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9.

북한은 올해 1월 조선노동당 제8기 제6차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김일성 주석 탄생 110돌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탄생 80돌을 “승리와 영광의 대축전”으로 “성대히 경축”하겠다고 하였다. 통일의 상대방인 북한이 국가 차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계기에 대해 우리도 학술적으로 자세히 연구하는 게 통일을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에 주권연구소와 자주시보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기획연재를 10회에 걸쳐 준비하였다.







5. 선대 지도자에 충성하는 후계자


(1) 서론

북한은 최고지도자의 후계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김일성 주석은 1986년 5월 31일 김일성고급당학교 창립 40주년 기념연설 「조선노동당 건설의 역사적 경험」에서 “대를 이어 계속되는 노동계급의 당의 위업을 누가 어떻게 계승하는가 하는 것은 당의 운명, 혁명의 운명과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라고 말했다.

다른 사회주의 나라에서는 후계 문제로 혼란이 조성된 경험도 있다. 소련의 스탈린 격하 운동이 대표적인 사례다. 북한은 “흐루쇼프는 스탈린이 지명한 후계자인 말렌코프를 몰아내고 음모적인 방법으로 공산당의 지도권을 장악하여 레닌의 위업에 충실한 스탈린의 공적을 말살하려고 날뛰었다”라고 비판했다. 이를 시작으로 소련은 점차 수정주의 노선을 걷다가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소련을 해체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에서는 1969년 마오쩌둥의 후계자로 지명된 린뱌오가 2년 뒤인 1971년 쿠데타를 기도하다 실패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임영태, 『북한 50년사2』, 들녘, 1999. 89~90쪽)

북한에서는 소련이나 중국 사례처럼 후계자가 선대 지도자를 비난하고 엇서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선대 지도자인 김일성 주석에게 충성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은희 미국 심슨대 종교철학부 교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정조와 빗대며 “효심이 깊은 정치지도자”라고 말했다. (신은희, 「정조의 효사상과 주체사상과의 대화」, 『민족사상연구』 제14호, 경기대학교, 2006.)

이 글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대 지도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했는지 후계자 시절과 최고지도자가 된 이후로 나누어서 살펴보았다.

(2) 후계자 시절

사상이론 활동

사람의 사고방식, 행동양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상이다. 후계자가 선대 지도자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것은 선대 지도자의 사상을 계승하는 것으로 대표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사상에 충실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74년 2월 25일 강연 「당 사상사업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기본문제에 대하여」에서 “나는 수령님이 창시하신 주체사상, 주체 혁명이론, 주체의 사업방법의 절대적 신봉자”라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발전 풍부화시켰다.

우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74년 2월 19일 전국당선전책임일꾼강습회에서 발표한 「온 사회를 김일성주의화하기 위한 당 사상사업의 당면한 몇 가지 과업에 대하여」에서 주체사상과 김일성 주석이 밝힌 이론 등을 종합해 김일성 주석의 이름을 딴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했다.

그리고 1982년 3월 31일 김일성 주석 탄생 70돌 기념 전국주체사상토론회에서 발표한 논문 「주체사상에 대하여」를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체사상을 집대성했다고 한다. 노동신문은 2020년 3월 31일 논설에서 “김일성 동지의 혁명사상이 주체의 사상, 이론, 방법의 전일적인 체계라는 것을 전면적으로 완벽하게 논증”했다고 주장했다.

