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읽고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온 한 사람의 조국이야기,

 

유미리 작가의 내가 본 북조선, 평양의 여름휴가를 읽고

 

서울독자 지은정

 

 

대동강 버드나무 가지들이 마른 바람에 조금씩 일렁거리고, 매미들이 쉴 사이 없이 맴맴거리며 시끄러이 울어대는 대동강 강변 어딘가 적당한 곳에, 아니 이왕이면 버드나무 바로 아래에 미리 준비해간 돗자리를 펼친다. 어디든 놀러간다면 김밥부터 싸대는 내 야릇한 성미 때문에 아침부터 부지런히 일어나 열심히 말고 썰어 도시락에 가지런히 담아놓은 김밥과 음료들을 꺼내어 놓고, 이제 막 옹알이를 하고 있는 우리 딸내미는 옆에서 연신 뭐라 뭐라 시끄럽게 재잘거린다. 항상 잠이 모자라 휴일이면 쉬고 싶어 하는 옆지기 신랑은 돗자리를 펼치자마자 그 위에 누워 눈을 감고 잠시 쉬더니 이내 일어나 대동강 맥주 한 병을 따서 단숨에 마셔 버리고,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강물의 일렁임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내가 본 북조선 평양의 여름휴가라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가장 먼저 떠올린 모습. 그것은 지금이라도 당장 북조선에 가 볼 수 있다면 내가 가장 먼저 하고픈 일중에 하나, 다름 아닌 대동강을 바라보고 앉아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과 함께 일상을 나누는 일. 그리고 이러한 나의 꿈이 우리 모두의 소소한 일상이 되는 일이야 말로 진정한 평화의 모든 것이자, 통일의 완성이 아니겠냐는 생각.

 

유미리. 나는 그녀를 잘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일본에서 상당히 유명한 작가라고들 했고, 이 책을 읽고서야 나는 그녀가 극작가이자 소설가이며, 우리말, 우리글을 전혀 모르는, 그러나 그녀의 조부와 부모의 고향은 경남 밀양인 재일교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미리, 그녀는 그녀가 불혹의 나이 마흔이 되던 해인 2008년 조선민주주의공화국 평양의 첫 방문을 시작으로 세 번의 조국 방문을 통해 그녀의 조국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그녀 자신의 뿌리 찾기혹은 정체성 찾기에 나서게 된다.책 속에서 그녀는 한국은 꼬박이 한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북조선에 대해서는 꼬박 꼬박 조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조국(祖國)이라… ‘할아비조나라국자를 쓰는 조국이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그 단어 설명이 이렇게 되어 있다.

 

(1) 조상 때부터 살아온 나라. 또는 자기가 태어난 나라.

 

(2) 민족이나 국토의 일부가 분리되어 다른 나라에 합쳐졌을 때 그 본디의 나라.

 

(3) 자신의 국적이 속하여 있는 나라.

 

냉정히 생각해보면 오히려 사전의 뜻에 좀 더 잘 부합하려 한다면 그녀 자신에게 조국은 남조선인 한국이어야 하는데, 그녀는 왜 꼬박 꼬박 한국은 그저 한국이라 칭하면서 북조선에 대해서만 유독 조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 현재 유미리, 그녀의 국적은 대한민국이라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조부와 부모 모두 고향이 경남 밀양으로 그녀의 뿌리가 되는 이들의 고향 또한 한국이거늘, 그녀는 굳이 그녀의 인생에 단 세 차례 방문했을 뿐인 북조선을 조국이라 칭하고 있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나는 그녀가 왜 그리 칭했는지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에게 있어 조국은 그저 자신이 태어나거나 조상들이 태어나 자란 나라 혹은 국적을 가진 나라가 아닌, ‘라는 존재에 대한 정체성을 일깨워 주고, 그녀 스스로에 대한 뿌리를 찾도록 해 준 나라, 우리말, 우리글도 모르는 재일교포가 라는 사람에 대해 새로이 깨어나게 해 준 나라가 바로 북조선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북조선을 조국이라 칭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열 번 이상 다녀간 한국에서의 기자회견 때마다 왜 한국말을 배우지 않느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본인은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그 말에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고 대답했다던 그녀가 2008년 북조선을 처음 방문하고 난 후, 우리말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유인즉슨, 대단한 무엇 때문이 아니라,북조선 사람들과 통역 없이 대동강 맥주를 마시고 명태를 씹으면서 우리말로 이야기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히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세 번의 조국 방문기를 통해, 그녀가 본 북조선의 모습 그대로를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그녀가 바라본 북조선의 모습은, 미국이 항상 전 세계를 향해 떠들어대는 악의 축’ ‘불량국가’ ‘깡패국가의 모습이 아닌, 그저 따뜻하고, 순박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바로 북조선 이라는 것을, 그곳에도 사람답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새삼스레 확인시켜 준다. 대동강 강변을 산책하는 주민들의 모습, 강변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모습,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평양거리를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 유원지 놀이기구를 타며 즐기는 모습 등등의 어찌 보면 꽤 사사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일상의 모습들을 소개하며, 북조선, 그곳에도 괴물이 아닌 사람이 살고 있음을, 그 사람들 또한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고 살 당연한 권리가 있는 존재들이며, 그들은 당연히 그렇게 평화로이 살아가고 있음을 책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한 번 각인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 하나. 유미리 작가가 만난 이옥기라는 사람. 그녀는 조선대학교 문학역사학부 강사이며, 67세의 여성이라 했다. 조선노동당 당원이었던 이옥기씨의 부친은 미군에게 붙잡혀 고문으로 양쪽 귀를 절단당한 뒤 살해되었고, 부친이 사망한 이틀 뒤 음식물을 가지러 집에 돌아온 7살 된 옥기씨를 붙잡은 미국 치안대는 공산당 딸은 불행해져라. 한 평생 고생해야 해라고 하면서 양팔 팔꿈치 부근을 톱으로 절단했다고 했다. 기적적으로 생명만 건진 옥기씨는 부친과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장애를 극복하고 입과 다리로 연필을 쥐고 공부하여 대학에 진학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인민군 장교 남성과 결혼을 하고, 세 명의 딸을 낳아 이름 또한 복수하리라라는 글자를 셋으로 나누어 복수’ ‘하리’ ‘라고 각각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만약 지금 그녀의 부친을 죽이고, 그녀의 팔을 잘라낸 미군이 그녀 앞에 나타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나는 너에게 아버지를 빼앗기고 양팔을 빼앗겼다. 그러나 너는 내게서 행복을 빼앗아가지는 못했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너에게 이겼다. 너는 내게 졌다.”라고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했다.

