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의 날' 핵심을 찌르는 대사 "왜 미국 차관이…"

‘국가부도의 날’, 흥행 속 극과 극으로 엇갈리는 평가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흥행 중이다. 12월 13일 현재 관객 수 3백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국가부도의 날’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사태 당시를 다룬 영화이다. 스타뉴스는 “’택시운전사’→’1987’→’국가부도의 날’..韓현대사 흥행 잇는다”는 기사를 내기도 했는데, 돌이켜보니 묘한 흐름이다. 80년 광주, 87년 6월 항쟁에 이어 외환위기, 한국 현대사의 주요 변곡점이 극장가를 휩쓸고 있다.

‘국가부도의 날’은 흥행하는 만큼 관람객의 평점도 높다. 포털 네이버에서는 관람객 평점 8.80을 기록하고 있고 다음에서는 8.1을 기록하고 있다.

관람객들은 네이버에서 “김혜수 분 원래도 연기 잘하는 줄 알았지만, 어제 보고 반했어요”, “IMF 때 망한 아빠 생각나서 너무 많이 울었네요.”, “이 영화를 관람하기 이전에 나는 내가 비정규직인 것을 개인의 탓으로만 생각했다.”, “국가 부도는 기득권층들의 위기를 가장한 대한민국 길들이기였다.” 등의 후기를 남겼다.

물론, 혹평도 있다. 반미 영화라거나 각색이 너무 심하게 됐다는 투이다. 그 중 “답답하다”는 의견이 눈에 띈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하기는 하다. 한국이 국가 부도 위기에 몰려 위기를 극복해보려 하지만 결국 IMF의 신세를 져 한국의 경제 주권을 빼앗겼다는 이야기가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영화에서 다루는 사건은 한국 사회를 뒤집어놓은 ‘실제’ 사건이다. 한국은 지금도 IMF 사태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관람객이 느낀 ‘답답함’은 ‘답답한 현실’을 직면할 때의 거부감이다.

‘국가부도’ 주역을 드러내는 김혜수의 대사

‘국가부도의 날’에 대한 관람객의 평을 보면 배우 김혜수 씨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다. 정의로운 캐릭터를 열연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비단 ‘김혜수’ 만은 아니다.

현실을 살펴 보자. 영화 속에서 ‘김혜수’가 그렇게 뛰어다니고 골머리 썩으며 한국을 국가 부도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동분서주하게 만든 주역은 누구인가? IMF 총재가 정당한 요구를 하는 김혜수에게 윽박지를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1997년 외환위기에서 주목해야할 진짜 주역은 둘이다. 그 중 첫 번째 진짜 주역은 영화에서 아주 잠깐 화면에 등장할 뿐이다. 그리고 김혜수의 입에서 단 한번 이렇게 언급된다.

“왜 미국 재무부 차관이 같은 호텔에 있는 거죠?”

그렇다. ‘국가부도의 날’이라는 영화가 있게 만든 이, 김혜수와 유아인이 열연을 펼칠 무대를 만든 이, IMF 사태를 만들고 이끌어간 ‘주역’은 다름 아닌 미국 정부이다.

1990년대로 돌아가 보자. 당시 미국은 경제 구조를 ‘제조업’에서 ‘금융’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그 당시 가장 ‘핫 한’ 시장은 동아시아 국가들이었다. 미국은 자신의 미래 먹거리인 ‘금융’산업의 먹잇감으로 경제성장률 10%대에 달해 ‘아시아의 용’이라 불리던 동아시아 국가에 눈독을 들였다.

그런데, 동아시아는 당시 자본 시장에 높은 벽을 쳐놓고 있었다. 외국의 자본이 무분별하게 들어와 자국의 기업과 경제를 망가뜨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였다. 미국은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행동을 시작했다.

1990년 미국 의회는 “한국 정부가 환율조작과 외환시장을 통제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자본시장 개방 압력을 가했다. 이에 한국은 1995년부터 자본시장을 단계적으로 개방했고, 불과 2~3년 만에 1000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외국 자본이 밀려들었다. 이렇게 들어온 외국 자본은 미국 정부와 외국 자본가들이 한국에서 IMF 사태를 유발해 자신들의 이익을 실현시키기 위한 종자돈이 되었다.

1997년, 지금 돌이켜보면 곧 외환위기를 겪을 나라인데, 외국투자자들은 그해 1월 한 달 동안 한국증시에서 4038억 원어치 주식을 순매수해 들였다. 이 수상한 외국투자자들은 2월이 되자 급작스럽게 주식을 매도하기 시작했다. 외국 자본이 그해 4월 2일까지 팔아치운 주식이 3200여억 원어치다. 비정상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이 ‘작전’에 들어간 것이다.