김광수 북한정치학 박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혁명사상을 사상이론적으로 정립하고 심화발전시켜나간 사상이론가이자 수령식 사업작풍을 실현시켜 낸 장본인”이라고 설명했다. (김광수, 『세습은 없다』, 선인, 2008. 113쪽)

훗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김일성주의를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발전시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2년 4월 6일 노동당 중앙위 책임일꾼들과 한 담화 「위대한 김정일 동지를 우리 당의 영원한 총비서로 높이 모시고 주체혁명 위업을 빛나게 완성해나가자」에서 이에 얽힌 이야기를 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따르면 이미 전부터 북한 국민 속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정일주의는 아무리 파고들어도 김일성주의밖에 없다고 하면서 만류했다고 한다. (김정수, 「김정은 시대 예술영화에 나타난 일상정치」, 『문화정책논총』 제32권 제1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8. 212쪽)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사상을 이론적으로 정립하는 것을 넘어서 북한 사회에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74년 4월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 10대 원칙’을 발표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0대 원칙’에서 “김일성 주석의 권위를 절대화하고”(3조),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 사상을 신념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74년 노작 「온 사회를 김일성주의화하기 위한 당 사상사업의 당면한 몇 가지 과업에 대하여」에서 ‘온 사회를 김일성주의화’하는 것을 노동당 사상사업의 기본임무로 제시했다.

최성 전 국회의원은 “왕재산혁명사적 건설 등 수많은 혁명사적지 건설의 대부분을 조직하였으며 그의 담화내용도 대부분 수령에 대한 충실성 교양이었다.…이 분야(주체사상의 유일사상화)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결정적 기여를 하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라고 했다. (최성, 『김정일과 현대북한정치사』, 한국방송출판, 2001. 174쪽)

왕재산 혁명사적이란 1975년 개관한 왕재산 혁명박물관 등을 일컫는다. 북한은 만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김일성 주석이 1933년 왕재산에서 국내 투쟁 방향을 결정하고 첫 국내 혁명 조직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북한은 1970년대 ‘사회주의 완전승리’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실현하기 위해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주창했다. 이 3대혁명을 실현하기 위해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 같은 대중운동을 전개하고 3대혁명소조운동을 주도한 이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 (임영태, 앞의 책, 133쪽)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선인민군을 김일성주의화하는 데도 힘을 기울였다. 1975년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전군을 김일성주의화하자」를 발표하고 1979년 오중흡을 따라 배우는 운동을 전체 군대에서 실시하도록 했다. 오중흡은 김일성 주석이 항일무장투쟁을 할 때 7연대를 지휘했던 인물로 북한이 김일성 주석에 대한 충실성의 표본으로 내세우는 사람이다. 이 운동은 1996년 ‘오중흡7연대칭호쟁취운동’으로 발전했다. (통일부 북한정보포털 ‘오중흡7연대칭호쟁취운동’ 항목)

수령 형상 예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문학예술적 조예가 깊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은 1994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케스트라연주 중 특정 연주자의 반음 착오까지 알아맞힐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으며, ‘종자론’으로 유명한 영화예술론을 내놓을 정도로 문예이론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있다”라고 소개했다. (이종석, 「문예 큰관심… 선전선동 일가견」, 한겨레, 1994.7.13.)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수령 형상 창조’를 예술 분야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업으로 제시했다. ‘수령 형상’이란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학예술에서 노동계급의 위대한 수령의 영광찬란한 혁명활동 역사와 숭고한 공산주의적 풍모를 형상하는 것”을 말한다. (유영호, 「‘수령형상’에 대한 개념 혼란」, 통일뉴스, 2009.6.6.)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66년 작가동맹중앙위원회 위원장과 나눈 담화 「새로운 혁명문학을 건설할 데 대하여」에서 수령 형상 문학을 만들 것을 제기했다.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67년 수령 형상 문학을 창작하는 집단인 4.15문학창작단을 창설했다. 4.15문학창작단은 1972년 소설 『1932』를 시작으로 김일성 주석의 활동을 담은 총서 ‘불멸의 역사’를 펴냈다. (이경직, 「김일성·김정일 ‘수령형상’ 과정에서 선전선동의 역할」, 북한대학원대학교, 2014.)