 

나는 이옥기라는 분의 이야기에서 유미리 작가가 느낀 느낌, 충격 이상의 감정을 느꼈다. 이옥기씨에게 있어 자신의 부친을 죽이고, 자신을 장애인으로 만든 미군이라는 적은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그녀로부터 아무것도 빼앗아 가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는 더 행복하게 살아남아 그녀의 모든 것을 통렬히 빼앗으려 했던 원수에게 행복하게 살고 있는 그녀의 삶전체로 충분히 복수 했다고 생각하는 것 이었다. 유미리, 그녀는 이러한 북조선 사람들의 모습에서 감동을 느끼고, 살아있음을 느끼고, 자기 자신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던 듯하다. 늘 뿌리도 없는 존재, 들풀처럼 자라난 재일교포 존재의 모습이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에게 있어 북조선은 그야말로 우리말을 배우고 싶게 하고, 대동강 강변을 떠나고 싶지 않게 하며, 소소한 일상을 누리며 따뜻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그녀만의 유일한 조국이었던 것이다.

 

유미리, 그녀가 20108월 마지막으로 북조선을 다녀온 이후, 여전히 남과 북은 분단국가이고, 여전히 남조선과 북조선은 갈라져 있으며, 남한에 있어서 북한은 국가보안법상 주적으로 규정되는 나라이다. 2011우리 민족 통일, 평화만세라고 외치며 분단의 벽을 넘었던 한상렬 목사님은 20134월인 지금에도 여전히 남한의 감옥 안에, 국가보안법의 굴레를 쓰고 갇혀 계시고, 수많은 양심들이 국가보안법이라는 막걸리 법으로 인해 무자비한 압수수색을 당하고 있으며, 또 수많은 양심들이 남한 이곳저곳 교도소에 양심수라는 이름으로 갇혀 있다. 2000615 공동선언, 200710.4 선언 이후 다시 빨갱이마녀사냥에 들어간 남측 정부는 2013년 여전히 종북’ ‘빨갱이콤플렉스를 벗어 던지지 못하고, 깨어있는 시민들을 향해 무자비한 공안탄압을 자행하고 있으며, 우리의 역사는 언제 다시 전쟁이라는 단어를 져버리고, ‘평화라는 이름을 영원히 정착시킬 수 있을지 아직 알 수 없는 상당히 불안하고, 어려운 미래 앞에 놓이게 되었다.

 

유미리, 그녀가 책 속에서 담담히 이야기 한 모습들, 그것이 바로 평화이건만, 내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처음 떠올린 모습들, 그것이 바로 통일이건만, 이 당연하고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길을 돌고 돌아 우리 역사의 수레바퀴는 다시 어디로 굴러갈 것인지 암담하기만 한 요즘, 다시 간절히 평화를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통일을 생각한다. 유미리, 그녀가 이야기한 일상들, 명태포 씹어 먹으며 밤새 이야기 꽃을 피우고, 백두산 천지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고, 대동강 맥주를 마시며 강변을 거니는 일, 한라산 백록담에 올라 더운 땀을 식히고, 손잡고 한강 강변을 거닐며 맥주 한 캔 나눠 마시며,경의선 열차를 타고, 신의주에서 서울을 지나 저 남쪽까지 여행할 수 있는 일들이 우리의 일상이 되는 일. 우리 모두의 삶이 되는 일. 그것이 바로 평화. 그것이 바로 통일.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 민족 모두의 행복.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문득 유미리,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미가 날아갔다일본에서 요소모노(아웃사이더)인 본인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조국에서의 매미소리, 그것은 그녀를 더 이상 요소모노(아웃사이더)가 아닌, 다시 유미리라는 사람, 그 자체의 존재로 느끼게 해주었다.

 

이제 올해 여름, 7월이 오면 나 또한 창문을 가만히 열고, 매미소리에 귀를 기울여 봐야겠다. 그리고 나지막이 소리쳐 봐야지. ‘매미가 날아갔다.’ 그리고, 매미소리에 유독 귀를 기울리던 유미리, 그녀를 다시 한 번 찬찬히 내 머릿속에 떠올리며, 그녀를 만나러 가야겠다. 그날은 바람이 좀 더 살랑이면 좋겠고, 매미소리가 내 방안 가득 울려 퍼졌으면 좋겠으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이 진정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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