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Kang 방북기20]학교와 사회는 똑같은 곳(25년 전의 여중학교 방문)

미국에 계신 CJ Kang께서 9월 3~11일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NK투데이는 필자와 협의 아래 방북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의 승인 아래 원문의 표현 가운데 일부를 한국 실정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외부 기고는 본사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새벽 4시 넘어 내가 잠이 깨면 대부분 동시에 일어나신 노길남 박사님은 컴퓨터 앞에 앉아 민족통신에 기사를 올리거나 어제 올린 기사를 살펴보는데 오늘은 내가 조금 늦게 일어나면서 바로 기침이 콜록콜록 나온다. 같은 방에 묵으면서 방 안에서는 나를 위하여 절대로 금연을 하기로 하셨는데 잠깐 일에 열중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담뱃불을 붙이신 모양이다. 아이고 미안하다시며 얼른 담뱃불을 끄고는 창문을 여신다. 평소 일할 때는 줄담배를 태우신다는데 그래도 나 때문에 많이 줄이게 되었다고 내가 편하도록 말씀하신다. 나도 웬만하면 그냥 편안하게 태우시라고 하면 되겠지만 담배연기를 마시고 나면 당장 목에 담이 차고, 조금 심하면 감기가 걸리거나 기관지염을 앓게까지 된 전력이 있어 나와 띠동갑이 되는 대선배님이지만 어쩔 수 없어 담배를 자제해주실 것을 부탁드린 것이었다.

나와 같이 한 방에 묵지 않고 따로 방을 얻었으면 박사님은 더 편안하게 지내셨겠지만 북에서 머무는 동안의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사실 나로서는 그 바람에 북을 62번째 방문한 통일운동의 대선배와 같이 지내게 되어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것이 많았고, 필요한 사항을 미리 알려 주셨는가하면 내가 궁금한 것은 바로 질문할 수 있어 이번 여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나의 이번 여행의 목적은 유명한 건물이나 관광지를 찾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여행은 이미 25년 전에 방문했을 때 충분히 보았으니 이번엔 북부조국의 제도와 인민들의 생활에 대해서 되도록이면 깊이 공부해보려 한 것이니만큼 노 박사님이 민족통신 기자로서 여기저기 취재를 하는 곳에 나 또한 함께 동행하여 듣기도 하고 질문도 하며 답을 구했다. 한편 때로는 내가 방문하기를 원한 곳을 찾게 되어 노 박사님이 그것을 취재하기도 하였으니 이번 여행은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여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도 미리 세수하고 준비했다가 어김없이 6시가 되자 호텔을 나와 아침 산책을 나선다. 아직은 이른 아침이라 약간의 새벽안개가 남아 있지만 참 좋은 날씨다. 먼저 대동강으로 향하여 전날과는 반대로 남쪽 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입구에는 여전히 어제처럼 수많은 여성들이 아침체조를 하는가하면 그냥 열심히 걷는 사람들도 많다. 저 멀리 양각도호텔이 마침 떠오르는 아침햇살에 안개 속에서 드러나면서 물그림자를 비춘다. 주로 남한에서 북을 방문하면 저 호텔에서 묵게 된다고 하는데 수십 층 높이의 엄청나게 큰 현대식 건물로 보인다.

이쪽에도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강가의 움푹하니 패인 곳엔 특별히 고기가 잘 물리는 곳인지 진을 치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데 그 모습들이 아주 진지하다. 저 강태공들은 우리보다 한참 더 일찍 날이 새기 전부터 이곳 낚시터로 달려 나왔으리라. 일출에 그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아 사진으로 남긴다. 좀 더 걸으니 따로 줄낚시를 하는 어른이 8개의 낚싯줄을 드리우고 입질을 기다리고 있어 잠시 대화를 나누는데 입질이 온다. 역시 이 분은 낚시 경험이 많으신지 놓치지 않고 입질이 세게 올 때 줄을 탁 채어서는 슬슬 잡아당기니 작은 손바닥만한 붕어 한 마리가 올라온다. 

