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Kang 방북기8]대동강변 새벽산책길에서 만난 사람들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 방문기8

평양에서의 첫 새벽이다. 네 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잠이 깨었다. 옆 침대의 노 박사님도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컴퓨터를 켜신다. 민족통신 취재진이라 노 박사님의 책상엔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다. 북에 머무는 동안 민족통신에 기사를 올리면서 가끔 나를 불러 내게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연합통신 등을 통해 보여주셨는데, 그 인터넷은 내게 주어진 것이 아니어서 한 번도 내가 사용하지 않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이번 방문 동안엔 세상 돌아가는 것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인터넷을 들여다보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살펴볼 시간에 북부조국에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을 정리하고 사진 찍은 것을 저장하는 등 더 알차게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여섯 시가 되자 박사님은 미리 말씀하신대로 대동강으로 산책을 나가자고 하신다. 편안한 차림이지만 손엔 노트와 펜, 그리고 작은 카메라를 지참하고 호텔을 나선다. 아래층 로비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한 두 사람 정도 눈에 띌 뿐 아직은 조용한 시간이다. 해가 뜨기 전이라 새벽 공기는 시원하고 아직 차들도 별로 다니지 않는다. 길을 건너 대동강 옆의 산책로로 들어서려는데 입구에 아주 잘 생긴 인민군인 한 사람이 서 있다. 

노길남 박사님이 그 군인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 이렇게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법을 나도 좀 배워야 할 것이다. 북부조국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 몇몇이나 있는가? 아무 지인이 없는 이곳에서 누가 내게 대화를 청하기를 기다린다면 내가 몇 사람이나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이곳에까지 와서 무엇이든 많이 보고 배우려면 대화로 소통해야만 한다. 우리말로 소통할 수 있는 곳이니 그 얼마나 다행인가? 말을 건네고 대화를 시작하고 이끌어가는 것은 그렇지만 아무래도 사교적으로 타고나거나 아니면 노력을 해야만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자라날 때 그런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고 오히려 침묵은 금이라고 배우기까지 했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까지 편안하게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기가 어려워 의도적으로 사람들에게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 이번 기회에 언론사의 기자는 어떻게 대화를 터나가는지 지켜보면서 나도 배워보리라.

그런데도 아침 산책길의 첫 대화가 인민군이어서 그렇게 편안한 마음이 아니어서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다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그런데 이 사진이 노길남 박사님께는 정말 귀중한 사진이 될 줄이야 당시엔 아무도 몰랐다. 사실 이번이 62번째 방문길인 노 박사님은 이미 북에서 준비해둔 방문할 곳들 외에 처음부터 취재하고 싶어한 두어 가지를 김미향 안내원에게 요청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았었다. 그중 한 가지가 인민군대를 방문하여 북의 인민군대에서 구타가 있는지를 취재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남한에서 당시 윤일병 구타 사망사건 직후의 시점이라 기자의 입장으로 북의 인민군대는 어떤 곳인지를 취재하여 보도하고 싶어한 것이다. 한데 노길남 박사님의 그 요청은 어떤 이유에선지 실현되지 못했었다. 

실제로 인민군대를 방문할 수만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사실 인민군대에 구타가 있느냐의 문제는 인민군대를 찾지 않아도 며칠을 지나면서 쉽게 해결되었고 그래 박사님도 그 요청을 철회했다. 왜냐하면 새벽 산책길에서 만나 인터뷰한 군인처럼 우리가 가는 곳곳에서 종종 인민군인들을 만난데다 군대를 오래전에 제대하였거나 막 제대한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접할 수 있었기에 구타나 자살에 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며칠 만에 완전히 해결되었던 것이다. 그래 노길남 박사님이 숙소에서 인터넷으로 바로 그 기사를 민족통신에 올렸었다. 구타나 군대에서의 자살이 인민군대에선 있을 수가 없으며, 그런 단어 자체가 인민군대에선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기사였는데 그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하기로 하자. 

