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 목사 방북기4]남과 북, 해외동포가 한데 어울려 춤을 추다

나의 이번 방북 기간은 2014년 9월 25일 부터 10월 6일 까지 이며 내가 설립한 NK VISION 2020의 중요 기관 중에 하나인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 원장의 자격으로 방문을 했다. 특히 이번 방북에는 평소 중국과 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은 미국 시민권자 신분의 목회자 부부가 학술원 회원의 자격으로 나와 함께 동행을 했다. 

이번에 나의 방북 목적은 종교적인 업무와 학술적인 업무를 비롯하여 남과 북의 양측 사회가 서로 소통하고 통합 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 세 명은 매우 차분하면서도 기대감이 넘치는 마음으로 중국 심양에 당도하여 북한 영사관측으로부터 비자를 받고 평양발 고려항공편에 몸을 실었다. (필자)


편집자 주: 통일뉴스 동시 게재

단군은 분단시대 통일 아이콘이 될 수 있나?

나는 공연장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라는 자문과 함께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그러 했듯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민족화합과 화해협력’을 부르짖으며 부지런히 남과 북과 해외를 오가다 보면 얼어붙은 DMZ 철조망에도 통일의 봄기운이 서서히 피어오르지 않겠는가 생각해 보았다. 차창 밖을 바라보며 정신을 가다듬고 있노라니 나 자신이 마치 꽃밭을 그리워하는 한 마리 나비가 피로 적셔진 날개를 이끌고서라도 꽃을 향해 힘겹게 날갯짓 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 된 것 같은 나 자신을 새삼 발견하게 됐다. 아무리 내가 날개 짓 하며 몸부림을 친다 해도 결국 우리 모두는 아직도 동맥과 정맥이 끊어진 채 야위어 가는 모습에 불과 할 뿐이다.

나의 호기심의 촉수에 의해 포착된 오늘 단군릉 개천절 행사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남과 북과 해외 동포가 행사를 치루기 위해 시조를 모신 묘역에 모였다 한들 그 동안의 단절의 공백 때문이었을까? 서로가 응시하는 눈빛과 생경스러운 몸짓들은 어쩔 수 없는 한계처럼 보였다. 고구려의 기백과 신라의 우아한 정신이 서로 만났으나 특별하게 할 이야기가 없었는지 서로가 어색하게 애꿎은 하늘만 쳐다보는 것만 같아 보였다. 아직도 우리들의 마음속 정원에는 나무 한 그루 심지 못할 정도의 황폐함이 남아 있어 서로가 조금은 어색 했고 경계의 눈초리는 여전 했다. 

저 창공은 이미 날아다니는 새 떼들과 밤하늘의 은하수 별들이 온통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하늘은 저토록 끝끝내 하나 됨을 굳건히 지켜왔건만 우리들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초조한 얼굴로 서로를 탐닉하며 서 있는가? 그래도 거의 10년 만에 겨우 힘들게 만나서 이 정도면 그래도 양호한 것으로 봐야겠다. 앞으로 남, 북, 해외 3자가 매년 개천절만이라도 꾸준히 만남을 유지 한다면 8천만 겨레가 하나 될 수 있는 원동력을 발산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차피 우리는 같은 조상인 단군의 이름 아래 여기 함께 모였으니 그 의미가 주는 힘으로 서로 소통해야 한다. ‘소통의 단계’를 넘어서서 ‘사회 통합의 과정’을 거치면 그것이 결국 ‘통일에 이르는 길’이라고 여겨진다. 

뜨거운 열기의 축하 공연장

우리 일행은 단군 유해가 안치된 지하 묘실을 둘러보고 개천절 행사 마지막 순서로 마련된 축하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단군릉 중간 계단에 조성된 대리석 광장에 도착했다. 단군릉 전체 건축물들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위용을 드러내는 부분이 바로 돌계단이다. 이 계단은 그 규모가 워낙 길고 높다 보니 멀리서 봐도 계단의 중간 부분에 이런 광장이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단군릉의 계단은 맨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다 볼 때나, 맨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볼 때나 눈에 비치는 광경은 가까운 듯, 멀게 보여 지는 신비감이 느껴졌다. 

