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략폭격기 괌 철수는 제2의 쿠바 미사일 사건

▲ B-52H 전략폭격기

꼬리를 내린 미국

미국이 4월 16일 전략폭격기 B-52H 5대를 괌 앤더스 공군기지에서 미 본토로 철수했다. 미 군사전문지 ‘성조’는 지난 17일 “미국 공군이 2004년 이후 전략폭격기를 태평양지역에 지속적으로 순환 배치해오던 오랜 관행을 종식했다”면서 “전략폭격기는 미국에 영구 주둔한다”라고 보도했다.

괌 미군기지의 주요 전력인 B-52H가 괌에서 철수하자 국내에서 파장이 일었다. 국내 언론에서는 “한반도 핵우산 약화 우려(문화일보, 4월 20일)”, “또다시 고조되는 확장억제 약화 우려(중앙일보, 4월 20일)” 등의 보도를 냈다.

언론들은 미국이 B-52H를 철수한 배경에 대해 크게 세 가지로 분석한다. 첫째는 미국의 자체 전략 변화 때문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한국에 방위비분담금 인상 압박용이라는 것이고 셋째는 북한과 협상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먼저, 데이비드 이스트번 미 국방부 대변인은 “미 본토에 상시로 두면서, 더 넓은 범위의 해외지역에서 필요할 때, 더 뛰어난 ‘작전 복원력’을 갖고 인도-태평양 지역에 전진 배치시키기 위한 접근 변화”라고 B-52H 철수 의미를 설명했다.

B-52H가 전략 변화라는 설명은 궁색한 변명이다. B-52H를 순환 배치에서 배제한 후 괌에 상주시키며 별도의 임무를 수행하는 거라면 몰라도 아예 본토로 영구히 철수하는 게 어떻게 “전진 배치”가 될 수 있겠는가.

한국에 방위비분담금 인상을 압박하기 위해서 B-52H를 철수시켰다는 분석도 허무맹랑하다.

미국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서 패권을 유지해왔다. 괌에 배치된 전략폭격기는 태평양 지역 전력의 주축이다. 태평양은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라는 주요국이 있는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이런 태평양 지역의 전략무기를 고작 대한민국 방위비분담금 협상 때문에 철수한다는 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북미 협상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이 그중 가장 그럴 듯하다. 미 국방부는 B-52H 철수에 대해 “이번 조치가 대북억제, 즉 미국의 한반도 확장억제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런 설명이 오히려 B-52H 철수가 북한과 관련이 있으리라고 짐작하게 한다.

그 이유는 미 국방부는 B-52H 철수와 관련해 중국이나 러시아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된 경계 대상이 중국이나 러시아였다면 B-52H를 철수하면서도 중국이나 러시아를 언급했을 것이다. 그런데 미 국방부가 B-52H를 철수하며 신경 쓴 국가는 북한이 유일하다.

물론, 미국이 단지 북한에 잘 보이기 위해 태평양 전략무기를 철수할 리는 없다. 그렇다면 B-52H 철수는 북한이 미국에 요구한 사항 중 하나였거나 혹은 미국이 북한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선제조치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B-52H 철수는 미국이 북한과의 대결에서 꼬리를 내린 결과인 것이다.

B-52H 철수는 북미 대결에서 큰 시사점을 갖는다. 미국의 전략무기 철수는 북미대결이 북한의 승리로 끝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전략무기 철수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소련 영향력 붕괴의 신호탄, 쿠바 미사일 위기

미국과 소련은 자본주의 종주국과 사회주의 종주국으로서 세계를 양분하며 대결을 하고 있었다. 바로 냉전이다. 냉전은 1991년 소련이 해체함으로서 미국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 과정에서 미국이 소련을 상대로 승기를 잡은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쿠바 미사일 위기이다.

당시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자본주의 나라에 핵미사일을 배치해두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미국이 소련 견제를 위해 미사일 기지를 설치한 터키는 모스크바와 약 2,000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2,000km를 날아가는 미사일은 중거리 미사일 축에도 못 들고 준중거리 미사일에 속한다.

이런 와중에 1959년 미국의 코앞인 쿠바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다. 미국은 1961년 혁명으로 쫓겨난 세력을 훈련시켜 쿠바를 침공했으나 쿠바 민중에 의해 좌절되었다.

쿠바는 미국의 위협에 맞설 힘이 필요했고 소련은 미국을 견제할 수단이 필요했다. 그 결과 소련과 쿠바는 쿠바에 미국을 겨냥한 미사일 기지 9개를 건설하려고 했다. 소련은 쿠바 미사일기지를 이용하면 중거리 미사일만으로도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었다.

쿠바 미사일 기지는 미국에 매우 심각한 위협이었다. 그러나 미국도 쿠바 미사일 기지 건설을 저지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소련은 사회주의 대국이자 핵보유국이기 때문이다. 쿠바 미사일 기지를 저지하려다 전쟁이라도 나면 미국도 무사하긴 힘들었다.

하지만 미국은 소련에 미사일 기지를 철수하라며 강경하게 대응했다. 미국은 제3차 세계대전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하며 쿠바가 있는 카리브해를 봉쇄하고 카리브해에 들어오는 선박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 때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며 미국 압박에 나선 소련이 도리어 칼을 거뒀다. 미국이 카리브해를 봉쇄하며 실력행사에 들어가자 소련은 결국 쿠바로 향하던 선박을 회항시키고 쿠바에 있는 미사일과 미사일 기지를 철수시킨 것이다. 소련은 미군이 소련 선박들을 검사하는 것을 허용하였고 쿠바에 대한 정찰까지 받아들였다.

