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11.

북한은 올해 1월 조선노동당 제8기 제6차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김일성 주석 탄생 110돌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탄생 80돌을 “승리와 영광의 대축전”으로 “성대히 경축”하겠다고 하였다. 통일의 상대방인 북한이 국가 차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계기에 대해 우리도 학술적으로 자세히 연구하는 게 통일을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에 주권연구소와 자주시보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기획연재를 10회에 걸쳐 준비하였다. 

 


 

 

 

 

 

6. 김정일 국방위원장, 북한의 지도사상을 정립하다

 


북한 사회를 관통하는 사상은 주체사상이다. 주체사상은 크게는 국가 노선부터 작게는 국민 개개인의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북한 사회 전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따라서 주체사상을 모르고는 북한 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 여기서는 주체사상의 내용보다는 주체사상이 어떻게 탄생하고 발전하였는지, 그 과정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주체사상 창시

북한은 1930년 6월 30일~7월 2일 중국 지린성 창춘의 카륜에서 진행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지도간부회의’(카륜회의)를 주체사상의 창시 시점으로 본다. 특히 첫날 김일성 주석이 발표한 보고 「조선혁명의 진로」에 주체사상의 출발점과 원리가 밝혀져 있다고 한다. 

 

 

 



정대일 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연구실장은 “「조선혁명의 진로」는 주체사상 창시의 출발이 되는 두 가지의 진리를 담아내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혁명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인민대중 속에 들어가 그들을 교양하고 조직 동원하여야 혁명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혁명은 누구의 승인이나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신념에 의하여 자기가 책임지고 하여야 하며 혁명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대일, 「주체사상은 어떤 혁명을 이야기했나」, 에큐메니안, 2020.1.23.)

정 실장은 「조선혁명의 진로」가 위와 같은 ‘주체사상의 원리’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조선혁명의 성격”과 “주체적 노선”(“항일무장투쟁 노선과 반제반봉건민족통일 노선, 주체적인 당창건 방침” 등 3대 노선) 등 ‘주체의 혁명이론’도 담고 있다고 하였다. 또 “인민대중 속에 들어가 그들을 각성시킴으로써 대중 자신이 주인이 되어 혁명투쟁을 전개하도록 하여야 한다”라는 “주체의 영도방법”도 담고 있다고 하였다. 즉, 김일성 주석이 발표한 「조선혁명의 진로」는 사상, 이론, 방법을 모두 갖춘 “‘전일적인 체계’로 창시되었다”라는 것이다. (정대일, 앞의 글)

국내 일부 연구자들은 당시 ‘주체’, ‘주체사상’이라는 표현이나 개념이 쓰이지 않았고 북한 문헌에서 처음으로 ‘주체’ 개념이 등장한 것은 1955년이라며 북한의 ‘김일성 주석의 1930년 주체사상 창시’ 주장을 부정한다. 

하지만 용어를 만들지 않으면 새로운 사상의 출현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는 기원전 400년 경 인물인 데모크리토스를 최초의 유물론자로 꼽는데 정작 데모크리토스는 ‘유물론’이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유물론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유물론’이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데모크리토스가 유물론을 창시했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주체사상의 핵심 내용이 「조선혁명의 진로」에 이미 들어있음에도 ‘1930년 주체사상의 창시’를 부정하는 것은 북한의 주장이라면 일단 반대하고 보는 잘못된 관행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가 싶다. 

김일성 주석은 「조선혁명의 진로」를 항일운동의 기본 노선으로 삼았으며 ‘국민이 혁명의 주인이며 자기 나라 혁명은 자기 신념과 책임 아래 자주적, 창조적으로 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해방 후 정부 수립과 국정 운영에도 그대로 적용하였다. 

대표적으로 1955년 12월 28일 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일꾼들 앞에서 한 연설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를 들 수 있다. 여기서 김일성 주석은 “조선혁명이야말로 우리 당 사상사업의 주체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상사업을 반드시 조선혁명의 이익에 복종시켜야 합니다”, “박영빈은 소련에 갔다 와서 하는 말이 소련에서는 국제 긴장상태를 완화하는 방향이니 우리도 미제국주의를 반대하는 구호를 집어치워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혁명적 창발성과는 아무런 공통성도 없으며 우리 인민의 혁명적 경각성을 무디게 하는 것입니다”, “소련에서 나온 사람들은 소련식으로, 중국에서 나온 사람들은 중국식으로 하자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소련식이 좋으니, 중국식이 좋으니 하면서 싸웠습니다. 이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혁명투쟁에 있어서나 건설사업에 있어서나 마르크스-레닌주의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면서 그것을 우리나라의 구체적 조건, 우리의 민족적 특성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하여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재봉, 『두 눈으로 보는 북한』, 평화세상, 2008.)

