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교회를 가다⑤ 평양정백교회 편(상)

 

이번 시리즈는 총 15회에 걸쳐 북한의 ‘범 기독교 교회’들을 탐방한 ‘북한교회를 가다’를 연재합니다. 남한이나 서구식 기독교가 아닌 ‘북한식 기독교’의 실상을 살펴보며 마치 초대교회 형태처럼 정착한 ‘북한식 사회주의 교회’에 대한 인식과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합니다. (최재영 목사 이메일: 9191jj@hanmail.net)

편집자 주: 통일뉴스 동시 게재

 

개신교 목회자에게도 생소한 동방정교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교회’ 앞에 ‘동방’ 혹은 ‘서방’이란 단어를 붙여 로마가톨릭과 구분하며, 이어서 같은 정교회 교단이라 해도 ‘그리스’ 혹은 ‘러시아’라는 호칭으로 교파를 구별해야 비로소 이해한다. 이처럼 ‘정교회’는 목회자인 나에게도 타종교(이웃종교)도 아닌 형제교회(기독교 교단)인데도 매우 낯설고 생경스럽다. 특히 남과 북 공히 사전적 해석에 의해 ‘정교회’를 일컬어 ‘사원’이란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는 불교사찰을 연상시켜 혼선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그럴 경우 사제들도 ‘승려’라고 불러야 한다. 그래서 나는 정교회 예배당을 주로 ‘성당’ 혹은 ‘교회당’으로 언급하며 정교회 사제를 ‘신부’로 지칭한다.

내가 방문한 평양 정백교회는 서방교회(로마 가톨릭)와 구분되는 동방정교회이며, 동방교회 안에서도 그리스정교회와 구분되는 러시아정교회 소속이며 아울러 그 명칭도 다양하다. 우선 평양시 정백동에 위치했기 때문에 ‘정백교회(성당, 사원)’ 라고 흔히 불려지며, 가장 정확한 명칭은 모스크바 교구에서 정식으로 부여한 ‘성삼위일체교회(성당, 사원)’라고불러야 한다. 영어로는 ‘Holy Trinity Church’ 혹은 ‘The Holy Trinity Russian Orthodox Church’ 로도 부른다.

현재 남측에는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에 ‘성 니콜라스 주교좌 대성당’이 있고, 북측에는 평양시 낙랑구역 정백동에 정백성당(성삼위일체 성당)이 있는데 이 두 교회당은 각각 국가적 대표성과 상징성을 지니며 자국 교단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은 내가 그 동안 평양 정백교회당을 두 차례 방문하면서 겪은 이야기들과 자료들을 모두 나누고자 한다.

쉐뜨꼽스끼 신부 이후의 파란만장한 조선정교회 역사

평소 아무리 생각해도 이북 땅, 평양 한복판에 러시아정교회 예배당이 세워졌다는 사실 자체가 내겐 마냥 신기함과 함께 파란만장한 역사 사색의 소용돌이로 자주 내몰곤 한다. 지금부터 110년전인 1900년경에 조선으로 파송된 러시아정교회 선교사 흐리산프 쉐뜨꼽스끼(Хрисанф Щетковский)신부가 입국해 이북지역을 순례한 이야기를 자주 떠올린다. 당시 그는 서울을 출발해 원산, 함흥, 북청, 성진, 경성, 경흥 등 이북의 험산준령을 종주하며 이북지역에 교회당을 세우고 복음을 전파하려는 부푼 꿈을 실현하기 위한 첫걸음을 뗐다.

