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부수는 ‘악당’ 국가보안법이 살아있다

1. 국가보안법의 먹잇감…사랑의 불시착부터 대통령까지

“빨갱이, 종북이라는 단어 참 많이 들어봤지? 세월호 유가족이 진상규명을 요구해도 대학생들이 반값등록금을 얘기해도 노동자들이 정당한 권리보장을 얘기해도 항상 듣는 말이 바로 빨갱이, 종북이야. 우리에겐 너무 익숙한 일이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왜 이렇게 당연하게 일어나는 걸까?”

-영상제작소 ‘스물’이 20대 친구들에게 전하는 말.

▲ 11월 29일, 영상제작소 ‘스물’이 유튜브 채널에 올린 <국가보안법이 뭐냐구요?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구요? 악법중에 악법,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합니다!> 영상 중에서.  ⓒ 영상제작소 ‘스물’ 유튜브 화면 갈무리

먼저 위 물음을 던지면서 이번 글을 시작하고 싶다. 2020년 오늘까지도 ‘빨갱이-종북 몰이’를 가능케 하는 무시무시한 악법, 국가보안법에 관한 이야기다.

올해 초,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북녘에 불시착한 남녘 여성과 북녘 장교가 사랑에 빠진 줄거리를 다룬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화제가 됐다. 드라마는 넷플릭스에서도 공개됐는데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1일 일본 출판사 지유코쿠민샤가 ‘올해의 유행어’ 10개 중 하나로 사랑의 불시착(愛の不時着)을 꼽았을 정도다.

심지어 혐한 작가로 유명한 햐쿠타 나오키(百田尚樹)는 “드라마의 설정이 황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빠져 있었다. (한류에 빠져) 죄송합니다”라고 자신의 트위터에 쓰기도 했다. 혐한을 뒤로 미룰 만큼 드라마의 매력이 엄청났다는 것. 남녘, 북녘 청년이 분단을 뛰어넘어 사랑에 빠졌다는 신선함이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끈 비결이다. 지난 2018년 판문점선언 이후 한반도에서 시작된 평화, 번영, 통일 분위기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새로운 시대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터졌다. 지난 4월 기독자유당이 ‘사랑의 불시착’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것. 기독자유당은 제작진이 쓴 각본-연출, 등장인물 대사가 “북한을 미화하고 선동했다”라며 이유를 들었다.

이렇게 된 원인은 명확하다.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모퉁이에 국가보안법이 단단히 똬리를 틀고 앉아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문점선언 뒤 국가보안법은 사문화됐다”라는 일부 주장은 틀렸다.

인터넷 국어사전에 사문화(死文化)를 검색해보면 “법령이나 규칙 따위가 실제적인 효력을 잃어버림. 또는 그렇게 함”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사랑의 불시착> 사례 딱 하나만 봐도 국가보안법은 살아있다. 드라마를 보고 “재밌다”라고 얘기 나누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몹시도 소름 끼치는 현실이다.

“569건” e-나라지표에 올라온,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접수된 사건 숫자다.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2020년을 더하면 건수는 600건을 훌쩍 넘으리라 짐작된다. 국가보안법, 특히 7조 찬양·고무죄는 성별, 나이, 지위를 따지지 않는다. 누구라도 언제 어느 때나 국가보안법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판문점 북측 지역, 평양, 백두산을 오간 문재인 대통령마저 7조 위반 혐의로 고발당한 상태다.

▲  e-나라지표에 올라온 ‘범죄유형별 공안사건 처리현황-국가보안법 위반사범‘ 국가보안법위반사건 접수 및 처리현황 ⓒ e-나라지표 홈페이지 갈무리

언제, 어느 때, 그 누구라도 국가보안법의 먹잇감이 될 수 있는 현실. ‘촛불혁명의 성지’라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악법이 아직도 설치고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2. 일상 속으로 침투하다

최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평등과 연대로! 인권운동더하기’, 경향신문은 공동으로 ‘2020년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위원회’를 열었다. 지난 2019년 11월 1일부터 2020년 10월 3일까지 각급 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선고된 판결과 결정을 대상으로 삼았다고.