이렇게 1955년에 ‘사상에서의 주체’ 노선이 나온 이후 1956년 ‘경제에서의 자립’, 1962년 ‘국방에서의 자위’ 노선이 나왔다. 

1962년 12월 19일 노동신문에 실린 논설 「1962년 당중앙위원회 제5차 전원회의의 역사적 의의」에서 처음으로 ‘주체사상’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였다. 또 1963년 4월 18일 김일성 주석은 「대학의 교육교양사업을 강화할 데 대하여」라는 연설에서 처음으로 ‘우리 당의 주체사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한호석, 「7호 물동에서 백두산 장군봉에 오르다」, 자주시보, 2022.2.14.)

김일성 주석은 1965년 4월 인도네시아 알리 아르함 사회과학원을 방문하여 한 연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의 사회주의건설과 남조선혁명에 대하여」에서 “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 이것이 우리 당이 일관하게 견지하고 있는 입장”이라고 설명하였다. (이종석, 「주체사상의 등장과 확립」, KBS통일방송연구, 2006.3.19.) 이는 후에 주체사상의 지도적 원칙 가운데 하나의 내용으로 정리된다. 

이후 북한은 1967년 12월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4기 제1차 회의에서 채택한 공화국 10대 정강 제1항에 “주체사상을 모든 부문에 훌륭하게 구현”할 것을 담았다. 1970년 조선노동당(아래 노동당) 5차 대회에서는 당 규약에 주체사상을 유일사상으로 확정하였고 1972년에는 헌법에도 삽입하였다. 

이렇게 김일성 주석은 1930년 주체사상을 창시하고 1950~1960년대에 구체화한 후 1970년대 북한의 공식 지도사상으로 확립하였다. 

주체사상의 정식화

주체사상은 1970년대 북한의 공식 지도사상으로 명시된 후에도 계속 심화·발전 과정을 거쳤으며 1974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되었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대의 나이에 이 과정을 이끌었다고 소개한다. 

그 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종합대학을 다니면서 주체사상을 연구한 기록을 살펴보자. (아래 대학시절 내용은 모두 이찬행, 『김정일』, 백산서당, 2001. 참조)

1960년 9월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64년 3월 조기졸업할 때까지 김일성 주석의 사상이론을 탐구하고 현실에 적용하는 여러 연구를 하였다고 한다. 당시는 아직 북한 내 간부, 지식인 사이에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교조적으로 받아들이며 소련, 중국을 숭배하고 추종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게 남아있을 때였다. 이런 기류는 김일성 주석의 사상과 노선보다 소련, 중국의 입장을 앞세우는 사대주의로 나타났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학내에서 이런 기류를 제거하기 위한 작업에 집중하였다. 

북한 기록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학 재학 중에 김일성 주석의 노선이 정당함을 입증하는 여러 논문을 발표하였다. 「사대주의와 교조주의의 해독성을 옳게 인식할 데 대하여」(1961.12.9.), 「현대제국주의의 특징과 침략적 본성에 대하여」(1962.1.15.), 「지방경제를 발전시킬 데 대한 우리 당 방침의 정당성」(1962.8.5.), 「우리 당의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노선을 견결히 옹호하자」(1963.6.12.) 등이 대표적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철학사상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였다. 「대학생들 속에서 혁명적 세계관을 튼튼히 세울 데 대하여」(1962.2.22.), 「사상의식의 결정적 역할에 대하여」(1962.12.10.), 「철학의 사명에 대한 이해를 바로 가질 데 대하여」(1963.1.3.), 「물질에 대한 철학적 이해를 바로 가질 데 대하여」(1963.9.19.), 「역사발전에서 인민대중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문제에 대하여」(1963.11.14.) 등이 대표적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수령론의 기초가 되는 이론도 발표하였다. 당시는 흐루쇼프가 스탈린에 대한 ‘개인숭배’를 비난하던 때여서 이 문제는 첨예한 화두였다. 「노동계급의 수령은 개인이 아니다」(1960.12.5.), 「당의 혁명전통은 노동계급의 수령에 의하여 이룩된다」(1962.1.23.), 「노동계급의 수령은 혁명투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1963.6.12.), 「우리 당의 빛나는 혁명전통으로 튼튼히 무장하자」(1963.8.29.), 「당과 수령에 끝없이 충실한 혁명가로 되자」(1964.3.30.) 등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발표한 논문들이다. 