그는 여행 중에 조선의 풍경과 문물, 민초들의 삶을 체험했으며 특히 정든 고향 땅을 등지고 아예 고국을 떠나 이방인의 땅 우수리스크, 자바이칼 등에 정착한 조선 이민자들이 겪고 있는 삶을 목격하며 마지막 종착지 블라디보스톡까지 무사히 선교여행을 마쳤다. 1900년 2월에 시작된 쉐뜨꼽스끼 신부의 조선선교는 3년동안의 헌신적 노력으로 1903년에 조선 최초로 러시아정교회 교회당을 서울에 세웠다. 그러나 곧이어 터진 러일전쟁으로 선교사들은 모두 추방됐고, 1910년에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 와중에도 1912년에는 첫 조선인 사제 강탁 신부가 배출됐고 자체교육기관인 보정학교를 세웠으나 1917년 러시아 본국에서 혁명이 일어나 해외 선교부가 폐쇄되는 바람에 조선을 신경쓸 수 없어 조선정교회는 무기력해졌다.

사제의 부재와 러시아 교구청의 후원이 중단돼 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한 조선정교회는 한국전쟁 당시 그리스군 종군 신부 안드레아스 할키오풀로스 신부가 선교에 힘쓰며 문이춘 신부가 일본에서 사제서품을 받도록 도와주면서 점점 교세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침체에 빠졌던 조선정교회는 이때부터 러시아정교회 소속 관할에서 그리스 정교회 관할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한국전쟁에서 남측군대를 지원하는 그리스군과 북측군대를 지원하는 소련군과의 관계 때문에 그리스정교회와 러시아정교회도 서로 이념적, 군사적 적대관계가 된 것이다.

소련은 남측의 적국이었고 반면 그리스는 북측의 적국이 되었으며 두 나라는 통상적인 우방을 넘어서 각각 남북의 참전 혈맹국가이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두 교단도 첨예하게 대립되어왔다. 이로 인해 남측은 1956년부터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구 소속의 그리스정교회 관할로 들어가 지금에 이르렀으며, 2004년 6월 20일이 되어서야 한국교구가 관구로 승격하면서 독자적 자치권을 획득했다.

그후 세월이 흘러 전쟁(1953.7.27)이 끝난 지 53년만인 2006년 8월이 돼서야 비로소 쉐뜨꼽스끼 신부가 그토록 갈망했던 이북 땅에 러시아정교회 모스크바 총대주교구의 관할하에 정교회 예배당이 우뚝 세워진 것이다. 다행히 현재 남과 북의 정교회는 과거 김대중, 노무현 시절처럼 남북관계가 다소 우호적일 때는 남측 정교회 방문단이 여러 차례 평양정백교회당을 참관하며 남북이 우호적인 유대관계를 맺었다.

 

평양 정백교회당을 방문해 담당사제인 라관철, 김회일 신부와 함께 한 필자. ⓒ최재영
평양 정백교회당을 방문해 담당사제인 라관철, 김회일 신부와 함께 한 필자. ⓒ최재영
조선 최초의 러시아정교 선교사였던 흐리산프 쉐뜨꼽스키 신부. ⓒ최재영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있는 그리스정교회소속 ‘성 니콜라스 성당’의 모습. ⓒ최재영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있는 그리스정교회소속 ‘성 니콜라스 성당’의 모습. ⓒ최재영
평양 낙랑구역 정백동에 있는 러시아정교회소속 ‘성삼위일체 성당(정백교회)’의 모습. ⓒ최재영
조선 최초의 러시아정교 선교사였던 흐리산프 쉐뜨꼽스키 신부. ⓒ최재영
조선 최초의 러시아정교 선교사였던 흐리산프 쉐뜨꼽스키 신부. ⓒ최재영

 

