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Kang 방북기12]동무와 동지

미국에 계신 CJ Kang께서 9월 3~11일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NK투데이는 필자와 협의 아래 방북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의 승인 아래 원문의 표현 가운데 일부를 한국 실정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외부 기고는 본사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 방문기12

아침 식사 후 잠깐 휴식을 취하고는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북부조국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보고 듣고 배우게 된다. 김미향 안내원이 기다리고 있다가 우릴 맞아준다. 호텔 밖으로 나오니 주차장에 빼곡하게 들어찬 차들 사이로 우릴 발견하고는 어제 만났던 김영호 운전사가 차를 몰고 다가왔다. 김미향 안내원은 앞자리 오른편, 나는 뒷자리 왼 편에 앉았고 노길남 박사는 오른편에 앉았는데 우리가 평양에서 머무는 동안 늘 그곳을 자신의 자리로 삼았다.

아침 안개가 완전히 걷혀져 오늘은 날씨가 아주 화창하다. 오늘 오전은 만경대를 답사하게 된다. 달리는 차 안에서 노길남 박사가 어제 김미향 안내원에게 부탁한 안건에 대해서 꼭 이뤄졌으면 하고 다시 그 일을 거론한다. 다름이 아니라 지난번 방문기에서 거론한 적이 있는 인민군부대를 찾는 일과 또 다른 한가지다. 북에는 인권이 없다고 서방세계에서는 계속 북을 비난하고 공격하는데 이번 기회에 그 흉측하다고 소문난 요덕수용소를 방문하여 그들이 말하듯이 정말 거기 쥐들이 들끓는 가운데 사람들을 가둬서 때리고 먹을 것을 주지 않고 온갖 고통을 가하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인권을 귀하게 여기는 북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니 있는 그대로 서방세계에 알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미였을 것이다. 

김미향 안내원은 가타부타 대답이 없다. 그 표정을 살피지는 못했지만 조금 난감한 모습이었으리라. 본인이야 어디든 모시고 가고 싶겠지만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박사님의 의사를 전달하는 역할은 하지만 결정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이미 말했었다. 한편으로 이후에 내가 방문기에서 그 이야기를 쓰겠지만 북에는 요덕수용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우린 며칠 후에야 알았다. 김미향 안내원이 이미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존재하지 않는 수용소를 찾아가겠다고 하였으니 더더욱 난감했으리라. 

이때 노 박사님이 북에는 조선말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뜻의 말이 있지 않느냐고 하면서 정확하게 그 말이 어떻게 되는지를 운전사에게 묻는다. 그러자 김영호 운전사가 말하길 “무엇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조선말이 아니다”라고 지도자 동지가 말씀했다고 한다. 그러자 노 박사님은 김미향 안내원에게 절대로 자신이 요청한 것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말처럼 밀어붙여보라고 한마디 던진다. 김미향 안내원이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는데 나도 그 말이 이런 일에 사용할 수 있는 말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속으로 웃었지만 하도 노 박사님이 그 일을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임을 알기에 아무 말도 않고 바깥만 내다보며 사진을 찍는다. 결국 한참 만에 김미향 안내원이 한마디를 한다. “그 말을 말입니다, 아무 일에나 그렇게 갖다 붙여서 사용하는 말이 아니란 말입니다. 인민들이 힘을 모으면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이뤄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라고 해서 결국엔 참고 있던 웃음을 모두들 소리 내어 크게 한바탕 웃었다.

노 박사님이 안내원과 운전기사를 부를 때 이름 뒤에다 동무라고 불러서 내가 질문을 했다. “어떤 경우에 동무라고 부르고 누구에게는 동지라고 합니까?” 김미향 안내원이 대답하기를 동무는 자신과 직책이 비슷하거나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이 편안하게 서로 부르고,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도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동지는 직책이 높거나 존경하는 사람, 혹은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을 대할 때 부른다고 했다. 

그래 내가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도 그렇게 부르면 되는가 물어보니 당연하다고 말해준다. 그래 바로 박원심 접대원, 김영호 운전사, 김미향 안내원하고 부르는 것보다 더 친근하게 “원심 동무, 영호 동무, 미향 동무”하고 불러도 되겠느냐고 물어보니 우리가 여기 있는 동안 날마다 함께 지내게 되는 사이니 그렇게 불러달라며 훨씬 친숙하게 느껴진다고 말해준다. 김미향 안내원은 내가 기억하기로는 김일성대학을 나온 인텔리 여성 안내원으로 나보다 나이는 더 젊지만 그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조심스럽게 대해야겠다는 마음이 컷다. 그런데 이렇게 동무라는 호칭을 부름으로 서로 더 가까워지고 편안해질 수 있다 생각하고는 이후에 미향동무라고 종종 부르게 되었다.