이처럼 여러 시설물들은 구석구석 그 용도와 미관이 조화를 이루도록 배려하여 설계된 흔적이 엿보였으며 설계자의 수준 높은 건축 미학이 느껴졌다. 나는 공연을 보기도 전에 벌써부터 계단의 웅장함과 무대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 자체만으로도 흥겨웠다. 마치 비밀의 정원같이 꾸며진 공연장에 당도하니 우아한 전통 문양과 예술적인 그림들을 그려놓은 세트들이 적절히 배치된 수준 높은 야외 특설 무대가 나타났다. 이미 계단에는 벌써부터 수많은 평양시 강동군 주민들이 우리를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며 앉아 있었고 공연 시작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흥겨운 분위기로 들 떠 있었고 그 열기는 작열하는 태양빛과 함께 더욱 뜨겁게 느껴졌다.

남측 대표와 해외 동포단이 차량에서 내려 무대 뒤를 통해 좌석을 향해 입장하자 개천절 본 행사 때와 마찬가지로 북녘의 청중들은 이번에도 우리를 향해 열화와 같은 박수를 쳐주었다. 나는 공연 관람을 위해 계단 하단부에 마련된 해외 동포단 지정석에 자리를 잡았다. 착석하기 전에는 좌우 주변에 앉은 동포들과 저 멀리 뒤편에 앉아 있는 북녘 주민들을 찾아가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이것이 어찌 통일 아닌가?

 

이윽고 낮 12시가 되자 공연이 시작됐다. 하늘은 맑고 구름 한 점 없는데다가 얼굴이 익어 버릴 정도의 태양열 때문에 나를 비롯한 청중들은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따가운 햇빛에 노출 되었다. 청중들은 제 각각 손바닥이나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나 역시 더위를 참다 못 해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며 선글라스를 꺼내 착용하고 말았다. 

드디어 미모의 여성 아나운서가 가냘픈 목소리로 오프닝 멘트를 함으로써 공연이 시작됨을 알렸다. 다른 군더더기 순서 없이 공연 프로그램은 세련되게 진행됐다. 노천무대에서 펼쳐진 공연의 제일 첫 순서는 푸른 제복의 여성 브라스밴드단의 취주악 공연이었다. 신바람 나는 경쾌한 행진곡 연주와 절도 있는 행진 안무를 보여주자 청중들은 일제히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어서 국가 대표급의 최정예 남여 태권도 선수 15명이 나와서 다양한 무술과 격투기, 격파술등의 시범공연을 보여줬다. 그동안 나도 한국과 미국 등지에서 태권도 공연을 하는 것을 수없이 목격했으나 이처럼 놀라울 정도로 기백이 넘치고 고난도의 예술적 태권도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이북의 태권도는 이남의 태권도 무술 방식과는 확연하게 구별됐다. 

특이한 점은 선수들의 몸동작이 바뀔 때 마다 어디선가 바람소리가 크게 났다는 것이다. 현장감을 주기 위해 선수들이 의도적으로 입에서 입술바람소리를 내는지는 몰라도 실제로 선수들 대열 속에서 칼바람 소리가 휙휙 나니까 청각적인 요소가 가미돼 긴장감이 더해지면서 보는 재미를 더 했다. 무술의 강력한 경계선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예술적인 기교를 적절히 곁들인 수준 높은 태권도 공연이니 만큼 청중석에서는 연신 탄성소리와 박수갈채가 끊이지를 않았다.

이어서 피바다 예술극단 단원들의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다. 독창, 중창 가수들의 흥겨운 노래들이 한참 동안 이어졌고 중간에 관악기 연주의 달인이 나와서 여러 악기들을 연속으로 연주하는 순서도 있었고 전통 농악놀이패들의 사물놀이 공연도 매우 이채롭고 흥겨웠다. 이어서 극단의 젊은 남녀 무용단원들이 나와서 다양하고 신기한 고난도의 여러 안무들을 선보여서 공연의 격을 한층 높여 주었다. 또한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 낸 탈춤극은 남측의 탈춤극과는 사뭇 다른 맛이 있고 해학적이어 폭소를 자아내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특히 이날 공연의 백미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한복(조선옷)을 입은 여가수들이 나와서 독창과 중창으로 민요들을 부를 때 드러났다. 흰 두루마기를 입고 자리에 앉아 있던 남측의 장두석 선생이 흥에 겨워 무대로 걸어 나와 덩실 덩실 춤을 추면서 가수들과 어울려 춤을 추곤 했는데 그가 춤을 추러 나갈 때는 점잖게 앉아 있는 북측 대표들에게도 다가가 손을 잡아 이끌며 함께 추도록 유도 했다. 그와 더불어서 임재택 선생과 이애주 교수도 자주 무대에 달려 나와서 흥겹게 춤을 추어 공연 분위기를 더욱 화기애애하게 해 주었다. 