종교를 넘어선 양국의 ‘친선과 우호’의 상징물

평양 대동강변 가까이 주택가에 자리잡은 정백교회당은 방문자들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치 모스크바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저 멀리 화려한 황금돔이 눈앞에 나타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정문 앞에 당도한다. 크고 작은 크기의 황금빛 찬란한 돔(꾸뿔) 두 개와 종탑이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교회당 내부로 들어가 현관을 통과하면 곧바로 미사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본당이 나오고 가장 안쪽 은밀한 곳엔 마치 구약시대의 지성소와도 같은 성소가 비밀스런 금단의 구역으로 설정돼 있다. 성소 아지트를 들어가보니 경건함을 넘어 성스러운 분위기에 압도감마저 들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은 물론 교회당 내부는 그야말로 온통 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는 고급스런 성화들과 조형물들이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어와 러시아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북측의 토종 사제 라관철 신부와 김회일 신부가 항상 미리 나와 일행을 영접한다. 이들은 2002년 말에 모스크바 러시아정교회 신학교로 유학보내기 위해 북측 정부가 엘리트 청년 4명을 선정할 때 뽑힌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유학 후 2년만에 무사히 졸업했으며 졸업과 동시에 이 두명은 즉시 부제서품을 받았고, 나머지 두 명은 학자의 길을 가기 위해 계속 신학공부를 했으며 현재는 북러간의 종교적, 외교적 가교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나는 두 차례의 참관을 통해 두 명의 사제와 성가단장, 조선정교위원회 련맹 관계자들을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눴으며 내가 방북전에 미리 검토한 정백교회 관련 자료들 중에 궁금한 점을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특히 매우 친절하고 온화한 성품의 두 명의 사제들 덕분에 그들이 제공해준 사진과 문서자료들을 통해 정백성당에 대해 더 많은 새로운 사실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북측 사제들이 직접 집례하는 예배와 미사는 매주 토요일과 주일 그리고 각종 정교회 축일에 문을 열고 예배와 행사를 개최한다고 한다. 예배에 참석하는 신자들은 평양 시민들도 더러 있지만 주로 평양에 주재하는 러시아 대사관의 외교관들과 직원들, 그리고 정교회를 믿는 여러 나라의 외교대표부 직원들과 상사원들이 참가하고 있다. 일반 외국인 관광객들도 예배를 많이 참석하고 있으며 특히 외국신자들은 정백교회당이 세워져 매주 예배가 드려지는 것에 대해 한결같이 고마워하고 있다고 한다. 정백교회를 모두 참관한 후에 내가 내린 정백교회의 설립 목적과 역할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해보았다.

첫째, 아직은 미약하지만 조선(북한)인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정교회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설립된 부분도 보였다.
둘째, 평양지역에 장기 거주하는 외교관, 주재원, 상사원, 기자, 사업가와 그들의 가족 중에정교회를 믿는 신자들을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셋째, 북을 일시적으로 방문한 관광객들이나 방문객들 중에 정교회를 믿는 신자들을 위한 예배가 준비되어 있었다.
넷째, 북러간의 상호 친선과 우호협력을 위한 가교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다섯째, 북러간의 종교교류를 비롯해 문화교류, 학술교류, 역사교류 등의 창구역할과 외교적 역할 등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이처럼 내가 확인한 몇 가지 사실들 중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이곳 정백교회는 북측 인민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해 신자들을 확보하고자 하는 자국민 교회로서의 기능과 역할보다는 주로 러시아 인민을 주 대상으로 하여 평양주재 정교회신자들과 일시적으로 평양을 방문한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유지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정교회 고위사제들의 모습. ⓒ최재영
정교회 고위사제들의 모습. ⓒ최재영
평양 정백교회 본당 성소앞에서 북측 사제들과 함께 한 필자. ⓒ최재영
평양 정백교회 본당 성소앞에서 북측 사제들과 함께 한 필자. ⓒ최재영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백교회당을 세운 계기

