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남북정상회담의 의의와 성과

정상은 시종일관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었다. 마치 오랜 친구마냥 이야기는 자연스러웠으며 함께 걷고, 악수하고, 껴안는 모습도 자연스러웠다. 만나니 평화요, 손 잡으니 통일이다.

정상회담에서 눈에 띠는 장면 3가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단신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많은 수행원을 대동하고 판문각을 내려오다가 갑자기 혼자서 걸어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것이다. 판문점 남측 구역은 대한민국의 행정권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유엔군 관할지, 현실적으로는 미군의 관할지다. 미군이 관할하는 곳에 단신으로 들어갔다. 통일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걸 수 있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의 ‘용기’를 높이 평가했다.


첫 만남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예정에 없는 깜짝 월경을 하였다. 문 대통령이 자신도 북한을 방문하고 싶다고 하자 김정은 위원장의 즉석 초청에 따른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마음만 먹으면 남북이 오가는 것이 이렇게 쉬운데, 군사분계선 넘는 게 아무 것도 아닌데, 통일도 어렵지 않은데, 이걸 보여주고자 한 게 아닐까?

그리고 또 하나. 군사분계선을 넘기 위해서는 미군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과연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에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판단과 결심으로 임할 수 있을지 여부가 이 장면에서 확인되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하루 더 묵었다 가라고 깜짝 제안하자 완곡히 거절한 일이 있었다. 그 때와 비교되는 장면이다.

본 회담이 시작되기 전 환담을 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냉면을 어렵게 가져왔다고 설명하다가 “멀다고 하면 안 되겠구나”라고 해서 화제가 됐다. TV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그날 점심 전국의 평양냉면집은 몰려든 손님들로 북적였다. 김정은 위원장의 유머 한 마디가 국민의 마음을 녹였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북한이라면 무조건 헐뜯던 사람들이 조용히 눈치를 보게 되었고,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김정은님’이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써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자, 이제 역사적인 3차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하 판문점 선언)을 들여다보자. 2007년 발표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과 제목이 유사하다. ‘평화’와 ‘번영’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7년에는 제목에 넣지 못했던 ‘통일’이 이번에는 들어갔다. 남북이 만나서 선언을 하는데 당연히 통일선언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 정부는 통일을 상당히 조심스러워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저는 당장의 통일을 원하지 않습니다”고 하였고 또 지난 3월 21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2차회의에서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이란 발언을 하였다. 물론 통일을 반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당장 통일을 이루기보다 일단 분단 관리, 평화 정착을 하면서 천천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신중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소극적인 것이다. 선언 제목에 ‘통일’을 넣기까지 11년이 걸린 셈이다.

이제 전문을 보자.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화와 번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한결같은 지향을 담아 한반도에서 역사적인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뜻깊은 시기에 2018년 4월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하였다.”

이번 회담의 주제는 평화, 번영, 통일 3가지임을 밝혔다.

“양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하였다. 양 정상은 냉전의 산물인 오랜 분단과 대결을 하루 빨리 종식시키고 민족적 화해와 평화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과감하게 열어나가며 남북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담아 역사의 땅 판문점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2018년 4월 27일을 기준으로 한반도는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그 이전이 전쟁의 시대, 냉전 시대, 대결 시대라면 이제는 평화의 시대, 민족화해와 평화번영의 시대다.

“1. 남과 북은 남북 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갈 것이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온 겨레의 한결같은 소망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의 절박한 요구이다.”

첫 항은 통일과 번영을 다루고 있다. ‘평화통일’이 아닌 ‘자주통일’이란 표현을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용한 적이 있던가? 통일의 본질은 자주와 단합, 그리고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는 것이다. 판문점 선언은 자주통일 선언이다.

“ⓛ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으며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과 모든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관계 개선과 발전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기로 하였다.”

민족 자주를 다시 한 번 못 박았다. 그리고 이전 남북 선언과 합의를 이행하기로 하였다. 정부는 이번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동의를 추진한다고 한다. 이전 남북 선언까지 추진하면 더 좋겠다. 국회가 비준동의를 하면 판문점 선언은 법적 효력을 갖게 된다. 관련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 상황을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법을 집행하듯 판문점 선언을 집행해야 한다.

“② 남과 북은 고위급 회담을 비롯한 각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빠른 시일 안에 개최하여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문제들을 실천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하였다.”

“③ 남과 북은 당국 간 협의를 긴밀히 하고 민간교류와 협력을 원만히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당국자가 상주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지역에 설치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며 일시적으로 분단된 특수한 관계이기에 대사관이나 영사관을 설치할 수 없다. 따라서 연락사무소를 설치한다. 남북 당국자가 상주하면서 당국 협의를 상시적으로 하고 또 민간교류와 협력도 보장할 것이다. 이는 원래 개성공단 내에서 비공식적으로 진행되던 일이기도 하다. 이제 공식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개성공단을 재개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건이 되면 남북에도 연락사무소를 둘 수 있다고 하였다.

“④ 남과 북은 민족적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계각층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을 활성화하기로 하였다. 안으로는 6.15를 비롯하여 남과 북에 다 같이 의의가 있는 날들을 계기로 당국과 국회, 정당,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등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민족공동행사를 적극 추진하여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밖으로는 2018년 아시아경기대회를 비롯한 국제경기들에 공동으로 진출하여 민족의 슬기와 재능, 단합된 모습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로 하였다.”