인근에 여학생 넷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는 노 박사님이 다가간다. 중학생들인데 모두 가까이 사는 친구들이라 아침 산책을 나왔다고 한다. 각자의 옷차림도 다양해서 오늘 학교에 안가느냐고 물어보니 이미 방학이 끝나서 개학을 했기 때문에 학교가는 날이라면서 이제 곧 집에 가서 아침 먹고 교복으로 갈아입고 8시에 등교한단다. 그 중 한 학생에게 이담에 커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하고 물어보니 교원이 되고 싶다고 한다. 전날 전국에서 수많은 교육자들을 평양으로 초대하여 대회를 갖고는 옥류관에서 점심을 들게 하는 풍경을 떠올렸다. 

나도 젊은 시절에 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버지처럼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고 그 길을 걷다가 한국에서 편히 공부를 계속하며 살 수 없어 이민자가 되어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미국에 살면서 아무런 보수 없이 몇 년 동안 주말마다 한글학교 교감 선생님으로 일하며 아이들을 가르쳐보았으니 아예 선생님이 되어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래 남한에서 후세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더라면 내 삶은 어떠했을까하는 생각을 종종 해보았다. 분명히 좋은 선생님이 될 수는 있었겠지만 선생님으로 평생 살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한때 교직을 잃은 선생님들이 많았는데 나도 그렇게 된 선생님들 가운데 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내 어렸을 적의 친구들 가운데 몇몇은 아직도 교직에 있으면서 지금은 교장선생님이 되어 근무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나 또한 두 갈래 갈림길에서 다른 한 길을 선택했으면 이렇게 교장선생님이 되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었다. 인생은 짧고 세월은 참으로 빠르다. 내게 남은 시간을 나름대로 더 보람 있게 살아가는 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리라. 바로 오래 전에 내 삶의 목표로 세웠던 통일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나의 남은 삶을 보람 있게 사는 것이리라. 

여학생들과 헤어지고는 생각해보니 이번 방문에 따로 학교를 방문할 계획이 없는 것이 참 아쉽다. 그래 내가 25년 전 평양축전에 참여한 미주 지역의 동포들과 함께 평양 시내의 한 여자중학교를 방문한 것이 떠오르고 그 기억을 더듬어서 내가 보고 듣고 느꼈던 것을 여기서 나눌까 한다. 

그날 우리들은 몇몇 교실에 들러 수업을 참관하였는데 한 교실에서 우리들을 환영하기 위해서 꽃다운 여학생들이 예쁜 공연복으로 갈아입고는 가야금과 손풍금 등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하는가 하면, 여러 종류의 노래를 불러주었고 또한 율동도 보여주었다. 그 학생들이 전문적으로 음악이나 율동을 전공하는 것이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누구든지 악기 하나쯤은 연주를 할 수 있도록 예능교육을 하기에 그 공연은 어쩌면 정식으로 무대에 올려지는 최상급의 공연과는 달리 북에서는 아주 평범한 공연이었는데 그런데도 나무랄데 없이 완벽한 공연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엔 ‘고향의 봄’ 노래를 서로 분단된 남북 동포들이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을 아쉬워하는 깊은 마음을 담아 울먹이며 불러주어서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었었다. 

공연 후에 우리들은 학생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내가 아주 예쁜 모습으로 노래를 부른 한 여학생에게 나중에 공부를 마치면 어떤 직업을 갖고 싶느냐고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그 학생은 자신은 농촌으로 가서 농사일을 하겠다고 겸손한 태도로 말하는 것이었다. 무슨 이유로 그렇게 농사를 짓고 싶으냐고 하였더니 우리 인민들에게 필요한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는데 기여하기 위해서 농촌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였다. 