평소 러시아의 집권자 푸틴을 비롯한 지도층 인사들은 대부분 개신교 교파가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주로 믿는 종교이며 그들의 자금 원조와 후원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개신교를 미국식 신앙으로 비하하는 반서방 정서를 지니고 있다.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개신교가 러시아의 주체성과 민족성에 어긋난다고 판단해 개신교의 선교 확산은 용인할 수 없다는 의식이 정책적으로 반영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평양에 러시아정교회 정백교회당이 착공되기까지는 북러간의 숨가쁜 막후 교섭들이 신속하면서도 은밀히 진행됐다. 정백교회가 세워진 직접적인 과정을 몇 가지 살펴보면 우선 2001년 북러 정상회담 당시 푸틴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끈끈한 우정이 바탕이 되었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김정일 위원장을 수행한 풀리코프스키 대통령 전권대표가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2001년 8월 7일,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방문을 마친 후 연이어 기차를 타고 하바로프스크를 방문해 참관하던 중 도시의 중앙 광장에 전통 러시아정교회 성당이 아름다운 자태로 세워지는 것을 목격하고 건축물에 매료되어 수행원들에게 이듬해 방문일정에 이 곳을 다시 포함시키도록 했다.

김 위원장은 실제로 이듬해인 2002년 8월 20~24일까지 러시아 극동지역을 방문하던 중 22일, 하바로프스크시의 성(St) 인노겐치 이르쿠츠크 성당을 찾았으며 성당을 40분 정도 살펴본 후 러시아정교회 블라디보스토크 교구의 ‘베냐민’ 주교가 선물한 ‘이콘(IKON)’에 매료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평양에도 러시아 정교회 성당을 건축할 의사를 굳히게 되었다. 특히 세계적인 문화 예술품들에 대한 역사적 지식에 뛰어난 김 위원장은 이날 러시아 정교회문화재에 대해 매우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며 해박한 지식을 보여주어 러시아 당국자들과 정교회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한편 23일 오전 9시 30분, 블라디보스토크 역에 도착해 연해주 지사와 시장의 영접을 받고 블라디보스토크 방문 일정을 소화하던 김 위원장은 ‘이그나트’라 불리는 유명한 종합쇼핑센터를 방문해 진열된 상품들을 돌아보며 운영 전반에 관심을 보였다. 센터를 떠나기 전 김 위원장이 쇼핑센터 사장에게 도자기를 선물로 주었고, 이에 대한 답례로 사장은 러시아정교회 성화인 ‘이콘’ 한 점을 증정했다. 이처럼 연이어 ‘이콘’을 선물받은 김 위원장은 ‘귀국하면 반드시 평양에 러시아정교회 성당을 짓겠다’고 공언하고 그 자리에서 러시아 관계자들과 사제들과 약속한 후 사흘간의 방문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2001.8.7.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일행. ⓒ최재영
2001.8.7.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일행. ⓒ최재영
하바로프스크 시내에 있는 ‘성 인노게치 이루쿠츠크 성당’ 전경. ⓒ최재영
하바로프스크 시내에 있는 ‘성 인노게치 이루쿠츠크 성당’ 전경. ⓒ최재영
‘성 인노게치 이루쿠츠크 성당’을 방문해 정교회 사제들과 환담하는 김정일 위원장. ⓒ최재영
‘성 인노게치 이루쿠츠크 성당’을 방문해 정교회 사제들과 환담하는 김정일 위원장. ⓒ최재영

 

정백교회당 설립을 위해 ‘조선정교위원회’가 조직되다

가톨릭교회측에서는 조형 미술의 모든 양식을 허용하는 반면 정교회측에서는 ‘이콘’ 성화는 허락하나 그 외 입체 조각물은 일체 금지한다. 그 때문에 이콘 안에는 기독교 미술의 압축된 백미가 담겨 있으며 특유의 화려함과 성스러움을 뿜어내기 때문에 종교를 떠난 예술적 차원에서도 매우 매력적이다. 아무튼 김정일 위원장의 이콘 선물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시대적 요청에 의해 평양에 정교회 성당 건축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양국 정부 차원에서 신속히 추진되었다.

