거주하는 동포들은 조선반도로 부른다)의 설움을 딛고 통일로 나아가자는 사고방식이 당연한 걸까?

일각에서는 “민족주의와 통일을 당연하다 인식하는 마지막 세대라 다행”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자신은 민족주의니 통일이니 하는 고루한 인식이 찝찝하면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나 앞으로의 세대는 그렇지 않고 ‘인식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거란 설명.

그러나 “전쟁이 나면 한반도에서 수천 명이 죽는다”고 엄포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폭언을 떠올리면, 한반도의 분단이 해소되지 않는 한 전쟁위기가 엄존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아울러 언뜻 번영처럼 보이는 남한의 물질적 풍요마저 한 순간에 잿더미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여정 특사에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나가자”고 답했다. 이제 국제사회가 얽혀 복잡하게 꼬인 매듭을 걷어내고 분위기를 조성하면 될 일이다. 금강산 관광을 열고, 박근혜가 독단으로 폐쇄를 결정해 입주 기업인들이 피눈물을 삼키며 허둥지둥 떠난 개성공단을 재가동해 남북 상호번영의 기틀을 되살려야 한다.

“백두와 한나(라)가 서로 손을 잡으면 삼천리가 하나 되는 통일이여라”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호소력 있게 부른 남북통일을 그리는 북측 가곡 ‘백두와 한나는 내 조국’의 노랫말이 남측 매체에서 당당히 흘러나왔다. 북측을 합리적으로 바라보려는 잣대마저 ‘종북’으로 간주하며 사람들의 생각을 옥죄던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이 먹통이 됐다.

그리고 북측 고위급 대표단이 평양으로 떠난 뒤 통일부는 지난 12일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의 주도적 역할이 부각됐다”며 “쌍방 최고지도간의 상호 존중과 이해, 상대측에 대한 배려의 정신이 남북관계의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한다고 강조했다.

높아 보이기만 하던 남북 사이의 벽은 쌍방의 적극적인 만남과 대화가 오가니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남북교류와 평화통일의 물줄기가 이 땅 너머 지구촌 곳곳을 적셔나가고 있는 매 순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어라”가 시대의 과제임을 곱씹는다. 남북관계 정상화의 훈풍을 타고 지금의 분위기가 줄곧 이어진다면 머지않은 시기에 ‘그 날’은 반드시 성큼 다가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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