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Kang 방북기21]자존심 강한 인민들과의 만남

미국에 계신 CJ Kang께서 9월 3~11일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NK투데이는 필자와 협의 아래 방북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의 승인 아래 원문의 표현 가운데 일부를 한국 실정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외부 기고는 본사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강을 따라 제법 한참 걸었나보다. 이제 대동강 가운데 양각도호텔은 지척의 거리에 있다. 위쪽의 큰길로 올라가서 호텔 방향으로 되짚어 돌아오기로 했다. 잔디밭엔 강아지풀이 무성하다. 이게 봄철에 고향에서 보던 강아지풀인양 반가워서 사진으로 남긴다. 출근 시간이 되어가니 길거리엔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다.

호텔 방향으로 돌아가며 걷다보니 길가에 공원이 있어 그리로 들어간다. 평양대극장 인근의 공원이다. 우리가 묵는 평양호텔 맞은편에 엄청난 규모의 평양대극장이 있는데 김미향 안내원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김 주석이 한창 바쁘던 전쟁의 와중에 이미 지금 극장이 서 있는 그 자리를 인민을 위한 대극장 터로 미리 정해두었다가 전쟁 후에 건설했다고 한다. 평양대극장은 몇 층 높이의 대형 건물이고 조선식의 지붕을 올린 아주 아름다운 건물이다.

나무들로 가려진 공원 속 길을 걷는데 길이 꺾이면서 공원벤치에 세 할머니와 아이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띄자 노 박사님이 사진부터 한 장 찍고는 다가간다. 사진을 찍는 것을 정면으로 그분들이 보셨기에 편안하게 아침 산책을 나오셨다가 그분들은 좀 어이없어하였고 막상 사진을 찍은 박사님도 바로 몇 미터 앞의 그분들을 바로 마주치게 되었으니 아주 당황한 모습이다. 그래 바로 자신을 소개하면서 할머니들이 기분 나빠하지 않도록 애를 쓰신다.

정말 허락 없이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들도 평소에 사진을 찍힐 때는 미리 옷차림도 단정히 하고 되도록이면 웃는 얼굴로 사진이 잘 나오기를 바라면서 임하는데 평화롭게 평상복 차림으로 아침 일찍 산보를 나왔다가 갑자기 사진을 찍히게 되는 사람들의 입장으로서는 제법 심각하게 그들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당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을 찍는 사람의 의도가 아무리 통일운동을 위해서 북부조국의 인민들의 이러저러한 모습을 찍는다고 하지만 찍히는 사람의 입장으로는 찍는 것을 허락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허락한다 해도 이왕이면 잘 찍히기를 바랄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되도록이면 좀 멀리서 얼마 정도의 거리를 두고 찍히는 사람들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상황에서 사진을 찍거나 아니면 미리 말을 먼저 걸어서 대화를 시작하고 간접적으로라도 예고를 하면서 사진을 찍곤 하였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번 일은 좀 돌발적으로 발생했던 것이다.

한 할머니가 왜 사진부터 찍느냐는 항의를 하시다가 다행히 할머니들이 아침에 손주와 나란히 앉은 모습이 너무 평화롭게 보여서 사진부터 찍게 되었다면서 민족통신의 기자로 통일운동을 위해 취재차 오셨다는 박사님의 설명을 듣고는 화를 내지 않고 마음을 풀고는 차차 서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할머니들은 서로 친구 사이로 일찌감치 운동 삼아 산보를 나오셨다고 했다. 모두 입을 모아 살아생전에 통일이 이뤄지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하신다. 대화가 되니 이젠 마음 놓고 내가 사진을 찍는다.

왼편의 할머니에게 손녀가 몇 살이냐고 물으니 3살이라고 한다. 이름은 연아다. 이제 우리가 미국에서 방문한 동포라는 것을 알고는 서로 대화가 통한다고 여긴 내가 연아의 할머니에게 먼저 이해를 구했다. 

