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Kang 방북기19]24시간 격일근무하고 수입은 월 5만6천 원

미국에 계신 CJ Kang께서 9월 3~11일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NK투데이는 필자와 협의 아래 방북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의 승인 아래 원문의 표현 가운데 일부를 한국 실정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외부 기고는 본사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아직 해가 길어 연극관람을 마치고 돌아오는데도 밖이 환하다. 호텔로 돌아와 5층 엘리베이터를 내리니 5층의 휴게실에서 근무하는 장수복 접대원이 잘 다녀왔느냐면서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친절하면서 사려 깊은 장수복 접대원은 호텔에 도착했을 때 우리 일행이 차를 마시며 일정을 의논할 때 봉사해주었고 그때 이미 인사를 나눴기에 구면이라 수복 동무라 부르기로 했다. 휴게실은 호텔 복도 옆 제법 기다란 방에 스무 명 이상 앉을 수 있도록 여기저기 소파와 테이블을 배치해 놓아 커피숍 같은 분위기인데 보통 지나면서 살펴보면 두어 테이블 정도에 손님이 있었다.

수복 동무는 입구 쪽에 진열대 겸 계산하는 곳이 있고 거기서 커피와 맥주 등 음료수를 판매하며 안주거리와 간단한 식사를 제공한다고 했다. 음식은 호텔의 식당에서 요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 휴게실에서 바로 복도 건너편에 직속 부엌이 있고 거기에도 요리사가 있어 직접 요리해서 음식을 제공한다. 수복 동무의 나이는 이십대 후반으로 보였는데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다. 내게도 편안하게 대해주었지만 손님들에게 참 친절하게 봉사하는 접대원이다. 참 아쉬운 것은 내가 수많은 사진을 찍었는데도 마침 수복 동무의 사진을 찍지 못해서 여기서 나눌 수가 없다.

호텔 객실로 바로 향하려다가 마침 휴게실 안에 아무도 없기에 조금 한가한 시간 같아 보였다. 잘 되었다 싶어 내가 수복 동무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고 하자 무슨 부탁이냐고 묻는다. 그래 사실대로 내가 북부조국의 인민들의 생활에 대해서 이번 여행 동안 직접 인민들을 만나서 대화하며 알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이미 책을 통해서, 그리고 선양 목란각에서 잠깐 동안 질문을 하여 어느 정도 인민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 내가 북에서 살고 있는 인민들을 만나서 직접 대화하지 않고는 아직 제대로 감을 잡을 수가 없는데 때문에 이번 여행을 통하여 내가 직접 인민들을 만나서 물어보고 과연 북부조국의 인민들은 어떻게 의식주 생활을 해결해나가는지에 대해서 이것저것 질문을 하고 싶다고 했다.

별로 크게 기대를 하지는 않았는데 수복 동무는 그렇다면 무엇이든지 물어보라고 한다. 이건 정말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보라. 북에서 어떤 사람이 서울이나 해외에 있는 우리들에게 찾아와서 우리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다고 한다면 과연 편안하게 무엇이든지 물어보라고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 달의 월급 혹은 수입이 얼마며, 어떤 집에서 살며, 집세로 얼마가 나가고, 아이들 교육비로 얼마가 나가고, 차량 유지비에 보험비, 전기세, 수도세, 하수도세, 인터넷 , 휴대폰, 식료품비, 술값, 교통비, 사교비…. 그야말로 돈이 없으면 불가능한 이런 숱한 비용에 대해서 편안하게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이건 개인의 사생활과 관계되는 문제다. 돈을 많이 벌면서 쓰기는 적게 쓰는 사람이라면 조금 답하기가 편하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경제적인 세세한 사항을 밝히기를 좋아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래 이건 워낙 민감한 질문이고, 상대방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는 질문이기 때문에 수복 동무에게 잠깐 더 이해를 구한다. 

“사실 북에 대하여 크게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 이렇게 북을 방문한 나도 북의 인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잘 모르는데 대부분의 남쪽 동포 혹은 해외동포들은 더더욱 북의 생활에 대해서 바로 알지를 못하고 있다. 매스컴에서 왜곡해서 보도하는 그대로 모두들 믿을 뿐인데 그 보도란 것이 북의 잘하는 것은 거론하지 않고 못살고 배고프다는 소리만 주로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북의 인민들이 고생하고 살면서 형편없는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나는 이번 여행을 하면서 보고 들은 대로 글을 쓰고 바로 알려서 우리 조국의 통일에 이바지하려고 한다. 내가 어려운 것을 묻는 것이 아니고 북의 인민이라면 누구든지 알고 있는 것이지만 바깥에선 모르는 것을 수복동무가 좀 알려주면 좋겠다.”

“그렇다면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다시 수복동무가 나를 편안하게 해준다. 그래 바로 가장 중요한 질문부터 던졌다. 먼저 한 달 월급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니 선양 목란각의 접대원과 비슷한 대답을 해주었다. 월급은 적지만 상금이 많다는 것이었다. 월급은 6천 원인데 상금은 5만 원 정도 된다고 했다. 둘을 합하면 한 달에 5만6천원이다.

이곳 호텔에서 일하는 시간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보니 하루 일하고 하루 쉰다고 한다. 출근은 아침 일곱 시에 해서 저녁때까지 일하고, 밤 12시에 잠든다고 했다. 그러니까 일하는 날은 종일 일하고 잠도 호텔에서 자고 그 다음날 아침에 교대를 하여 집에 가서 쉰다는 것이다.

