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Kang 방북기13]만경대 고향집에서(1)

미국에 계신 CJ Kang께서 9월 3~11일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NK투데이는 필자와 협의 아래 방북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의 승인 아래 원문의 표현 가운데 일부를 한국 실정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외부 기고는 본사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25년만에 다시 찾은 북부조국 방문기13

황윤미 해설선생의 안내로 고향집으로 들어선다. 오른편이 본채이고 왼편이 사랑채다. 이곳 만경대 고향집엔 김일성 주석의 증조할아버지 대부터 살아왔는데 그분은 이곳 만경대 일대의 넓은 땅을 소유한 대지주의 산당지기였다고 한다. 그 지주의 조상들 묘들이 이곳 만경대에 있었고 그 묘들을 지키고 돌보는 일을 김 주석의 증조 할아버지대부터 했다는 것이다. 연도로는 1862년부터 1959년까지 4대에 걸쳐서 가족들이 이 집에서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김 주석은 1912년 4월 15일에 이 집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김형직 선생, 모친은 강반석 여사다. 이곳 뒷산 만경대는 김 주석이 동네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던 놀이터였다. 이미 5살 때 부친 김형직 선생께선 식민지 시대의 일제에 대한 혁명투쟁으로 검거되어 평양 감옥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반일지하조직인 ‘조선국민회’를 김형직 선생이 조직하였다가 잡힌 것이다. 아버지가 온 몸에 멍이 든 모습을 보고는 그렇게 만든 일제에 대해서 김 주석은 어려서부터 원수로 여겼다. 

1919년 3.1 인민봉기가 일어나자 김 주석은 7세 때에 그 시위에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하고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고, 일제는 전체 조선민족의 원수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후 부모와 함께 중강으로 이사했는데 그곳에서도 일제의 식민지배는 마찬가지여서 조선 전체가 왜놈 감옥이라며 다시 만주 통화성 림강을 거쳐 장백현 팔도구로 가서 거기서 부친은 반일투쟁을 하였고, 김 주석은 그곳 소학교를 졸업하였다고 한다.

부친 김형직 선생이 김 주석에게 ‘먼저 조국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에 따라 12세 되던 해인 1923년에 ‘배움의 천리길’을 혼자서 걸었다고 한다. 3월 16일에 출발하여 이곳 만경대 고향집에 3월 29일에 도착하기까지 노상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었고, 30리 떨어진 칠골의 외가로 가서 2년 동안 창덕학교에서 공부했다. 

1925년 1월 중순에 아버지가 다시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원수를 갚기 전엔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조국광복의 큰 꿈을 품고 ‘광복의 천리길’을 다시 떠나 중국 동북지방의 무송제1소학교에 편입하였다. 다음해인 1926년에 부친 김형직 선생이 감옥에서의 고문 후유증으로 30세의 젊은 나이에 서거하였다. 김 주석은 화성의숙에 입학하여 그때부터 첫 혁명조직인 ‘ㅌ ㄷ (타도제국주의동맹)’을 조직하였고, 이후 1927년에 길림 육문중학교에 입학하여 거기서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을 조직하면서 일제와의 투쟁을 전개해나갔다.

이곳 고향집에 남아있던 할머니를 일제는 김 주석이 항일투쟁을 하던 시절 16년 동안이나 끌고 다니면서 괴롭혔다고 한다. 빈손으로 떠났던 김 주석이 나라를 되찾고 돌아왔지만 이곳 고향집은 바쁜 일정에 바로 찾지는 못하고 두어 달 후에야 찾았다고 한다.

사랑채엔 여러 가지 농기구들과 물레, 독 등속이 진열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멍석엔 김 주석이 해방 후 이곳 고향집을 찾았을 때 사용했다는 팻말이 붙어있다. 고향집을 찾은 그날 이미 부모님들은 서른과 마흔의 나이로 모두 이국에서 돌아가셨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 집에서 반겨 맞아주었을 때의 감회가 어떠했을까? 모두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한편으로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님과 눈밭에 묻고 온 숱한 동지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내가 25년 전에 찾았을 때 보았기에 기억에 뚜렷한 쭈그러진 독이 그대로 있는데 황윤미 해설선생이 다시 설명해주어서 보다 정확하게 그 독의 유래를 알게 되었다. 1874년 김 주석의 증조할머니가 이른 새벽에 독을 구입하러 나갔다가 저물어서야 돌아오면서 구입해온 독이다. 집에 꼭 필요한 독을 장만해야 하겠는데 수중에 있는 돈으로는 도저히 구입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 결국에 저 쭈그러진 독을 보고는 왜 그렇게 된 것인가 물어보니 불을 너무 세게 주어서 열을 많이 받아 오므라졌다는 것이었다. 증조할머니는 당시 짚신 한 켤레 값으로 그 독을 구입하면서 ‘독이 쭈그러졌다고 장맛이야 변하겠느냐’하고 그 독을 구입하였는데 지금까지 140년 동안이나 그 독을 보존하게 되었다고 한다. 

25년 전 내가 방문했을 때 해설선생은 당시에 이런 말을 한 것을 기억한다. 사람들이 저 독을 구입한 것을 보고는 모두가 웃었는데 당시 증조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저 독을 보고 비웃을 때 내 가슴속에는 피눈물이 났다’라고. 그렇게 김 주석의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하였다는 것을 저 쭈그러진 독이 오늘까지 증명하는 것이다. 

북부조국이 해방 후 토지개혁을 혁명적으로 실시한 것은 김 주석이 이렇게 가난한 집안 출생이었다는 것도 크게 작용하였으리라 생각해본다. 대부분의 인민이 농업인구인 시절에 정의롭지 못한 토지의 소유제도로 인하여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지주로, 그리고 대부분의 인민들은 소작농 혹은 소작조차 할 수 없는 처지의 상황이었다. 이 문제를 새로 되찾은 조국 땅에서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지주가 가진 그 넓은 땅이 조선왕조 때부터 소유했던지 아니면 친일파가 되어 일제에 협력하여 큰 땅을 차지하였던지 간에 광복을 한 마당에 그 지주들의 소유를 그대로 두면서 새 나라를 세울 수는 없는 것이다. 

나중에 내가 북의 학자와의 인터뷰를 통하여 들은 대로 토지개혁과 그 이후의 일에 대하여 자세하게 서술하게 되겠지만 북은 1946년 3월 5일에 토지개혁법령을 공포하여 3월 한 달 동안에 북에서 모든 지주들은 없어졌다고 했다. 지주들의 토지는 무상으로 몰수하여 땅이 없는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한 것이다. 우리들은 소련군이 북한 전역을 통치할 시기라고 여긴 이 시절에 이미 북한은 자주적으로 이렇게 중요한 토지개혁 문제를 해결해내었던 것이다. 

해설선생이 이제 본채 안에 걸려있는 사진들로 안내해준다. 첫 번째 방엔 조부모님들의 사진과 김 주석이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와 고향집을 찾아 조부모님과 만나 기쁨의 상봉을 하는 사진들이 걸려있다. 얼마나 기뻤는지 당시엔 사진을 찍을 때 일부러 웃으며 찍을 시기가 아닌데도 할머니가 환하게 웃고 있다. 김 주석의 표정도 아주 밝고 자신에 찬 모습이다. 

이곳 고향집이 지어진 이후 저 날은 살아남은 가족들의 가장 기쁘고 행복했던 날이었을 것이다. 또한 김 주석이 고향집을 찾는 것을 알고 찾아온 이웃들과 인민들도 그 기쁨을 함께 나눴을 것이다. (201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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