이에 뒤질세라 북측의 청중석과 해외동포 청중석에서도 끼와 흥이 있는 이들이 줄줄이 무대로 달려 나와 잔칫집에 춤판 벌어지듯 서로 어우러져 춤을 추는 바람에 이날의 의미를 더욱 부각시켜 주었다. 역시 우리 민족의 핏줄에는 남이나 북이나 모두 음주가무에는 동일한 끼가 흐르고 있었다. 객석에서 합세한 춤꾼들이 무대의 가수들과 춤을 출 때 마다 청중들도 박수 소리로 박자를 맞추며 흥겹게 따라 불렀다. 

무엇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객석에 앉아 있던 이름을 알 수 없는 북녘의 여성 춤꾼과 일본에서 참석한 어느 여류 무용가 그리고 남측의 시국 무용가 이애주 교수, 이렇게 이 세 여인들만 동시에 무대로 달려 나와서 서로 경쟁하듯 흥겹게 어깨춤을 추는 장면이었다.

미리 사전에 약속이나 연출을 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 여인의 즉흥 춤은 가히 감탄사가 나올 정도의 멋진 춤사위들이었다. 꽃일레라, 나빌레라, 어쩌면 그리도 춤을 잘 추는지 그녀들의 춤 자체는 이미 남, 북, 해외 3자가 합일되는 경지에 이르러 통일 한 마당 그 자체였다. 격동의 현장에서 한 평생을 살아오던 그녀들이 그동안 모질게 겪어왔던 원초적인 한과 서러움 그리고 가슴을 후벼 파는 분단의 비극들을 온 몸으로 멋스럽게 토해 내자 감동을 넘어서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일이 목격되었다.

특히 남측의 이애주 교수는 민요가수들이 노래를 부를 때 마다 거의 단골로 달려 나와 그녀만의 특이하고 고유한 한풀이 춤들을 흥겹게 승화시켜 주어 청중석의 탄성소리가 연이어 들려오게 했다. 그녀의 즉흥 춤사위는 정식 공연을 보면서 동시에 또 다른 공연을 만끽하는 효과를 주는 것 같았다. 

남과 북과 해외동포가 흥에 겨워 더덩실 얼싸안고 어깨춤을 추며 서로가 어깨동무를 하는 오늘의 이 모습이야 말로 바로 우리들이 진정으로 소원하는 남북통일의 이상향이며 실체가 아니던가? 

우리들은 왜 춤을 추는가?

솔직히 말해 공연장에 모여 있는 우리 모두는 서로가 허심탄회하게 심금에 있는 것들을 잡담같이 터놓고 대화하고 싶어 했고 서로의 입속에 먹거리를 넣어주며 엉큼할 정도로 밤새 어깨동무하며 서로를 토닥이고 싶었으나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방금 전까지 서먹했던 남, 북, 해외동포들은 공연을 빌미로 한바탕 춤판을 벌린 것이다. 동네 잔칫집 멍석위에서 자신의 치부와 자랑을 모두 드러내며 아무런 가식 없이 이웃끼리 뒤엉켜 춤을 추며 회포를 풀고자 했던 우리네 조상들이 그러했듯이 여기 모인 우리들은 서로의 한과 서운함들을 공연장 멍석위에서나마 풀고자 했던 것이다. 

춤을 추는 그들의 얼굴 표정과 몸짓과 손짓들 그리고 치맛자락과 두루마기의 너풀거림 하나만으로도 그들의 메시지를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세 여인들의 춤사위들은 볼수록 우아하며 한이 서려 있었다. 그녀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노천무대를 마치 제 집 안방을 누비듯이 이리저리 휘돌아 돌며 새처럼 나비처럼 자유부인들이 되어 있었다. 청중들은 숨을 죽여 가며 세 여인들의 손가락 끝과 치맛자락을 응시하기도 했고 때로는 그녀들의 몸짓에 덩달아 어깨를 들썩이며 흥겹게 박수를 쳐주거나 때로는 박장대소하기도 했다. 