8월 24일, 평양으로 귀국한 김 위원장은 곧바로 조선정교위원회(현, 조선정교련맹)를 조직토록 건의해 한 달 후인 9월 25일에 ‘조선정교위원회’가 발족되었으며 초대 위원장에 허일진이 선임되어 그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체제가 되었다. 그러나 위원회 간부들은 가장 시급한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교회당이 완공되면 러시아인 사제를 부임하도록 할 것이냐, 아니면 순수한 조선인 사제를 양성해 앉힐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김 위원장의 재가를 받아 조선인 사제양성을 위해 자국의 청년들을 유학 보내기로 최종 결의하였다.

영어와 러시아어에 능통한 30대 초중반의 남성 엘리트를 수소문한 끝에 그해 연말에 4명의 유학생들을 러시아신학교에 급파해 특별 훈련을 시켰으며 이듬해인 2003년 3월에는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정교회 신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하게 했다. 다른 일반 신학생들이 5년동안 수학할 강의 과목과 예비 사제 훈련을 2년간의 특별과정을 통해 집중적으로 교육받도록 양국 정부와 양국 정교위원회가 협의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북한 신학생들이 공부한 모스크바 신학교의 다닐로프수도원 성당. 2004년 1월, 이 성당에서 유학생 4명이 모두 세례를 받았다. ⓒ최재영
북한 신학생들이 공부한 모스크바 신학교의 다닐로프수도원 성당. 2004년 1월, 이 성당에서 유학생 4명이 모두 세례를 받았다. ⓒ최재영
러시아정교회 고위 성직자들을 만나고 있는 러시아 푸틴대통령. ⓒ최재영
러시아정교회 고위 성직자들을 만나고 있는 러시아 푸틴대통령. ⓒ최재영

 

역사적인 정백교회당 착공식을 거행하다

2003년 6월 24일, 평양시 낙랑구역 정백동의 대동강 기슭에서는 역사적인 정백교회당 건설을 위한 착공식이 벌어졌다. 총 부지면적 7000제곱미터 위에 건평 350제곱미터, 높이 29.5m의 크기의 예배당 공사에 착수했다. 일반 개신교나 천주교는 예식을 드릴 때 좌석에 앉아 예배나 미사를 드리는 방식과는 달리 서서 예배를 드리는 정교회의 예배방식에 따라 수용인원 능력이 자그만치 500여명 규모의 공간이다.

이날 본당 건물 외에도 사제관과 조선정교위원회 본부 청사 등 보조건물들도 함께 착공했으며 이 모든 건축비용은 북측과 러시아측이 일정량을 각기 부담했다. 러시아측에서는 유명한 건축물 기업인 DV아그세날 측에서 꾸불 2개(돔형 지붕)와 12개의 종들을 헌물 제공했고 나머지 모든 건축비용은 북측이 부담했다. 또한 러시아는 예배당 내부의 인테리어나 장식등에 대한 고증 지도를 담당했으며 현장에 동원된 인력은 북측 건축기술자와 노동자들이 주를 이루었으며 2년여의 공기를 예상했으나 1년이 연장돼 결과적으로 3년만에 완공했다.

착공식 예배는 러시아 정교회의 클리멘트 대주교가 집전을 했고 북측에서는 조창덕 내각 부총리와 량만길 평양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조선종교인협의회 장재언 회장,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지재룡 부부장, 외무성 궁석웅 부상, 북러친선협회 위원장 겸 대외문화연락위윈회 홍선옥 부위원장, 조선정교위원회 허일진 위원장 등 기라성 같은 정계와 종교계 인물들이 대거 참석했고 안드레이 카를로프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와 주재원, 상사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착공예식을 마친 후에는 저녁에 만수대 예술극장에서 조선정교위원회 주최로 러시아 정교회 대표단을 위한 연회를 마련하며 종교적 교류차원을 넘은 양국의 우의를 다지는 자리를 갖기도 했다.