“원래 우리 풍습에 오랜만에 친한 친구 집에 가서 그 집의 귀한 아이들을 보면 그냥 인사만 받지 않고 용돈을 하라면서 주머니에서 단돈 얼마라도 주는 풍습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북부조국을 방문해서 이렇게 아이들을 가까이서 개인적으로 만나는 일은 처음입니다. 해외에서 동포가 이렇게 오랜만에 조국을 방문해서 귀한 이곳의 후세를 보고 반갑고 사랑스러운 마음에 주는 아주 자그마한 성의인데 막상 아이에게 주려고 하니 자존심이 강한 북부조국의 인민들이 내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절대로 받지 않으려 할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여기 중국인민폐 10원밖에 안되지만 꼭 주고 싶은 제 마음을 먼저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세 할머니가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않고 잠깐 생각해보는 눈치였다. 그래 재차 내가 조금 더 설명을 하니 곁의 다른 할머니가 괜찮다는 표정을 먼저 지은 데다 연아 할머니도 마지못해 허락하는 것 같아서 연아에게 그 돈을 쥐어주었다. 세살 꼬마가 무슨 돈을 알랴. 그냥 새로 생긴 장난감으로 알고는 손에 쥐고 조물락거리거나 흔들 뿐이었다.

아무튼 노 박사님과 내가 이 세분의 할머니들을 만나 서로 자초하여 긴 설명이 필요한 상황을 만든 것이다. 허락 없이 사진을 찍은 것과, 요즘은 북부조국에서는 다른 집의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는 풍습이 없는지 모르겠으나 모르는 사람인 내가, 그것도 미국이란 원수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 아이에게 용돈을 주겠다고 한 것은 편안하게 산책을 나온 분들에게 참 복잡한 상황을 만든 것이 아니랴? 전자는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해서, 후자는 내가 아무리 내 손녀 같은 북부조국의 어린이에게 용돈을 주었다고 하지만 그걸 잘못 이해하면 북의 인민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는 일을 벌인 것이다. 아무튼 두 가지 모두 부드럽게 받아준 할머니들이 그 부드러운 인상과 같이 이해하는 마음 또한 넓어서 다행한 일이었다.

연아의 할머니와 헤어져서 조금 걷는데 다시 세 사람의 할머니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젠 나도 노 박사님도 선뜻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는다. 북의 여느 인민들과 마찬가지로 서로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하니 이분들도 통일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연로보장으로 편안하게 지내시느냐고 물으니 “70 넘은 노인들이 대동강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자유로운 나라인데 듣자하니 남조선에서는 우리가 며느리에게 쫓겨나서 갈 데가 없어 대동강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고 하더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처음 듣는 이야기지만 남한의 매스컴에서 이런 식으로 거론한 적이 있을 수도 있으리라 싶다. 북부조국을 있는 그대로 방송하지 않고 언제나 왜곡하여 사람이 살기 힘든 곳으로 보여주는 것이 일상이니 저 정도로 비약하여 방송하는 것은 오히려 약과가 아닌가?

다시 세 할머니들과 헤어져서 몇 발짝 걷는데 연아가 저 뒤쪽에서 내가 준 돈을 짤랑짤랑 흔들며 우리 있는 곳으로 오기에 노 박사님이 귀엽다면 번쩍 안아 든다. 그런데 막 우리와 대화했던 한 할머니가 연아 손에 쥐어진 지폐를 보고는 이렇게 돈을 받으면 안 된다고 다시 연아에게서 돈을 받아 돌려주려는 것이 아닌가? 이젠 나도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연아 할머니에게 어렵게 허락까지 받았는데 다른 할머니가 그걸 돌려주도록 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노 박사님도 연아 손을 감싸 쥐며 돌려받으면 안 된다는 모습을 취한다. 내가 다시 그 할머니에게 힘들지만 상황을 설명해드리니 마지못해 이 할머니도 수긍을 하는 눈치다.