저 세 여인들의 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나는 몹시도 흥분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알 수 없는 서러움과 회한이 복받쳐 올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결국 민망스러운 눈물을 쏟아 내고 말았다. 아마도 나의 어머니 같은 그녀들의 몸짓에서 부뚜막에서 달그락 거리는 나의 어머니가 오버랩 됐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자 했던 한 많은 우리 조선의 여인들의 혼이 녹아들어서 그랬는지 나도 뛰쳐나가 그녀들과 함께 어울려 춤을 추고픈 충동을 일으켰다. 그녀들의 창의적이고 자유분방한 춤사위들은 기교를 넘어서 태초에 주어진 인간 본성의 자유 그 자체였으며 이 땅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의 파도와 몸부림 그 자체로 보였다.

특히 60년이 넘도록 한 평생 춤만 추며 살아온 이애주 교수는 이 날 머리 끝 부터 발 끝 까지 흰옷을 입고, 머리에는 흰 족두리를 쓰고 신들린 듯 춤을 추어댔다. 스카프 같은 흰 천 자락 하나를 바람을 거머쥐듯 휘감아 들고 종횡무진 뛰어 다니며 한을 풀어냈다. 그녀의 손에서 펄럭이는 천 자락은 화가의 유려한 붓놀림처럼, 음악의 선율처럼 부드럽게 휘날리며 선녀처럼, 무녀처럼, 때로는 새색시처럼 다면적인 모습으로 우리들을 하나로 묶어 주었다. 단신의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정열의 에너지 때문에 보는 이들은 마치 자기 자신이 수행자나 도인이 된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세 여인들의 춤바람은 우리들의 핏줄 속에 살아 있는 단군의 숨결과 함께 하늘로 솟구쳐 올라 다시 시원한 바람으로 우리에게 감돌아 들어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더구나 춤꾼들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창공의 새들은 이날따라 더욱 자유롭게 보였다. 차라리 저 새들은 우리들보다 더 악착같이 살면서도 아픈 일들은 우리들보다 더 훨씬 빨리 잊어버리고 용서할 줄 안다. 새들은 오히려 총성이 들리는 DMZ 숲속을 우리들 보다 먼저 찾아가서 편안하게 집을 장만하거나 지뢰가 묻혀 있는 외 딴 숲속과 대지를 찾아가서 넉넉하게 집을 짓고 알을 품고 살지 않는가?

단군이 보는 앞에서 그동안 헤어졌던 남과 북과 해외동포가 한데 어울려 한바탕 더덩실 어깨춤을 추는 것을 보니 지하의 단군님도 기뻐 할 것만 같았다. 이윽고 1시간 30분 동안의 공연 시간이 막을 내렸다. 아쉬운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른 듯 했다. 여인네들이 보여준 오늘의 춤사위는 내가 죽는 날까지 잊지 못 할 것 같은 감동이었다. 그녀들의 치맛자락으로 그려낸 반만년 역사의 한을 나는 무엇으로 풀어야 하나? 

기약 없는 이별을 하다

공연순서가 모두 끝나자 무대에 출연했던 모든 단원들이 일제히 나와서 피날레 노래를 함께 부르며 청중을 향해 꾸벅 인사하는 것으로 개천절 행사는 모두 끝이 났다. 이제는 석별의 정을 나누는 시간이 다가 온 것이다. 이윽고 북측 대표단들과 공연 출연자들이 출구방향을 향해 도열하듯 한 줄로 늘어서서 떠나가는 대표단들의 두 손을 꼭 잡아주며 일일이 배웅을 해준다. 태권도 시범을 보여준 청년들이 눈에 띄자 나는 남녀 구분 없이 일일이 그들을 모두 얼싸 안아주며 포근한 인사를 나눴다. 그들을 안아줄 때, 진한 서러움과 아쉬움에 가슴이 통증처럼 아파왔다.

“선생님, 통일의 날이 멀지 않았으니 건강하시고 장수하시라요”

“아. 그럼요. 오늘 시범 공연 아주 훌륭했어요. 우리 청년들도 건강하고 내년에 멋진 모습으로 다시 만나요”

그들은 누구에게든 저렇게 인사를 건네주었고 나 역시 저런 식으로 화답을 했다. 태권도공연을 보여준 청년들의 손은 투박했지만 의외로 뜨거웠다. 아니 그들의 손에도 나와 똑같은 피가 전류처럼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민족이며 그것이 곧 단군의 피였다. 

갑자기 여성 취주악단이 구성지면서도 우렁차게 ‘이별의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장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합창하듯 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으며 우리들도 힘차게 따라 불렀다. 

“백두에서 한라로 우린 하나의 겨레, 헤어져서 얼마냐, 눈물 또한 얼마였던가.