1970년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첫 번째 ‘수령 형상 영화’ 제작에 성공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영상이 등장하는 첫 영화 「누리에 붙는 불」 제작을 직접 발기하고 구체적으로 지도했다. 북한은 「누리에 붙는 불」을 “우리 인민이 오랫동안 그처럼 염원하여 오던 경애하는 수령님의 위대한 형상 창조 문제를 빛나게 해결하는 데 성공한 첫 작품으로 되었다”라고 평가했다. 「누리에 붙는 불」 제작을 본보기 삼아 「첫 무장대오에서 있은 이야기」, 「조선의 별」, 「민족의 태양」 등 여러 수령 형상 영화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유영호, 앞의 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른바 ‘음악정치’로도 유명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직접 노래 가사를 쓰기도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69년 김일성 주석에 대한 송가가 많지 않다며 자신이 직접 지은 가사에 노래를 붙여 「충성의 노래」를 만들었다. 「충성의 노래」는 김일성 주석 탄생 60돌 경축공연에서 공연되었다. 이외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축복의 노래」,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 등 김일성 주석을 칭송하는 노래를 직접 지었다.

(3) 김일성 주석 서거 이후

김일성 주석 서거 당시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이 서거했다.

당시 서방세계는 후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어떤 행보를 할 것인지에 주목했다. 앞서 소개했듯 선대 지도자의 서거 후 후계자가 어떤 행보를 하느냐에 따라 북한이 어떤 길로 가게 될지 결정될 것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수령 영생 구호’를 제시했다. 또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사상으로 더욱 철저히 무장하자”라는 구호도 제시했다.

김일성 주석이 영원히 함께 있다는 말은 육체적 생명은 죽었어도 사회정치적 생명은 살아 있다는 뜻이라고 북한은 설명한다. 관련해서 노동신문은 2021년 7월 8일 “수령의 영생은 사상의 영생, 업적의 영생”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헌법 서문에는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의 사상과 업적을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켜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여나갈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런 표현이 북한이 말하는 ‘수령 영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이 업무를 보던 금수산의사당에 김일성 주석을 생전의 모습 그대로 안치하기로 하고, 이름을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변경했다. 금수산기념궁전은 2012년 금수산태양궁전으로 다시 개칭됐다. 북한은 금수산태양궁전을 ‘주체의 최고성지’로 내세운다.

김광수 박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영생 위업을 실현하는 것을 후계 수령의 최대사명 중 하나로 보았다. 혁명의 개척과 전진이 수령의 영도에 달려 있듯이 혁명의 전도와 민족의 앞날은 수령 영생 위업을 어떻게 실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라고 짚었다. (김광수, 앞의 책, 123쪽)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4년 10월 16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한 담화 「위대한 수령님을 영원히 높이 모시고 수령님의 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자」에서 “우리는 수령님을 생존해계실 때보다 더 잘 그리고 영원히 높이 받들어 모심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공산주의자들이 어떤 도덕관을 가지고 자기 수령을 받들어 모셔야 하는가 하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후 북한은 1997년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 15일을 태양절로 정하고 김일성 주석이 태어난 연도인 1912년을 기준으로 한 ‘주체 연호’를 만들었다. 또한 1998년 헌법을 개정해 김일성 주석을 ‘영원한 주석’으로 결정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이 서거한 후 3년이 지나서야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되었다. 러시아의 대북우호협력협회 회장 블라디미르 톨스티코프는 김일성 주석 서거 이후 1년이 지나자 주변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노동당과 국가의 지도자로 정식 추대하길 바랐지만, 그때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년상을 지키겠다며 만류했다고 전했다. (블라디미르 톨스티코프, 「후계자가 위대해야만 수령도 영생한다」, 평양방송, 1995.10.1.; 신은희, 앞의 글에서 재인용)

북한은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거했을 때 “혁명적 도덕의리의 최고 화신이신 김정일 동지께서는 인류정치사가 알지 못하는 수령 영생 위업 실현의 위대한 귀감을 창조하시어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한 존함과 불멸의 혁명 생애와 업적이 주체조선의 무궁한 역사와 더불어 영원히 빛을 뿌리도록 하시였다”라고 평가했다.