건축에 동원된 인력은 북측 건축 기술자들과 노동자들이었으나 러시아측도 건축노동에 대단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건축이 한창 진행되던 2004년 4월 9일에는 러시아 대사와 직원들이 교회당 건설현장을 찾아 노동지원활동을 했을 정도였다. 카를로프 대사는 작업복을 갈아입고 팔을 걷어부치고 건설 노동자들과 함께 골조공사를 했으며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던 2006년 6월 17일에는 러시아 모이세예프 민속무용단에 의해 성당 내부에 부착할 예수성화를 직접 조선정교회를 통해 봉정했다.

정백성당 착공예식 집전을 위해 순안공항에 도착한 클레멘트 대주교를 허일진위원장 이 영접하고 있다. ⓒ최재영
정백성당 착공예식 집전을 위해 순안공항에 도착한 클레멘트 대주교를 허일진위원장 이 영접하고 있다. ⓒ최재영
평양정백교회 건축 전경도(청사진). ⓒ최재영
평양정백교회 건축 전경도(청사진). ⓒ최재영
70% 공정률을 보인 정백교회당 모습. ⓒ최재영
70% 공정률을 보인 정백교회당 모습. ⓒ최재영

 

준공을 마치고 봉헌의 축성식을 하다

2003년 6월 24일, 착공예식을 올린 후 3년 3개월간의 공사기간이 소요되어 드디어 2006년 8월 13일, 역사적인 축성식을 거행했다. 교회 본당 외관은 지중해식 예배당을 연상케 하는 두 개의 크고 작은 황금 돔과 종탑을 건축예술로 승화시켜 봉헌식 참석자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김정일 위원장이 러시아 하바로프스크를 방문해 건축을 결심한 후 4년만의 결실이다. 정백교회당이 설립된 것은 그 동안 중단됐던 러시아정교회의 선교사역이 이북에서 다시 시작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이기에 교회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또한 북러 사이의 외교적 관계는 물론 남북간의 정교회 교류에도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으며 통일을 위한 교두보 역할도 모두가 기대했다

나는 정백교회측으로부터 당시 축성식과 관련된 기록물과 자료 일부를 얻을 수 있었다. 당시 축성식(봉헌식)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방문한 러시아정교회 대외관계부 키릴리스 대주교(칼리닌그라드와 스몰렌스크)를 단장으로 하는 사절단이 참석했는데 이때 키릴리스 대주교의 축성식 강론 일부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역사적 사건에 참여하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 교인들은 이미 100년 전에 이 땅에 왔었다. 그때 정교회 교회의 삶은 시작되었고 러시아와 이 나라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러시아정교회는 정치적 이유 때문에 남한을 떠났다. 오늘 우리는 평양에 정교회 교회를 축성하게 됐는데 이 교회당 건축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도했으며 러시아정교회는 사랑과 기쁨으로 이 교회 건축을 지원해왔다.

또한 북한출신 정교회 사제들이 이 교회에서 예배를 집전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기쁘게 한다. 이 교회는 평양에 사는 정교회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개방될 것이다. 이제 우리 두 나라 사이의 협력은 더욱 증진될 것이며, 더 많은 러시아 사람들이 여기를 찾아 올 것이다. 우리는 이 교회가 러시아-조선간의 우호의 상징이 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정교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특히 성당이 완공되기까지 동분서주했던 조선정교위원회 허일진 위원장은 감회에 찬 얼굴로 아래와 같이 준공식 연설을 했다.

“김정일 동지께서 러시아 극동지역을 방문하는 길에 정교회를 높이 평가하고 평양에 성당을 건설할데 대하여 가르쳐 주셨다. 이에 조선 정부가 정교회 설립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으며, 이를 계기로 조선과 러시아 사이의 관계가 증진될 것이며 이 성당을 두 나라 인민의 지향과 염원에 맞게 잘 관리운영하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다.”