위원회는 “인권과 사법정의를 증진시키거나 저해시키는 등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된 판결 21개”를 선정했다. 이 가운데 국가보안법 관련 판결이 ‘최악의 걸림돌 판결’ 후보에 올랐다. 국가보안법 7조에 위반되는 ‘혁명동지가’를 불렀다는 이유로 안소희 전 파주시의원과 홍성규 전 진보당 대변인 등에게 징역형을 확정한 대법원 판결이다.

국가보안법 판결은 위원회에서 최악의 판결로 선정될 수도 있었는데 불발됐다고. 그 이유는 “2020년에 국가보안법 판결을 걸림돌 판결로 선정하는 것 자체가 비참하다”라는 내부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에 휘둘리는 대한민국의 웃픈(웃기고도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민중가요인 혁명동지가는 노래패 ‘우리나라’ 소속 가수 백자 씨가 노랫말과 가락을 지었다. “민주주의 수호”와 “독재 타도”를 위한 싸움터에서 학생과 시민들은 20년 넘게 어깨 걸고 혁명동지가를 불렀다. 바로 그런 뜻깊은 노래가 별안간 국가보안법에 덜미를 잡힌 것이다.

“이 노래는 1991년도에 제가 대학교 재학 시절 2학년 때 만든 노래입니다. 당시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 격려하는 차원으로 독립군들처럼 우리도 힘내서 살아가자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2013년 9월 5일, 백자 씨가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 내용 중에서.

국가보안법의 논리대로라면 광장과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그에 맞춰 몸짓을 한 국민은 모두 종북과 빨갱이가 되고 만다. 수많은 학생, 시민들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범죄자로 내몰리는 것.

지난 11월 5일, ‘표현의 자유’와 국가보안법 국회토론회에서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는 이렇게 강조했다.

“저는 태어나서 여태까지 혁명동지가 500번 들었을 것 같아요. 혹시라도 이 자리에서 뒤풀이 자리에서 ‘노래 같이 불러봅시다’ 하고 따라 불렀다면 언제라도 기소될 수 있습니다. 언제라도 이런 일로 피해받을 수 있습니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은 살아있습니다. 살아있는 서슬 퍼런 칼이라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김덕진 활동가는 “이제는 국가보안법으로 고문받고 감옥 가는 사람들 없는데 ‘무슨 문제야’(라며) 구속당하지 않고 우리가 너무 강한 것에 익숙하다 보니까, 위반 사례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라며 말을 이어갔다.

“국가보안법이 일상으로 침투해서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괴롭히는 방식입니다. 공안기관들이 그런 거에 맛이 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는 북한 서적을 소지했다는 이유(국가보안법 7조 찬양·고무죄-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로 해직된 교사도 4명이나 돼 충격을 안겼다. 이 역시 대법원이 내린 판결 때문이다. 교사들이 가지고 있던 책은 지난 2005년 남북교육자교류로 찾은 평양에서 구입한 ‘봉이 김선달’, ‘조선의 력사’ 같은 아동만화로, 당시 남측 당국은 책 반입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 당시인 2013년, 대법원이 교사들에 이적표현물 혐의를 적용하더니 2020년 들어서는 “유죄”를 확정 지은 것.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교직에서 물러나게 된 박미자 국가보안법 7조부터 폐지운동 시민연대 운영위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됐다’고 말한다. 아니다. 2020년에도 전교조 교사 4명은 북한 서적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교단을 떠나야만 했다. 이들의 일상은 완전히 무너졌다.”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을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 하지만 <사랑의 불시착>부터 혁명동지가, 해직 교사 건까지 국가보안법 관련 사례를 쭉 보자. 대한민국이 헌법보다 아래인 국가보안법에 붙들려 있는 꼴이다. 국가보안법은 사문화되기는커녕 우리 주변에서 생생히 살아있다.