아무튼 귀여운 연아를 통하여 25년 만에 북부조국을 다시 찾은 내가 북의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마음을 표한다는 것이 잘못 오해받게 되면 자존심 강한 인민들의 마음을 거스르게 할 수도 있으리라고 처음부터 내가 예감한 것은 기우가 아니었던 것이다. 북부조국 인민들의 그 때 묻지 않은 마음과 강한 자존심을 내가 높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호텔로 돌아와 아침식사를 위해 식당에 들어가니 어제 우리가 앉았던 같은 자리에서 매일 아침식사를 하게 된다고 한다. 어제 아침에 노 박사님이 식사를 하고는 벗어둔 잠바가 의자에 그대로 걸쳐 있다. 오늘 아침 산책을 나가면서야 그걸 식당에다 벗어두고 나온 것을 기억하셨는데 내가 접대원에게 그 옷을 왜 챙겨두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니 당연히 오늘 다시 오실 것이라 여기고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절대로 물건을 잃어버릴 수 없는 곳이기에 그냥 두면 주인이 찾으러 온다는 이야기다. 

노 박사님이 말씀하던 문근영을 닮았다는 접대원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어제는 쉬는 날이었다면서 오랜만에 뵙는다며 박사님께 참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아직 20대 초반일 듯한 앳된 모습이다. 이름표를 보니 김현순 접대원이다. 남한의 문근영이 나오는 드라마는 내가 몇 편 본 적이 있는데 두 사람의 분위기가 참 비슷하다. 말씨도 예의 바르고 음식을 내오거나 빈 그릇을 챙기는 일에도 작은 소리도 내지 않고 품위를 갖춘 모습으로 일한다. 물론 이곳의 모든 접대원들이 김현순 접대원과 마찬가지로 단정한 차림에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품위 있게 봉사를 한다.

현순 동무와 박사님이 나란히 기념사진을 찍게 하였다. 우리가 어제 연극을 보았기에 박사님이 현순 동무도 연극공연을 보러 가느냐고 물어보니 직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가기도 하고, 가족들과 함께 공연을 보러 가기도 한다고 답해준다. 연극표가 우린 아주 비싼데 얼마나 하느냐고 하니 인민들은 백 원 정도로 구입할 수 있다 한다. 이건 엄청나게 싼 값이다. 표는 극장에 가서 사느냐고 물어보니 미리 여기저기서 표를 살 수 있다고 답해준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 이후에 아침 식사 때면 현순 동무가 종종 인사하며 봉사해주었다.

문근영에 대해서 내가 잠깐 찾아보니 영화배우로 크게 성공하기도 하였지만 그 성공으로 번 수입을 ‘기부천사’로 불릴 정도로 평소에 다양한 기부와 후원활동을 하는 배우다. 복지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숱한 그늘진 곳에는 문근영 배우처럼 뜻있는 연예인들과 독지가들이 기부하는 것이 크게 힘이 될 것이니 이들이 얼마나 귀한 일을 하고 있는가. 문근영 배우가 이미 오래전에 10억이 넘는 돈을 기부하여 역대 익명의 개인 기부자 가운데 최대의 금액을 기부하였다고 하니 김현순 접대원이 문근영을 닮았다고 우리가 말해준 것은 그 개인으로서도 알고 보면 참 영예로운 일이라 여겨진다. 북부조국에서 인민 개개인이 사회단체에 기부하는 문화가 어떠한지는 잘 모르겠다. 

통일이 되는 날, 마음씨 고운 문근영 배우가 이곳 평양호텔에 찾아와 그녀를 닮은 김현순 접대원을 동생으로 삼고, 두 사람이 반갑게 마주할 수 있기를 꿈꾸어본다. (2014.11.9.)

CJ Kang

미국 시애틀에서 <사람사는 세상 시애틀 한마당>(hanseattle.com)을 공동운영하고 있으며 <사람사는 세상을 위한 시애틀 모임> 대표를 하다가 현재 고문으로 있다. 또 유권자민주연대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1 COMMENT

  1. 저 접대원아이를 보니까 문근영까지는 아니지만 이미지가 그래보이더군요? 우리나라 미녀들은 솔직히 너무 성형에 화장발에 신경쓰다보니 친근한멋이 없어서 여성인 저로서도 맘에 안들더군요? 차라리 북녘 특히 수도 평양에 거주하는 미녀들이야말로 친근하고 포근해보여서 더 좋아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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