그는 조선정교회위원회를 조직할 뿐 아니라 러시아로 유학생을 급파해 사제서품을 받게 했고 평양에 정백성당까지 건축하느라 불철주야 가장 애썼던 주역이라 그런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날 축성예식에는 평양시민들, 북측 종교계 인사들, 러시아정교회 대외관계처 위원장과 스몰렌스크 및 깔리닌그라드 총주교를 겸직하고 있는 끼릴리스 대주교, 울라지보스또크 및 연해변강대구 교구장을 맡고 있는 웨니아민 대주교 등 정교회의 고위성직자들이 참가했다. 또한 곽범기 내각 부총리와 정부 관계자들, 러시아정교회 대표 방문단, 북한주재 러시아대사를 비롯한 외교단과 국제기구 대표들이 대거 참석했으며 착공식때와 마찬가지로 이날도 조선정교위원회는 축성식을 기념하는 연회를 인민문화궁전에서 마련했다.

완공 직후 주변 조경작업을 마친 정백교회당 전경. ⓒ최재영
완공 직후 주변 조경작업을 마친 정백교회당 전경. ⓒ최재영
정백교회당 준공 후 야외 축성식(봉헌식)을 하는 장면. ⓒ최재영
정백교회당 준공 후 야외 축성식(봉헌식)을 하는 장면. ⓒ최재영
긴장하는 모습의 라관철 신부가 헌당 이후 첫 주일 미사를 집전하는 모습. ⓒ최재영
긴장하는 모습의 라관철 신부가 헌당 이후 첫 주일 미사를 집전하는 모습. ⓒ최재영
정백교회 축성식(봉헌식)을 마치고 인민문화궁전에서 연회를 마친 북러 사제들과 관계자들. ⓒ최재영
정백교회 축성식(봉헌식)을 마치고 인민문화궁전에서 연회를 마친 북러 사제들과 관계자들. ⓒ최재영
남측의 종교인 방문단이 정백성당을 참관하는 모습. ⓒ최재영
남측의 종교인 방문단이 정백성당을 참관하는 모습. ⓒ최재영
평소 정백교회를 방문해 미사를 드리는 외국인 신자들의 모습. ⓒ최재영
평소 정백교회를 방문해 미사를 드리는 외국인 신자들의 모습. ⓒ최재영

 

최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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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이해높이기] 7. 북측이 보여준 ‘일방적 선의’란?

북의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이하 당 제8차 대회)가 1월 5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주권연구소와 자주시보는 당 제8차 대회 이해를 높이기 위해...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이해높이기] 6. 남북관계에서 본질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북의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이하 당 제8차 대회)가 1월 5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자주시보와 주권연구소는 당 제8차 대회 이해를 높이기 위해...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이해높이기] 5. 인민대중제일주의란 무엇이며, 당규약에 넣은 의미는?

북의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이하 당 제8차 대회)가 1월 5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자주시보와 주권연구소는 당 제8차 대회 이해를 높이기 위해...

공존과 번영을 걷어찬 미국

경제 암담한 미국…북미합의 이행했더라면 미국에서 바이든 정권이 출범했지만 어려운 경제 형편은 좀처럼 나아질...

NK 투데이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이해높이기] 8. 북이 말하는 문화예술의 현대성이란 무엇인가

북의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이하 당 제8차 대회)가 1월 5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주권연구소와 자주시보현대는 당 제8차 대회 이해를 높이기 위해...

김정은 총비서 “사회주의의 줄기찬 전진을 위해 모든 노력 다할 것”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시진핑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에게 12일 답전을 보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3일 보도했다. 김정은 총비서는 축전에서 “나는 조선노동당 제8차...

김정은 총비서 ‘이민위천·일심단결·자력갱생’ 강조…당 제8차 대회 폐막

북이 지난 5일부터 열린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를 12일 폐막했다.

시진핑 총서기, 김정은 총비서에게 축전…“중조관계 훌륭히 수호·발전 용의”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에게 시진핑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가 11일 축전을 보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시진핑 총서기는 축전에서 “나는 김정은 동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