이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학생 신분으로 사상이론 연구를 활발히 하였으며 이는 졸업 후 김일성주의를 정립하는 토대가 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학을 졸업한 후 노동당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1966년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중앙지도과 중앙담당 책임지도원으로 활동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는 사업을 당 사업의 근본문제로 제기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몇 명의 사회과학자들을 모아 선행한 노동계급의 혁명사상 100년사를 분석하기 위한 연구 집단을 구성한다. 선행 혁명사상사 분석은 1966년부터 1969년까지 장장 4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찬행, 앞의 책)

조선노동당출판사가 2009년에 출판한 『김정일선집』 2권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회과학자들과 1966년 5월 20일, 6월 17일, 9월 30일 등 세 차례에 걸쳐 한 담화 「선행한 노동계급의 혁명사상사를 정확히 분석총화할 데 대하여」가 실려 있다. 이 담화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혁명사상사 분석을 어떤 방향에서 진행하려 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시 혁명사상사 분석을 시작한 이유는 북한에 여전히 마르크스-레닌주의만 절대시하면서 김일성 주석의 사상과 노선을 왜곡하고 따르지 않는 분위기가 일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주의 진영에서 여러 노선 갈등이 심해지던 것도 영향을 주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사회주의 혁명가에게는 교과서와 같았지만 자주시대에 이르러 일정한 한계를 드러냈다는 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입장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선행고전 가운데 30여 건을 선정하여 원문을 읽고 ‘주체적 입장’에서 ‘실천적 문제’와 결부하여 연구토론하도록 지도하였다고 한다. 여기에는 『자본론』(마르크스, 1867·1885·1894), 『공산당선언』(마르크스·엥겔스, 1848), 『자연변증법』(엥겔스, 1883), 『반뒤링론』(엥겔스, 1878), 『유물론과 경험비판론』(레닌, 1909), 『국가와 혁명』(레닌, 1917), 『철학노트』(레닌, 1914) 등이 들어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4년 동안 수십 차례에 걸친 토론과 담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의 중요 저서를 전면적으로 연구분석하는 일은 실로 방대하였습니다… 나는 그때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이 쓴 철학 저서와 경제학 저서를 비롯한 거의 모든 중요 저서를 해부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하여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간단한 표현을 놓고도 며칠 동안 생각하였으며 어떤 표현은 몇 달 동안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때에는 정말 눈에 핏발이 서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었고 목이 쉬도록 토론하였습니다. 참으로 잊을 수 없는 독학연구기간이었습니다”라고 하였다. (한호석, 앞의 글)

조선노동당출판사가 2010년에 출판한 『김정일선집』 3권에는 「선행한 노동계급의 혁명사상사에 대한 분석총화사업을 결속하면서 사회과학자들과 한 담화」(1969년 7월 1일)가 실려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연구를 마치며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성과는 인정하지만 시대가 바뀐 지금에 와서 나서는 문제에는 해답을 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따라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허무주의나 교조주의로 대해서는 안 되며 참작할 것은 참작하되 만능의 처방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또한 주체사상을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창조적 적용이라고도 하지만 그보다는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인 사상임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당력사연구소, 『김정일동지략전』, 조선로동당출판사, 1999.)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4년에 걸쳐 방대한 연구를 진행했지만 그 결과를 바로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선행 사상을 분석한 것에 기초해 김일성 주석의 주체사상을 심화·발전시켜 정식화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3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의 사업을 현지지도하면서 일꾼들과 나눈 담화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를 통한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할 데 대하여」에서 “내가 그전에 무포에 와서 낚시질을 한 일이 있는데 그때 낚싯줄을 드리우고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어떻게 정식화하겠는가 하는데 대하여 사색을 거듭하던 일이 잊히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무포의 낚시’는 1971년 9월 4일 토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양강도 현지지도를 하던 중 토요일이 되자 수행원들의 권유로 휴식삼아 낚시를 하였던 것이다. 이 자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수령님(김일성 주석)의 혁명사상을 정식화하는 데서 막혔던 생각이 확 트인다. 수령님의 혁명사상은 어느 고전에도 비기지 못할 폭과 깊이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지 못하였지만, 가까운 앞날에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여 세상에 선포하고 김일성주의기치를 시대의 앞장에서 높이 추켜들고 나가려고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호석, 앞의 글)

