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천리마운동 – ② 북한이 국민을 대하는 방법 1. 국민을 믿는다

북한은 천리마운동에서 북한 국민들이 열성적으로 일했던 요인은 국민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잘 먹고 잘살길 바라는 것은 어느 사람이나 똑같다.

북한 국민들도 한국전쟁 이후 경제를 빨리 재건해 잘살게 되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전쟁피해가 너무 막심하고 서구 선진국에 비해 기술문화 수준도 낮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북한이 빠른 경제 성장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김일성 주석은 “주요 장애물로 된 것은 소극성과 보수주의, 기술에 대한 신비주의였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일성 주석은 북한 국민이 나서면 제 힘으로 빠른 경제성장과 기술력 향상을 할 수 있다고 여겼다.

김일성 주석은 국민을 믿고 도와주는 경제발전 방식을 구현하기 위해서 1956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북한 당 간부들에게 “당 일꾼들이 군중 속에 깊이 들어가 대중의 창발성을 최대한 발동시켜 사회주의 경제 건설을 기한 내에 완수하자”고 호소했다.

이런 북한의 정책은 어떤 효과를 가져왔을까?

전편에 소개한 강선제강소의 사례를 보자.

강선제강소는 당시 북한에서 ‘분괴압연기’를 보유한 유일한 제강소였다.

분괴압연기란 철강생산의 마지막 단계인 ‘압연’ 공정을 담당하는 설비였다.

당시 북한 철강생산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강선제강소는 애초 1957년에 강재 6만 톤을 생산할 계획이었다.

김일성 주석은 1956년 12월 27일 강선제강소에 가서 소련으로부터 강재를 수입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일성 주석은 우리는 제1차 5개년계획을 수정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철강을 더 생산해야 한다며 강선제강소에서 강재 9만 톤을 생산하자고 호소했다.

강선제강소의 일부 간부들은 지금 가진 압연기로는 7만 7천 톤 이상 생산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강선제강소는 당장 부대설비를 증설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강철 9만 톤을 생산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고민한 김일성 주석은 강선제강소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방법을 논의하였다.

이 자리에서 한 노동자가 분괴압연기의 가동률을 높일 방법을 제안하였다.

압연기는 기존에 3일 가동하면 1일 동안 보수를 해야 했다.

즉, 1년에 100일은 보수를 해야 하는데, 보수시간을 100일에서 75일로 단축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강선제강소 노동자들은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작업공정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 설비와 작업의 불합리함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 용광로의 수명을 연장하는 방법 등이 나왔다.

노동자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한 결과 강선제강소는 9만 톤이 아니라 12만 톤을 생산하는 데 성공한다.

일부 간부들이 부대설비를 증설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던 일을 노동자들은 해낸 것이다.

북한은 강선노동자들이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적극적인 노동자들의 의견을 지지해주어 성공을 이끌었다고 평가한다.

강선제강소의 성공을 계기로 천리마운동이 북한 전역에서 시작되었다.

강선제강소의 소식이 북한 당국과 국민들에게 자신감과 열의를 갖게 해준 것으로 추측된다.

천리마운동이 시작되고 북한 전역에서 낙후한 경제상황과 기술수준 때문에 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과제들이 속속들이 수행되었다.

평양 전기 기관차 공장 노동자의 경우 북한 최초로 기관차 제작에 성공했다.

“우리는 그전 작업에 대한 경험도 설계도도 없었다. 세계에서 전기기관차를 제작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우리는 가파른 언덕과 커브가 많은 우리나라의 특수한 지형적 특징을 고려한 기관차를 설계해야만 했다. 우리는 설계를 끝마치는 데 6개월이 걸렸다. 우리는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지만 우리가 설계를 마친 때부터 우리가 최초로 우리 손으로 만든 전기기관차를 생산할 때까지는 1년이 채 안 걸렸다.”

기양기계공장 노동자들은 김일성 주석의 지시를 받아 트랙터를 자체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기양기계공장 노동자들은 소련에서 구해온 트랙터를 분해해 부품설계도를 하나하나 그려가며 트랙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북한의 소설, ‘총서 『불멸의 역사』 인간의 노래’를 보면 기양기계공장 노동자들이 겪은 어려움이 잘 나온다.

수령님께서는 분사구와 연료펌프부란자(플런저)를 찾아쥐시고 문상혁이를 돌아보시였다.

“이것이 허용오차 1천 분의 1미리메터(밀리미터)를 다툰다는 부속품들이요?”

김일성 주석의 물음에 문상혁(기양기계공장 기사장)은 이렇게 답했다.

“예, 이 두 부속품은 만들기 곤란합니다.”

트랙터를 자체 생산하기에 북한의 기술력이 아직 뒤떨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기양기계공장 노동자들은 트랙터 제작에 나섰고 6개월 만에 성공했다.

기양기계공장 노동자들이 처음 만든 트랙터는 시험운전에서 뒤로 움직였다고 한다.

그러자 김일성 주석은 “뒤로 갔으면 앞으로도 갈 수 있다”며 노동자들을 독려해주었다고 한다.

북한은 노동자들이 해낼 것이라고 믿고 과제를 주었고, 실패가 있더라도 끝까지 해낼 수 있도록 독려한 것이 결실을 맺었다고 주장한다.

국민들은 자신감과 열의만큼 노동을 더 많이 해나갔다.

소설 ‘인간의 노래’에는 이런 일화도 소개되어 있다.

건설지휘부 일군이 자랑삼아 청년 건설자들이 하루 4시간 자기 운동을 한다고 말씀드리자 (김일성) 수상님께서 그를 책망하시었소.

“4시간 자는 운동은 좋은 운동이 아니요. 잠자는 시간을 7~8시간으로 하고 일할 때에 능률을 높이도록 해야 하고. 4시간 자는 운동은 그만두시오.”

그랬지만 수상님께서 다녀가신 후 우리들의 기세는 더 높아져 아예 잠을 잊은 듯했소. 그래 지휘부에서는 하루 무조건 7~8시가 자도록 엄격히 통제할 데 대한 지시를 떨구었소. 그래도 잘 집행되지 않고 <도적작업>이 생기자 보초까지 세우게 된 거요.

한은 국민들이 열정적으로 일한 데 대해 북한이 국민의 창조력을 믿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었기 때문에 국민의 열의와 재능이 발양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북한은 북한 국민에 대한 믿음이 천리마운동을 낳았다고 강조한 것이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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