부모 형제 애타게, 서로 찾고 부르며, 통일아 오너라, 불러 또한 몇 해였던가.

잘 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 가시라 다시 만나요, 목메어 소리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

이미 남측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잘 알려진 이정술 작사, 황진영 작곡의 ‘이별의 노래’는 이 날 모인 사람들이 수없이 반복해서 불렀다. 구성진 가락이 단군릉 전역에 메아리쳐 울려 퍼지니 떠나가는 대표단들도 배웅하는 북측대표단과 주민들도 눈물을 글썽였다. 수천 명이 동시에 구성지게 부르는 이 거대한 합창을 생각해보라. 특히 남측 대표 단원들은 그제서야 석별의 정을 실감하듯 아쉬워하는 빛이 역력했다. 가슴이 메어지고 콧등이 시큰거려 애써 시선을 외면하는 사람들, 아예 대놓고 펑펑 우는 사람들, 눈물을 흘쩍이며 손수건을 꺼내 닦는 사람들, 차량에 탑승하고도 못내 아쉬워 다시 차에서 내려 손을 흔들거나 다시 손을 부여잡고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모두가 그제야 자신들이 평양에 왔음을 실감하는 눈치였다. 

‘아무런 죄 없이 피어난 들꽃 같은 우리에게 엄동설한의 모진 칼바람이 아직도 남아 있단 말인가? 그토록 모진 겨우살이를 오늘부터 또 다시 겪어야 하는 것인가? 얼마를 더 견뎌야 봄날이 오는 것인가? 우리가 가야 할 아름다운 길은 오직 이 것뿐이 없는가?’ 이런 애절한 자문에 속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사람은 이날 아무도 없었다. 

부지런히 북녘을 향해 달려왔듯 이제 각자가 자신이 왔던 그 길로 되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원래 한 몸뚱이였던 우리들은 서로 갈라질 수 없고, 찢어질 수 없음에도 어쩔 수 없이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만 한다. 핏줄의 강력한 이끌림 때문인지, 서로가 헤어지기 못내 아쉬워 뭉그적거리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니 애초부터 우리들은 헤어진 것도 아니었고 우리가 딛고 있던 이 땅도 애초에 두 동강이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대표단을 태운 각종 차량들이 단군릉 주차장을 빠져 나가기 위해 서서히 움직였으나 다시 차를 세워 놓고 손을 흔들거나 차량에 내려서 군중들 가까이 가서 몇 마디라도 이야기를 나누려는 이들로 인해 주차장은 또 다시 혼잡해졌다. 북녘의 주민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우리들의 차량 행렬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 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저들의 그러한 모습 때문에 나의 마음은 더욱 시리고 저려왔다. 

이토록 간절하게 통일을 바라는 우리들의 마음이 모두 한데 모아진다면 상상할 수 없는 큰 뜻과 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오늘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모은 날이 아니라 차라리 지난날의 쓰라린 상처들을 서로가 훌훌 털어버리는 화해의 마음을 나누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단군릉을 빠져나가는 차량 안에는 길가에 뒹구는 녹슨 철조망 한 토막을 발견해도 가슴이 두근거려 걸음을 멈추고 휴전선 철조망을 떠올리는 남녘의 소소한 민초들이 척박한 이민자의 나라에 살면서도 통일로 가는 길을 찾아 헤매는 동지들과 함께 재회를 약속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적어도 춤추던 저 여인네들의 어깨들이 폭풍우와 눈보라 때문에 다시는 풀려 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단군릉을 빠져나가는 이 순간의 생각이 그러 했다. 

최재영 목사 


한국 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위원

미국 The Light of Glory Church 담임목사 역임

소셜무브먼트그룹 NK VISION 2020 설립 & 대표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장 & 동북아종교위원회위원장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해외총회 남가주노회 소속 

미국 풀러신학교 대학원 선교목회학 박사

미주장신대학교 대학원 구약학 석사

미주총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석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철학교육학

안양대학교 신학과 同 신학대학원

2 COMMENTS

  1. 술과 마약 그리고 음주운전질에 성폭행을 일삼는 대한민국의 추악한 연예계인사들이여~! 저기 북녘연예인들을 보고 좀 배워라!

  2. 조선중앙TV 방송원인 문진혁이랑 김윤심이야말로 왠만한 연예인들 못지않은 외모를 뿜어주며 모든 북녘여성들을 사로잡게 만들게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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