‘무포의 낚시’가 있기 며칠 전인 8월 30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백두산 천지에 올랐다. 이 자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 세상에 우리 수령님(김일성 주석)처럼 기나긴 세월 준엄한 혁명의 길을 걸어오신 분은 없습니다. 이제 몇 달 지나면 수령님께서 환갑을 맞으시게 됩니다. 이제는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혁명위업을 우리가 걸머지고 나가야 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찬행, 앞의 책)

종합해 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이 개척한 혁명을 계승’할 것을 결심하고 ‘김일성 주석의 혁명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할 구상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이론에 따르면 ‘혁명 계승’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사상의 계승’이기 때문이다. (「백두의 혁명전통은 새 세기 진군의 보검이다」, 노동신문, 2008.10.21.; 「북 “혁명 1, 2세의 전통 계승” 강조」, 조선일보, 2008.10.21. 재인용)

다시 몇 해가 흐른 1974년 2월 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노동당 제3차 사상일꾼대회에서 한 결론 「온 사회를 김일성주의화하기 위한 당사상사업의 당면한 몇 가지 과업에 대하여」에서 김일성 주석의 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였고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를 노동당의 최고 강령으로 제시했다. 

이 자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주의는 주체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나온 새롭고 독창적인 위대한 혁명사상입니다. 김일성주의는 한 마디로 말하여 주체의 사상, 이론 및 방법의 체계입니다. 다시 말하여 주체사상과 그에 의하여 밝혀진 혁명과 건설에 관한 이론과 방법의 전일적인 체계입니다. 인류사상사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위대한 주체사상을 진수로 하고 그에 기초하여 혁명이론과 영도방법이 전일적으로 체계화된 여기에 김일성주의가 선행한 노동계급의 혁명이론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습니다”라고 선언하였다. (한호석, 앞의 글)

이후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주의를 더욱 심화·발전시키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먼저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주체철학에 대한 여러 노작을 발표하였다. 「주체철학의 이해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당 이론선전일꾼들과 한 담화, 1974.4.2.),  「주체사상에 대하여」(전국주체사상토론회에 보낸 논문, 1982.3.31.), 「주체사상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한 담화, 1986.7.15.), 「주체철학에 대한 올바른 관점과 이해를 가질데 대하여」(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한 담화, 1990.10.25.), 「주체철학은 독창적인 혁명철학이다」(당 중앙위원회 이론잡지 『근로자』에 준 담화, 1996.7.26.) 등 여러 노작이 공개되었다. 

이 가운데 특히 「주체사상에 대하여」는 장편의 논문으로 주체사상의 체계와 내용, 원리와 방법을 전면적으로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북한은 「주체사상에 대하여」가 나온 지 3년이 지난 1985년 노동당 창당 40주년을 기념해 『주체사상 총서』(사회과학출판사) 10권을 출판하였다. 1~3권은 ‘주체의 사상’, 4~8권은 ‘주체의 혁명이론’, 9~10권은 ‘주체의 영도방법’에 해당한다. 『주체사상 총서』는 「주체사상에 대하여」를 토대로 하였다고 한다. 

이 밖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혁명적 신념과 의리로 간직하자」(당 중앙위원회 비서들과 한 담화, 1974.4.20.)와 같은 수령론,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노동신문에 발표한 논문, 1994.11.1.),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할 데 대하여」(1997.6.19.)와 같은 사회주의 이론, 「사회주의강성대국건설에서 결정적 전진을 이룩할 데 대하여」(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한 담화, 2000.1.1.)와 같은 사회주의강국건설 이론, 「선군혁명노선은 우리 시대의 위대한 혁명노선이며 우리 혁명의 백전백승의 기치이다」(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한 담화, 2003.1.29.)와 같은 선군정치이론 등 주체사상을 토대로 하는 여러 이론들을 제시하였다. 

북한의 이론에 따르면 ‘수령의 혁명사상을 지도사상으로 정식화하는 것은 참다운 후계자만 성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김일성주의 정립은 북한 사회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추대하는 바탕이 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립한 김일성주의는 오늘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의해 김일성-김정일주의로 심화·발전하였다. 

 

 

김민준 자주시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