3. 기어이 끝장을 봐야 할 싸움

연말연시를 맞은 요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국가보안법 7조 폐지를 뼈대로 한 개정안이 상정됐다. 헌법재판소에서도 7조 위헌 여부를 심리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폐지 문턱’까지 왔다고 볼 수는 없을 듯하다.

2014년에 나온 <끝까지 간다>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야말로 ‘끝까지’ 극한 상황에 내몰린다. 죽은 줄 알았던 악당은 끊임없이 살아나 주인공을 공격한다. 자동차가 폭발해도, 저수지에 빠져도. 악랄한 비리 형사 박창민(조진웅 분)은 고건수(이선균 분)의 집까지 찾아 끝내 고건수를 죽이려 든다.

국가보안법의 작동방식은 영화 속 악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보안법 피해자는 ‘끝까지’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가극단 ‘미래’에서 활동 중인 배우 김지영 씨는 영상제작소 ‘스물’과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국가보안법 수배자로 살다가 국가보안법 공소시효 8년이 만료돼 수배 해제된 경험이 있는 배우 김지영이라고 합니다. (활동하던) 한총련이 이적단체가 되면서 구성원이었던 한총련 대의원까지 단과대 학생회장까지 자동으로 이적 회원이 돼서. 탈퇴서 쓰지 않으면 무조건 수배자가 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배자가 됐습니다.”

국가보안법에 따른 수배 경험은 극심한 트라우마로 남았다. 김지영 씨는 “실생활에서 느껴지는 변화가 있나요?”라는 물음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사람이 뒤에서 치는 거 있잖아요. 놀라게 하는 거 극혐! 정말 자지러져요. 진짜. 아직도 택배를 안 시켜요. 웬만하면. 문 두드리는 거 진짜 싫어해요. 왜냐하면 수배생활 오래 하다 보면 은신처를 가지고 있게 돼요. 누가 문을 딱딱 두드리면, 이런 건 두 가지 경우인 거야. 주인집 아줌마거나, 누가 잡으러 왔거나. 그러니까 요즘도 극도로 그런 거 싫어하고요.”

이런 국가보안법이 살아있는 한 공포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국가보안법에 걸려들지 않으려 스스로 검열하는 분위기에서는 ‘진짜 민주주의’도 불가능하다. 국가보안법을 완전히 끝장내자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이유다.

▲ 11월 29일, 영상제작소 ‘스물’이 유튜브 채널에 올린 <국가보안법이 뭐냐구요?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구요? 악법중에 악법,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합니다!> 영상 중에서.  ⓒ 영상제작소 ‘스물’ 유튜브 화면 갈무리

앞서 국가보안법 제정 72년째가 되는 2020년 12월 1일, 민주인권기념관으로 탈바꿈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진보민주진영 137개 단체와 161명 인사들은 공동선언문에서 “국가보안법은 화해와 협력의 당사자인 북을 적으로 강요하는 분단체제의 수호자로서 군림해 왔다”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그러면서 “악법을 그대로 둔다면 결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라도 되살아나 민주주의 발전과 평화통일의 발목을 잡게 마련”이라고 또렷이 밝혔다. 그렇게 하자면 국가보안법에 숨 돌릴 틈을 주면 안 된다.

“국가가 혐오와 폭력을 법으로 보장하는 사회에서는 다른 것은 틀린 것이 되고 우리 모두는 틀리지 않기 위해서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검열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어. 이런 폭력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정말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영상제작소 ‘스물’이 전하는 말.

▲ 11월 29일, 영상제작소 ‘스물’이 유튜브 채널에 올린 <국가보안법이 뭐냐구요?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구요? 악법중에 악법,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합니다!> 영상 중에서.  ⓒ 영상제작소 ‘스물’ 유튜브 화면 갈무리

국가보안법이 생기고 72년째, 언제까지 이런 세상에서 살아야 할까. 이번에야말로 국가보안법을 단번에 ‘싹둑’ 끝장내야 한다. 우리 머리 꼭대기(생각, 상상) 위에 떡하니 올라 앉아있는 악당, 국가보안법에 마침표를 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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