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중공업 우선 발전노선 – ②소련, 북한에 정책 수정을 강요하다

북한의 경제 건설을 추진하는 데서 나타난 장애물은 뜻밖에도 사회주의 대국인 소련이었다.

소련이 북한을 향해 중공업 우선 발전, 경공업·농업 동시 발전 노선을 반대하면서 코메콘에 가입하라고 종용한 것이다.

코메콘은 경제상호원조회의로 사회주의 나라들 사이에서 분업체계를 만들기 위한 기구이다.

예를 들어 북한은 석회석 같은 자원을 채굴하여 팔고 발전된 공업국가는 기계를 만들어 북한에 파는 식의 전 지구적 분업체계이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은 북한을 사회주의 분업구조에 속하지 않고 자립적인 사회주의 공업국가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일성 주석은 “만일 우리가 앞으로도 우리나라에서 강력한 중공업을 창설하지 않는다면 원래 극히 낙후하였던 경공업을 추켜세우지 못할 것이며 농촌에 선진농기계들을 공급하지 못할 것이며 인민 생활의 근본적인 개선을 보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강력한 중공업을 창설하는 조건 하에서만 경제의 자립성과 국가의 자주적 발전이 보장됩니다.”라는 판단이었다.
– 크루펜니코바 율리아, 1953-1956년 북·소 관계의 특징에 대한 연구 : 경제적인 요인을 중심으로, 2013, 36쪽

북한이 코메콘에 가입하지 않은 채 자체적인 경제발전 전략을 고수하자 소련은 북한에 압력을 넣었다.

당시 약소한 사회주의 국가들은 소련의 압박에 굴복한 사례가 많다.

1953년 6월 헝가리의 라코시 마차시 수상은 모스크바를 방문하였다가 국내 경제정책에 관련해서 강도 높은 비판을 받았다.

이후 미코얀 소련 부수상이 헝가리를 방문하여 라코시를 수상 자리에서 해임하고 수상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도록 했다.

1956년 4월 불가리아에서는 체르벤코브 국가 주석 대신 흐루시초프의 지지를 받는 토도르 지브코크가 최고지도자가 되었다.

중국도 1953년에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하는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가 수정했다.
– 크루펜니코바 율리아, 1953-1956년 북·소 관계의 특징에 대한 연구 : 경제적인 요인을 중심으로, 2013, 35쪽

이처럼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소련은 북한에 대해서도 압력을 넣었다.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원조 받은 자금으로 산업자재와 기계류를 사들이었는데, 소련은 경공업 소비재를 사라고 강요하였다. 1955년에 소련 대사관 관계자들은 북한 정부가 소련으로부터 받은 원조를 “산업장비와 완자재를 얻는 데에 사용하며 10억 루블을 소비재 구입하는 대에 쓰는 것을 피하”고 있다며 비판하였다.

북한이 경제 정책 수정을 거부하자 소련은 원조를 중단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소련의 내정간섭은 북한 정치에도 혼란을 가져왔다.

그때 북한에는 중국에서 공산주의 운동을 하던 연안파와 소련 출신인 소련파들이 있었다.

이들이 소련의 주장에 동조해 나선 것이다.

연안파인 윤공흠이 먼저 1956년 8월 조선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중공업 우선, 경공업·농업 우선 정책을 반대했다.

윤공흠을 시작으로 고봉기, 서휘, 최창익 등이 연단에 올라 경제 발전 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이른바 ‘8월 종파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러나 회의 참가자들은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 임영태, 북한 50년사1, 들녘, 1999, 321쪽

중공업 우선, 경공업·농업 우선 정책은 이미 당정책으로 결정된 사안이었다.

윤공흠이 발언한 자리는 경제정책을 토론하는 자리가 아닌 보건 사업 토론회였다.

회의 참가자들은 이들을 향해 “발언을 중지시켜라”, “끌어내려라”라는 비난이 쇄도했다.

결국 오전에 열린 전원회의는 잠시 중단되었다가 오후에 재개되었는데, 문제를 제기한 윤공흠 등의 인사가 보이지 않았다.

윤공흠을 비롯한 8월 종파사건을 주도한 연안파와 소련파 인물들이 실패를 직감하고 중국을 향해 도망친 것이다.

이후 재개된 전원회의에서는 <최창익, 윤공흠, 서휘, 리필규, 박창옥 등 동무들의 종파적 음모에 대하여>라는 결의안을 통과시켜 해당 인물들의 당직 및 정부 직책을 박탈했다.

중국과 소련은 8월 종파 사건 직후 연안파와 소련파가 궁지에 몰리자 직접 정치개입을 시도했다.

소련은 부수상 미코얀을, 중국은 펑더화이 국방부장을 파견해 윤공흠 등에 대한 출당 및 직위 해제 조치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북한에서는 당정책을 반대하는 ‘종파’들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에 나섰고, 북한은 기존의 정책과 노선을 고수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마오쩌둥 중국 주석은 1957년 11월 김일성 주석에게 당내 문제에 부당하게 간섭한 행동을 수차례에 걸쳐 사과했다.

훗날 김일성 주석은 내 머리가 하얗게 흰 것은 절반은 종파 때문이라고 종종 이야기했다고 하니, 이 당시 북한이 겪은 곤란이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 나라들의 반대와 개입이라는 난관에 부딪혔지만 ‘중공업 우선 발전, 경공업·농업 동시 발전’ 노선을 지켰다.

북한의 경제학자는 소련의 내정간섭과 8월 종파사건에 대해서 “만약 우리가 단지 수출만을 위해 천연자원을 개발했다면…우리는 계속해서 광석을 팔 것을 강요받았을 것이며, 그 대가로…높은 가격의 완제품을 구입했어야 할 것이다.…이러한 것이 그들로 하여금 후진 상태에 머물게 하는 과정이다.” 라고 평가했다.
– 엘렌 브룬·재퀴스 허쉬, 사회주의 북한, 지평, 1988, 72쪽

혼란스러웠던 8월 종파사건 이후 난관에서 벗어난 북한은 더욱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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