미국은 당시 한국 정부의 달러 지원 요청을 묵살하며 외화 부족 사태를 키웠다. 지주형 교수는 책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에서 “루빈 (당시 미) 재무장관은 이미 4월에 강경식 부총리에게 미국 정부는 재정지원을 할 수 없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고 밝혔다.

미국은 심지어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융자를 부탁하자 이를 가로막았다. 잡지 시사IN은 2018년 12월 12일, “일본의 미쓰카 히로시 대장성 장관을 만나 협조 융자를 부탁했다. 미쓰카 장관은 돈을 빌려주기 어렵다며 문서를 보여줬다. 미국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이 보낸 편지였다. 한국에 돈을 빌려주지 말라고 되어 있더라.”라고 김영삼 정부 당시 최고위 경제 관료와 한 인터뷰를 보도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다. 한국은 ‘IMF 행’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이 IMF 사태를 겪은 것은 부실한 경제 구조도 한 몫 했지만, 미국의 의도적인 행동에 의한 것이었다. 이러니 ‘국가부도의 날’의 주역은 미국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진짜 주역

‘국가부도의 날’의 한 주역이 미국이었다면 우리가 주목해야할 다른 주역은 누구일까? 다름 아닌 한국 ‘국민’이다. 영화에서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배우 ‘허준호’씨이다. 외환위기로 피해를 본 것은 대한민국의 주인인 바로 우리와 같은 평범한 국민이었다. 평범한 국민보다 더 중요한 ‘주인공’은 없다.

한국의 평범한 국민, 평범한 사람들은 혹독한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영화에서도 묘사되었던 것처럼 당시 안타깝게도 자살 뉴스가 숱하게 이어졌다. 98년 4월 24일 문막휴게소에서 60대 부부가 “사채를 많이 끌어 써 감당하지 못해 자식들에게 미안하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같은 날 70대 할머니도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언론은 40대 큰아들이 회사 부도를 내고 둘째마저 구로공단의 한 회사에서 정리해고 되자 비관 자살한 것으로 추정했다.

IMF는 구제 금융을 주는 조건으로 외국 자본이 한국 기업의 주식과 경영권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으며, 연 20%~30% 대의 고금리를 요구했다. 높은 금리는 중소기업과 서민의 숨통을 틀어막았다. 대출을 받으면 이자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1억 원을 빌리면 이자가 2천만 원에 달하게 되는 것 아닌가.

대기업부터 중소기업이 줄줄이 도산하고 가혹한 구조조정을 하게 되었다. 당시 수많은 직장인들이 해고 사실을 차마 집에 알리지 못해 아침에 출근하는 척 밖을 나섰다가 퇴근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가는 일이 뉴스에 빈번하게 나왔다.

또한, IMF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요구해 ‘비정규직’이 전면화 되었다. IMF 사태 이후 ‘정규직’이 ‘꿈’인 세상이 오자 노동자의 일자리가 불안정해지고 임금은 낮아졌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오늘날, 극 중 김혜수의 말처럼 ‘실업’은 일상이다. 1990년대까지는 당연했던 ‘평생직장’은 이제 공무원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2017년 지방 7급 공무원 시험에서는 222명 선발에 2만8779명이 지원해 평균 129.6대 1을 기록하기도 했다. 과거 당연했던 ‘평생직장’은 이제 ‘꿈의 직장’이 되었다.

이는 미국이 자기 금융자본의 이익을 위해 IMF를 대리로 세워 한국에 ‘일방적’이고 ‘가혹한’ 경제 구조 전환을 강행시켰기 때문이다.

IMF 실무협상단은 당시 협상단을 따라온 데이비트 립턴 미 재무부 차관의 통제 하에 있었다. 워싱턴포스트 기자 폴 블루스타인은 자신의 책 ‘징벌(Chasten- ing)’에서 외환위기 당시 IMF 실무협상단 마저 “립턴의 수많은 제안이 한국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깨닫고 분개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블루스타인은 또 이렇게 지적한다. “재무부의 한국에 대한 압력 뒤엔 한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미국 금융기관들의 로비가 있었다.”

오늘날에도 미국은 FTA 재협상을 요구해 한국과 타결을 보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기존의 2배로 올리라고 연일 압박하고 있다. 미국의 요구대로라면 한국은 당장 내년부터 미국에 1조를 더 내놔야 한다. 우리가 ‘국가부도의 날’을 보며 돌아봐야할 것은 힘들었던 과거가 아니라 ‘혈맹’이라는 오늘날 미국이 아닐까?

IMF로 바뀐 한국 경제의 구조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비단 과거의 아픈 기억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이다. 국민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의 ‘경제 구조’에 변화를 주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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