북에서는 거기서 편안한 호칭을 쓰는 것이 좋다. 내가 접대원을 부를 때나 안내원을 부를 때 매번 접대원, 안내원하는 호칭을 부르는 것보다 이름에다 동무를 붙여서 부르면 편하기도 하고 더욱 친근감도 생기는 것 같다. 이렇게 좋은 호칭을 우린 금기시하는 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에 내가 지금부터 동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조차 오해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겠지만 이렇게 동무와 동지에 대해서 배운 후에 나도 편안하게 동무라는 호칭을 사용했고, 이 방문기에서도 동무라는 호칭은 앞으로 종종 등장하게 될 것이다.

어려서 우리들은 동무들과 함께 놀았었다. 동무들과 어깨동무도 했고 자치기도 했고 얼음위에서 썰매도 탓다. ‘동무들아 오너라 같이 놀자’라는 노래도 불렀다. 그런 것이 어느 때부터 친구라는 단어로 그 동무가 바뀌어버린 것이다. 의도적으로 동무를 못 쓰도록 학교에서 강요하지는 않은 듯하다. 그냥 그 단어가 책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 전부인 듯하다. 아무래도 매스컴에서 동무라고 부르는 호칭은 북에서 널리 사용하는 것을 보여주는 바람에 남에서는 민중이 자발적으로 동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게 된 듯하다. 내가 어렸을 때 방송에서 우스개소리로 북에선 ‘아버지 동무, 어머니 동무’, 심지어는 ‘할아버지 동무’ 하고 자기 부모도 몰라보고 동무라고 부른다고 북을 매도하고 막말을 하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간접적인 영향으로 동무라는 말이 남한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것같다.

아무튼 남쪽에서 요즘 이름 뒤에다 님 자를 넣어서 많이들 부르는데 그것처럼 북에서는 오래전부터 편안하게 동무로 불러온 것이다. 동무란 단어 안에는 너와 내가 똑같은 인격체로 평등한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느낌이 있지 않은가? 참 좋은 우리말이다. 그 동무를 다시 남쪽에서 사용한다면 북에서 널리 사용하는 호칭이라해서 탄압하게 될까? 길가다가 ‘영식이 동무’하고 불러도 괜찮을 날은 언제 오려나? 통일이 그보다 먼저 오는 것은 아닐까? 

근래에 인터넷 페이스북 친구들 사이에서 동무라는 호칭을 서로 사용하자고 한 사람이 있었는데 수많은 친구들이 거기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것을 목격했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서로에게 동무라고 불러주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제법 진보적이라고 스스로를 여기는 사람들끼리도 이건 쉬운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우리들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우리 자신이 알게 모르게 아주 깊숙하게 반공으로 세뇌되어 있는 증거의 하나가 바로 이 동무라는 단어를 편안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증명되어지는 것은 아닐까?

내가 종종 페이스북으로 알게된 사람들 가운데 나이가 비슷하면서도 사회적인 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친구들에게 동지라고 부르곤 하는데 그 말에 대해서 딴지를 거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그런데 나이가 좀 더 많은 분을 동지라고 부르면 존경의 표시이니 그분이 좋아해야 하는데 아마 이 글을 읽지 못하였다면 우리가 남한에서 사용하는 동지라는 말이 북의 동무처럼 비슷한 나이끼리 부르는 호칭으로 알고 있을 것이니 싫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동지는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에게 부르는 존칭이고 아무에게나 부르는 것이 아님을 염두에 두고 누가 나에게 동지로 불러주면 행복해하면 될 것 같다. 

한때 내가 더 젊은 친구들에게 서로 동지로 부르기로 하자고 한 적이 있는데 동지도 사용하고 동무도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 동지는 괜찮은데 동무는 아직도 많이 어색한가? 나 스스로도 북의 인민에겐 동무라고 불러보았지만 여기선 그렇게 부른 적이 없어서 참 생소함을 느낀다. 우리의 세뇌된 머릿속은 그렇게 씻어버리기가 어려운 것 같다.

대동강변을 달리던 차가 어느새 만경대에 도착했다. 약간 못미처 차를 세우고 걷는다. 25년 전에 북부조국을 처음 찾았을 때에도 첫 밤을 지낸 후 만경대를 찾는 것으로 그 일정을 시작했었다. 주변의 잘 정돈된 넓은 정원을 가로질러 약간 오르막을 오르면 김일성 주석이 탄생한 초가집이 나오는데 예전의 모습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하다. 입구에서 우리를 맞이한 사람은 황윤미 해설선생으로 외국어대학을 졸업했다고 한다. 여러 나라에서 오는 관광객을 안내하기 위해서 외국어가 필수일 것이다. 자주 오신 노 박사님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해설선생으로부터 만경대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고향집으로 들어간다.(2014.10.16.)

2 COMMENTS

  1. 개신교에서 부르는 형제님 자매님보다는 저는 동무 동지 선생이라는 말이 더 친근해보이더군요? 원래 일제시대까지는 친구라고 안부르고 동무라고 불렀던거 아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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