생각해보라. 평양이라는 북한의 수도에서 나고 자라서 좋은 중학교에서 공부하는 머리도 좋고 노래도 잘하는 예쁜 여학생이 자신은 학교를 졸업하면 살기도 편하고 모든 인민들이 살고 싶어 하리라고 우리가 여기는 평양에서 살려고 하지 않고, 조국의 식량생산을 위해서 농촌으로 가서 일하겠다고 할 때 그 사회 자체가 무엇을 중요시 여기며, 학교에서 후세들을 어떤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교육하고 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런 똑똑한 학생이라면 무엇을 해도 평양에서 할 일이 있을 텐데 무엇 하러 고생이 되는 농촌으로 가려고 할까하고 여길 수도 있다. 

그 학생이 당시의 11년 의무교육을 마치고 농업대학으로 진학하였을 수도 있고 전문학교를 거쳤거나 아니면 바로 농촌으로 원하던 대로 가게 되어 일하게 되었을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그때쯤엔 북부조국이 제2의 고난의 행군 시기로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되었으니 어쩌면 그 학생의 농촌행은 아주 옳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지 싶다. 무엇보다 식량이 부족하여 온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서 그 학생은 일선에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여 인민을 배부르게 할 수 있을지를 고심하며 온갖 노력을 다했으리라. 

인간이 배고플 때는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며, 무엇보다 식량을 생산하는 일이 가장 값진 일이지 않은가? 그렇게 그 학생과 동료들이 20여년을 함께 그 어려움을 헤쳐 나왔다면 그 결과 지금 북부조국이 식량을 거의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 

북부조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우리 자본주의 방식으로 판단하고 재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이 시기에도 평양을 떠나 아주 먼 농장으로 지원해서 가서는 사서 고생을 하지만 커다란 보람을 갖고 사는 어떤 중년의 남자에 대해서도 이후에 내가 소개하게 될 것이다. 내가 방문한 농촌에 실제로 젊은이들이 아주 많았던 것으로 보아 지금도 북부조국의 농촌은 청년들과 학생들에게 매력적인 곳이리라. 여기에 희망이 있지 않은가? 

우리가 그 학교에서 떠나오기 전에 교장선생님을 만나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 가운데 지금도 아주 뚜렷하게 남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학교와 사회가 다르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나 사회에 나가서 일하는 것이 모두 똑 같다 이 말입니다. 학교에서 이것이 옳다고 가르치면 사회에서도 그것이 옳으니 그대로 하면 되는 것이란 말입니다.” 

이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인가? 이곳에선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 적응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배운 그대로 행하면 된다는 것이다. 내가 앞글에서 북의 연극이나 예술작품에서 일어나는 일과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 서로 다르지 않다고 한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다녔던 실업계 고등학교 시절에 졸업 몇 달 전에 먼저 취업을 했던 급우들이 학교로 찾아오면 종종 이런 말을 했다. “학교와 사회는 다른 곳이다. 학교에서 하던 대로 사회에 나가서 하면 절대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 내가 처음 그 소리를 듣고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한의 그 시절은 부정부패가 만연하던 때였으니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자면 그것에 맞춰서 살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었으랴. 그러니 그 때만해도 덜 오염되었던 학교와 사회는 천지 차이였고, 이왕 사회에 나왔으면 그 사회에 재빨리 적응하지 않는다면 낙오자가 되기 마련이니 거기 맞춰서 잘 처신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회에 먼저 나간 친구들의 말이었다. 

(2014.11.5.)

CJ Kang

미국 시애틀에서 <사람사는 세상 시애틀 한마당>(hanseattle.com)을 공동운영하고 있으며 <사람사는 세상을 위한 시애틀 모임> 대표를 하다가 현재 고문으로 있다. 또 유권자민주연대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2 COMMENTS

  1. 하루빨리 북녘동포들과 탈북동포들이 하나가 되어서 서로 새우등터지는 다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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