한편 노 박사님이 그 기사를 올릴 때 바로 내가 찍었던 이 한 장의 사진을 머리 사진으로 잘 활용하였는데 여기 첨부하는 사진이 바로 그 사진이다. 박사님은 자신이 인터뷰할 때 누가 사진을 찍어주지 않아 많은 경우 귀한 장면들을 놓치곤 했다면서 이 사진을 찍은 것을 아주 고마워했다. 그래 오늘은 내가 평생 꿈도 꾸지 못했던 사진기자의 노릇을 멋지게 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데 그 사진 또한 내가 뭘 몰랐기 때문에 찍게 된 것이기도 하다. 북에선 우리에게 촬영하는 일에 대해서 제한을 두지 않았지만 내가 며칠을 머무르는 동안 되도록이면 인민군은 촬영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남북이 아직은 대치하는 상황에서 인민군의 사진을 함부로 찍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도 피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내가 남한의 군인들의 사진을 찍어서 북에 유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건 상식인 것이다. 그런데도 가끔 만나게 되는 인민군들은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컸다. 무엇보다 정복을 입은 젊은 남녀 인민군인들의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그냥 스치고 지나치기엔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이후 여러 인터뷰를 통하여 인민군대엔 구타나 자살이 전무하고, 오히려 친 가족처럼 서로 돕고 사랑하며 지낸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박사님이 말씀해주셨을 때 내가 궁금해하던 것을 물어보았다. 노 박사님은 정말 인민군대에 구타가 없다는 것을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 그걸 직접 취재를 통하여 확인하려 한 것인지를 물어보니 정말 모르셨다는 것이다. 남한에서 기합도 세게 받은데다 구타도 당해보면서 군대를 제대한 박사님이 구타가 없는 군대는 아마 상상도 하지 못하였던 듯하다. 그래 박사님은 자신이 올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고 하신다. 그만큼 이 북부조국은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많은 사회인 것이다. 

인터뷰를 마친 노 박사님과 함께 대동강을 향하여 계단을 내려가는데 음악소리와 함께 사오십 명 정도의 나이 든 여성들이 천천히 몸을 움직이며 우리 춤 비슷한 동작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 곁을 지나치는데 춤을 모르는 나도 어깨가 으쓱으쓱 제법 신나는 가락이다. 박사님이 매일 이렇게 운동을 하시냐고 한 여성에게 물어보니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이만한 곳이 어디있냐고 하신다. 운동에 방해를 하지 않으려 멀찍이 떨어져서 사진 몇 장을 남겼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강가에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산책 후 쉬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운동복 차림으로 벤치에 앉아 책을 읽던 한 젊은 여성에게 노 박사님이 말을 건네니 친절하게 인사를 한다. 민족통신의 노길남 박사를 이제 북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 같다. 이 여성은 6년제 체육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6년제라면 대학원과 같은 격인 듯하다. 현재 22살로 그 학교의 6학년인데 ‘수영연구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수영선수인줄 알았는데 선수가 아니라 수영연구사라고 하니 참 생소하다. 그래 수영연구사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인가하고 물어보니 수영 선수가 더 나은 기록을 세울 수 있도록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뒷받침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 꿈을 꼭 이루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노 박사님은 젊은이들이 걸으면서 그냥 길을 가지 않고 대부분 손에 노트나 책을 들고서 공부를 하면서 걷는다고 해서 살펴보니 정말 그렇다. 북의 젊은이들이 길을 걷는 시간까지 아껴서 공부하는 것이 어쩌면 아주 오래된 관습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25년 전에 원산 시내에서 만났던 중학생 세 명도 당시에 영어 교과서를 손에 들고 바람을 쐬고 있어서 반갑게 만나 대화를 하다가 그 영어 책을 읽어보라고 하니 줄줄 읽고 그 뜻을 해석도 정확하게 했던 것이 생각났다. 열심히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있으니 이 나라의 미래는 밝고 환할 것이다. 그 공부가 특별히 스스로를 위한 공부이면서 또한 이웃과 조국에 봉사하고 헌신하기 위한 공부이지 않은가. (2014.10.7.)


3 COMMENTS

  1. 개방을 싫어한 게 아니라 미국이 봉쇄한 거 같은데…
    그건 그렇고 여기서 그 얘기는 글의 논점에서 벗어난 거 같은데요

  2. 자본주의국가 대도시들에서는 절대로 볼수없는 진정한 지상낙원의 종결자 평양~! 언젠가 통일되면 꼭 북한전역을 여행하고야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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