유훈통치

최고지도자가 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생전의 뜻을 따르는 ‘유훈통치’를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5년 노작 「조선노동당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당이다」에서 “우리 당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사상과 업적을 충직하게 계승 발전시켜나갈 것이며 김일성 동지의 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완성할 것이다. 조선노동당은 영원히 김일성 동지의 당으로 빛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최성 전 의원은 경제 분야에서의 유훈으로 꼽히는 것으로 김일성 주석이 1994년 7월 6일에 경제부문 책임일꾼협의회 결론 「사회주의 경제건설에서 새로운 혁명적 전환을 일으킬 데 대하여」가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 전 의원은 “실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유훈교시의 핵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전력, 중유발전소 건설, 대외무역, 대외 경제합작을 실현하고 통일유훈을 실현하기 위해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관계 진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다”라고 평가했다. (최성, 앞의 책, 267쪽)

유훈통치의 또 다른 사례로 들 수 있는 건 남북관계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생전 마지막으로 결재한 문건이 통일 문건이라고 말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7년 노작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조국통일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에서 “조국통일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필생의 위업이었으며 절절한 염원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위대한 김일성 동지의 조국통일 유훈을 관철하여야 하며 조국과 민족 앞에 지닌 우리 세대의 책임과 임무를 다하여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6.15공동선언을 합의했다.

사회주의 체제 고수

서방세계가 북한의 후계 문제에 관심을 두는 이유 중 하나는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를 옹호하고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소위 ‘개혁개방’에 나설 것인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다. 또한 김일성 주석이 서거한 1994년은 한참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이 붕괴한 직후이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모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업적’인 사회주의를 고수할 뜻을 분명히 밝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를 바라지 말라. 천백 년이 흘러도 우리 혁명과 건설을 철두철미 위대한 김일성 동지 식대로” 하겠다고 하였다. (「정일봉의 붉은 눈보라」, 평양방송, 1997.2.18.; 이승우, 「김정일시대의 ‘건설’: 특성과 전망」,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111쪽에서 재인용)

평양방송은 1997년 10월 4일 정론 「영광 넘쳐라 조선노동당이여」에서 “세상에서 그 어떤 압력이 가해지고 그 어떤 역경에 부닥친대도 우리 수령님 쌓으신 업적을 0.001밀리미터도 허물 수 없으며 수령님 한평생 들고 오신 붉은기의 색조를 한 번도 흐리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장군님의 의지”라고도 설명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4년 노작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를 발표해 당시 사회주의권 붕괴의 원인을 짚고 사회주의가 왜 승리하는지 논리를 전개했다. 그러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오늘 우리 당과 인민 앞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개척하시고 이끌어 오신 주체의 사회주의 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해야 할 무겁고도 영예로운 과업이 나서고 있다”라고 말했다.

북한은 1995년부터 김일성 주석 서거, 사회주의권 붕괴, 3년간 연이은 자연재해, 미국의 극심한 대북제재가 동시에 겹치며 최악의 경제난인 ‘고난의 행군’을 겪게 된다. 초유의 위기 속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회주의를 고수하기 위해 선군정치를 내세우며 위기를 헤쳐 나가고자 했다. (기획연재 9편 「선군정치로 고난의 행군을 돌파하다」 참고)

(4) 마치며

북한은 후계 문제를 ‘혁명의 운명’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로 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에게 충성함으로써 북한에서는 소련과 달리 후계자로 인한 혼란이 발생하지 않고 정치적 안정을 유지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은 선대 수령에게 충성하는 것을 도덕의 문제로도 본다. 2001년 당시 조선중앙방송은 “선대 수령에게 대를 이어 충성 다하는 것은 최고의 혁명적 의리”라며 “세상에는 나라도 많고 민족들도 많아도 우리 인민처럼 선대 수령에 대한 도덕 의리를 최상의 경지에서 지닌 혁명적 인민은 없다”라고 강조했다. (「선대수령에 대한 충성이 최고 의리」, NK조선, 2001.11.30.)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보면 북한이 말하는 선대 수령에 충성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한 사회와 북한 정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