쿠바는 소련에 항의하며 미국과 맞서 싸울 것을 주장했지만 소련은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소련이 미국에 완패한 것이다. 팽팽하던 냉전의 추가 기울어졌다.

▲ 소련과 쿠바는 쿠바 미사일 기지에서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었다.

후퇴의 결과

소련은 쿠바에서 물러난 후 미국에 맞서 힘의 우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쇠퇴의 길을 걸었다.

그렇지 않아도 흐루시초프 집권 이후 친서방 정책을 펴고 있었던 소련은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더욱 미국과의 평화공존 정책에 매달렸다. 쿠바 미사일 위기 다음해인 1963년, 소련은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미국과 핫라인을 설치하고 지하 외의 공간에서는 핵실험을 금지한다는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을 체결했다.

소련은 미국과 타협에 나서면서 사회주의권에서 영향력을 점차 잃어갔다.

일단 소련은 쿠바와의 관계부터 악화됐다. 미국과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었는데 사회주의 종주국이라는 소련이 쿠바를 외면하고 철수해버렸기 때문이다. 쿠바 혁명가 체게바라는 소련은 더 이상 사회주의 종주국이 아니라고 비난했다.

사회주의 나라들은 미국에 굴복해 타협에 나서는 소련을 더 이상 믿고 의지할 수 없었다.

북한은 쿠바 미사일 위기 직후인 1962년 12월, 자주국방을 실현하기 위해 국방-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했다. 그 이후 북한에는 소련에 의지하는 정책이 아니라 자주국방 정책을 편 게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믿을만한 일도 생겼다.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미군의 정탐선 푸에블로호는 정보를 빼내기 위해 북한 영해를 침범했다. 북한은 수차례 경고했음에도 푸에블로호가 영해 밖으로 나가지 않자 푸에블로호를 나포해버렸다. 그러자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전운이 돌았다. 이때 소련은 북한과 함께 미국을 규탄하는 게 아니라 푸에블로호를 미국으로 되돌려보내라고 북한에 압력을 넣었다. 소련이 미국과의 충돌을 꺼린 탓에 북한더러 굴복하라고 종용한 셈이었다.

이렇듯 소련이 미국과의 대결을 피하려다 보니 사회주의 나라들을 지켜주기는커녕 도리어 심각한 마찰을 겪게 되었다.

특히 중국과 소련의 갈등이 첨예해졌다. 중국은 소련이 쿠바 미사일기지를 철수하자 수정주의라며 강력히 비난했는데 그러자 소련도 중국을 교조주의라고 비난했다. 그 영향인지 쿠바 미사일 위기와 비슷한 시기인 1962년 10월 중국과 인도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소련이 중국이 아닌 인도 편을 들었다.

또한, 당시 중국은 소련과의 협력을 통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소련이 1963년 미국과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을 맺으면서 중국과 맺었던 원자무기 제작 원조협정을 폐기해버렸다. 소련이 미국과 타협하는 한편 핵독점을 추구하면서 중국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훗날 소련에서 브레즈네프가 미국에 타협적이던 흐루시초프를 실각시키고 새롭게 집권했는데도 중소 관계는 회복되지 못했다. 중국과 소련의 신뢰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탓이었다. 1969년에는 중국과 소련 사이에 군사 충돌이 일어나기까지 하였다.

이외에도 스페인과 볼리비아, 브라질 등 여러 나라의 공산당에서는 소련의 타협적인 정책에 반발해 분당이 일어났다. 소련에 실망한 많은 나라들은 미국의 편도 아니고 소련의 편도 아닌 ‘비동맹운동’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소련이 쿠바 미사일위기 이후 사회주의 종주국으로서의 영향력을 점차 상실해간 것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와 B-52H 철수

쿠바 미사일 위기는 ‘힘 대 힘’의 대결에서 밀렸을 때 승자와 패자가 어떤 길을 걷게 되는지 보여준다.

이번 B-52H 철수는 미국 판 쿠바 미사일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북한과의 긴장을 완화하고자 전략무기를 철수했다. 미국이 북한에 맞서 대항할 능력도 배짱도 없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뒷걸음질 치는 장수를 누가 두려워하고 또 누가 따르겠는가. 미국 앞에 놓인 길은 쿠바 미사일 위기 후의 소련과 같다.

미국이 실제로 후퇴하는 걸 본 반미국가들은 더욱 미국에 강경대응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베네수엘라, 이란 같은 나라들이 미국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맞서 전쟁을 막아내고 정권을 수호하고 있는데 이런 경향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다음으로, 미국은 자본주의권에서 점차 영향력을 잃을 것이다. 당장 우리나라에서부터 B-52H가 철수하자 친미언론들은 안보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미국이 북한에 절절매자 우리나라의 친미보수세력들이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뱉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도 2019년에 북한이 중·단거리 미사일을 연거푸 발사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미국은 북한에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본에 양해를 구하기까지 했다. 일본은 미국에 철저히 복종하는 나라이지만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탓인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5월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겠다며 “기회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는 결의로 모든 방법을 강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냉전 때 사회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해 소련을 공격하며 한 나라가 몰락하면 그 파급효과가 널리 퍼진다는 ‘도미노 이론’을 퍼트렸었다. 이제 상황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첫 번째 도미노가 쓰러질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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