한 달 반 남은 6.15공동선언 기념일에 민족공동행사가 열린다. ‘남과 북에 다 같이 의의가 있는 날들’이라고 했으므로 6.15뿐 아니라 4.27, 8.15, 10.4 등 앞으로 민족공동행사가 자주 열리겠다. 올해 아시아경기대회는 8월 18일~9월 2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다. 단일팀 구성을 지금부터 논의해야 한다. 스포츠가 먼저 통일할 것 같다.

“⑤ 남과 북은 민족 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며, 남북 적십자회담을 개최하여 이산가족·친척상봉을 비롯한 제반 문제들을 협의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당면하여 오는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친척 상봉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원래 북한에서 주장한 이산가족 상봉의 전제조건이 있었다. 김련희 씨와 12명의 종업원을 송환하라는 것이다. 8.15 이전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⑥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가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나가기로 하였다.”

경제, 번영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다는 평가도 있는데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에 다 담겨있다고 보면 된다. 10.4선언에는 방대한 경제협력 과제들이 명시되어 있다. 철도, 도로 연결과 현대화는 이번 정상회담 환담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의 도로가 불편하다고 언급한 것과 연결된다. 북한은 전부터 철도, 도로 현대화 협력사업에 적극적이었지만 이명박근혜의 거부로 엉뚱하게 중국, 러시아와 손을 잡게 되었다. 이제 남북 협력으로 해결하게 되었다. 판문점 선언은 번영 선언이다.

“2.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다.”

“①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 당면하여 5월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며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하였다.”

이제 대북전단살포 못 한다. 확성기 방송은 이미 중단했는데 확성기 철거까지 한다.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드는 건 정전협정과 직결되는 문제다. 비무장지대 관리에 대한 규정이 정전협정에 있기 때문이다.

“② 남과 북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하였다.”

“③ 남과 북은 상호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이 활성화 되는 데 따른 여러 가지 군사적 보장대책을 취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쌍방 사이에 제기되는 군사적 문제를 지체 없이 협의 해결하기 위하여 국방부장관회담을 비롯한 군사당국자회담을 자주 개최하며 5월 중에 먼저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기로 하였다.”
후속 회담 가운데 유일하게 시일을 못 박은 게 군사회담이다. 남북 관계도 그렇고 한반도 문제도 그렇고 본질은 군사적 문제다. 군사 문제가 풀리면 모든 게 풀린다.

“3. 남과 북은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다. 한반도에서 비정상적인 현재의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이다.”

왜 평화 조항만 두 개일까? 판문점 선언 3개 조항 중 2개가 평화와 관련된 것이다. 2번 조항은 남북 군사대결 중단 문제로 남과 북이 직접 풀 수 있는 문제지만 한반도 평화는 남북의 행동만으로는 지킬 수 없다. 미국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그래서 미국까지 포함하는 조항이 따로 필요하다. 3번 조항은 한 달 뒤에 있을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조항이다. 여기에 나오는 남과 북 군 당국이 취할 조치들 가운데 한국군의 조치는 미군의 동의가 필요한 것들이다.

“① 남과 북은 그 어떤 형태의 무력도 서로 사용하지 않을 데 대한 불가침 합의를 재확인하고 엄격히 준수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미 무효화된 1991년 남북 불가침합의를 재확인하였다. 판문점 선언은 불가침 선언이다.

“② 남과 북은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서로의 군사적 신뢰가 실질적으로 구축되는 데 따라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하였다.”

군축은 매우 민감한 문제다. 군축은 평화를 물리적으로 유지시키는 가장 적극적 조치다. 한국에서는 군축을 통해 징병제가 모병제로 바뀔 근거를 얻었다. 북한 입장에서는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 없이 한국군만의 군축을 보며 군대를 축소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군축을 통해 평화와 번영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③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기로 하였다. 판문점 선언이 종전선언은 아니다. 종전선언은 남북이 할 수도 없고 해봐야 의미도 없다. 북미가 하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남북미 혹은 남북미중으로 넓혀놓았다. 10.4선언에 3자 혹은 4자라고 표현한 게 이번엔 더 구체적으로 명시되었다. 중국은 사실 종전선언에 참여할 명분이 적다. 하지만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중국까지 참여해야 앞으로 한반도 문제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만약 남북미 종전선언을 하면 앞으로 한반도 문제에서 사실상 북미 사이에 모든 게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④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하였다.”

역시 비핵화와 관련해서는 원칙적 입장만 합의하였다. 이 문제의 구체적 해법과 경로는 북미정상회담으로 넘어간다.

“양 정상은 정기적인 회담과 직통전화를 통하여 민족의 중대사를 수시로 진지하게 논의하고 신뢰를 굳건히 하며,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향한 좋은 흐름을 더욱 확대해 나가기 위하여 함께 노력하기로 하였다. 당면하여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가을 평양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가을이면 9월 9일 북한 정부수립일 즈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신년사에서 ‘공화국 창건 70주년’을 평창동계올림픽과 함께 중요한 ‘민족의 대사’로 꼽았기 때문이다. 한 해에 두 번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리고 앞으로 정기적 회담을 하기로 하였는데 최소 1년에 한 번은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직통전화를 통해 수시로 논의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 북한에서 미사일 시험을 할 때마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한 것을 떠올려보라. 이제 남북관계는 전략적 관계로 격상되었다.

종합하자면 판문점 선언은 자주통일 선언, 번영 선언, 평화 선언, 불가침 선언이다. 두 정상의 의지로 보나, 미국의 입장으로 보나, 국제 여론으로 보나 이 선언은 이제 누가 집권해도 돌이킬 수 없는 선언이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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