어떤 주택에서 살고 있는지 물어보니 지금 아파트에서 부모님들과 함께 산다고 했다. 당연히 그 아파트는 국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다. 아파트의 사용료는 들어보니 전기요금을 말하는 것 같았다. 수복 동무 자신이 내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내는데 그건 너무 작은 금액이라 신경을 쓰지 않지만 대략 한 가구당 천원이 채 안된다고 한다. 수복동무의 수입에다 부모의 수입이 따로 있으니 그 사용료는 너무도 미미한 것이 확인된 셈이다.

그렇지만 북의 전기사정이 좋지 않은데 사용료가 적다해도 전기를 아끼면서 살지 않는가하고 물어보니 북이 수력발전에 의존해서 주로 전기를 생산하는데 올해는 특별히 가뭄이 심해서 전기가 부족하다면서 사용료가 적은 것에 상관없이 평소에 종종 ‘적산전력계’를 보면서 절전을 하며 산다고 했다. 우리는 계량기를 잘 들여다보지 않는데 적산전력계라는 것이 우리의 계량기와 같은 모양으로 생겼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북에서는 전기도 함께 온 인민이 나눠서 아끼며 사용해야 한다는 의식이 인민들 가운데 잘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내가 선양에서 미리 예습한 것처럼 쌀과 부식은 국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데 노동의 양과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들에 따라 그 양이 다르게 배당되며, 가족 당 배당되는 만큼의 배급표를 받는다고 했다. 부식배급에 대해서 물어보니 예를 들어서 이번에 배추가 들어왔다고 연락이 오면 배급표를 받아서 퇴근시간에 가지러 간다는 것이다. 만일 그때 출장을 간다거나 해서 제때 가지러 갈 수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니 그런 경우엔 다른 이웃이 받아온다고 말해준다. 부식의 공급에 대해서 더 상세한 부분은 이후 다른 글에서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주택과 먹는 것은 이렇게 해결되었으니 의식주 가운데 이제 옷에 대해서 물어보니 옷은 주로 가게에서 구입하거나 농민시장에서 구입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주식이나 부식 외 옷가지와 생활필수품들은 주로 그렇게 시장에서 구입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한데 북에서 의식주란 말을 쓰지 않는 대신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해서 식의주라고 사용한다고 우리는 들어왔는데 장수복 동무의 말로는 의식주도 식의주도 잘 알아듣지를 못하더니 북에서는 그런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의식주란 책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이지 일상에서 그런 단어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물론 돈이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은 더 많아지겠지만 돈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는 별로 지장이 없는 사회다. 가족이 번 돈으로 사용하고 남는 돈은 저축해서 그것으로 필요한 전자제품도 최신형으로 구입한다거나 할 수 있겠지만 돈이 없다 해서 집을 쫓겨난다거나 아이들 교육을 못 시키거나 헐벗고 굶주리지는 않는 곳이다 보니 의식주 혹은 식의주란 말도 사라져가는 것인가?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는 좀 더 북을 알긴 하지만 직접 살아보지는 못했으니 아직 이곳 인민들이 얼마나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고 스스로 행복하다는 생각을 갖고 사는지는 알 수가 없다. 

내가 한 가지 더 궁금해 하던 것을 물어보았다. 북부조국 인민들은 도시의 사무실에서 일해도 정해둔 기간 동안 노동으로 봉사하기 위해 농촌으로 간다고 들었는데 그것에 대해서 말해달라고 했다. 수복 동무는 ‘농촌지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보통 1년에 열흘 정도 농촌지원을 나가서 직접 농사일을 거들면서 농촌생활을 체험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해보았는가하고 물어보니 벼농사와 옥수수, 고구마 농사 등 여러 가지 일을 다 해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농촌지원을 나가서 알게 되었다면서 농촌엔 국가에서 무료로 뜨락또르(트랙터) 등 농기계를 제공하며, 그것이 오래 되어 못쓰게 되어 폐기하게 되면 다시 제공해준다고 말해준다. 농촌생활에 대해서는 이후에 내가 직접 답사하게 되어 잘 공부하였으니 이후의 방문기에서 다시 자세하게 쓰게 될 것이다.

내가 궁금해 하였고 가장 알고 싶어 한 북부조국 인민들의 생활에 대해서 수복 동무와 거의 대화가 끝나갈 무렵에 휴게실에 손님들이 찾아왔고 내 질문도 거기서 마치게 되었다. 북에서 인민 각자의 월급이나 수입은 내가 인터뷰한 평양호텔 직원인 수복 동무보다 노동자들이 좀 더 대우를 받는 세상이었다. 그래도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인 주택과 식료품이 제공되고 교육과 의료를 비롯한 여러 가지 복지정책이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주어진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내가 모든 사람들을 만나서 물어보고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이후 농장과 공장을 방문하면서도 비슷한 질문을 던져서 대답을 들은 것을 고려해볼 때 대부분의 인민들의 생활은 대략 비슷한 수준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고난의 행군이 끝난 지 10여년이 된 지금 의식주 문제가 해결된 상황에서 북부조국의 인민들은 주어진 제도와 생활환경에 맞춰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떠나오던 날 수복 동무를 찾아가 잘 있으라는 인사를 했는데 ‘선생님, 오늘 가십니까? 이제 언제 오십니까? 앞으로는 자주 오세요’라고 말하며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의 불편했던 질문에 서슴없이 대답해준 평양호텔 5층 휴게실의 장수복 동무에게 이 글로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2014.11.2.)

CJ Kang

미국 시애틀에서 <사람사는 세상 시애틀 한마당>(hanseattle.com)을 공동운영하고 있으며 <사람사는 세상을 위한 시애틀 모임> 대표를 하다가 현재 고문으로 있다. 또 유권자민주연대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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