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Kang 방북기23]김정숙평양방직공장을 찾아서

재미동포 CJ Kang께서 2014년 9월 3~11일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NK투데이는 필자와 협의 아래 방북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의 승인 아래 원문의 표현 가운데 일부를 한국 실정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외부 기고는 본사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번 북부조국 여행 가운데 평양에서 방직공장을 답사할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사실 내가 북에서 미리 요청하지는 못했지만 공장의 노동자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는데 이곳 김정숙평양방직공장에서 마침 합숙소를 새로 완공하여 그곳을 우리가 찾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합숙소란 말을 내가 알아듣기는 해도 좀 생소했는데 남쪽에서도 기숙사와 비슷한 용어로 많이 사용되는 말이란 것을 근래에야 알았다. 내가 해외에서 살면서 이 단어를 별로 접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운전기사 리영호 동무도 이곳은 자주 찾지를 않아서인지 먼저 합숙소쪽에 도착했는데 반대쪽의 공장쪽으로 가도록 입구에서 수위처럼 차려입은 아주 활달한 모습의 여성이 알려준다. 공장 입구에 도착하니 이미 안내를 맡은 강창숙 안내원이 조선옷 차림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강창숙 안내원은 이곳에서 7년 동안 근무했다고 한다. 먼저 이곳 김정숙방직공장의 지난 역사를 한눈으로 볼 수 있도록 자료들을 잘 전시해놓은 방으로 안내한다. 혁명사적교양실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먼저 처음 보게 된 전시물에 북의 지도자들이 이곳 평양방직공장을 찾은 횟수와 그 날짜를 표기해놓았다. 살펴보니 그 가운데 김일성 주석이 이 공장을 찾은 횟수는 모두 48차례나 된다. 평양방직공장에 대한 북의 지도자가 얼마나 큰 관심을 가졌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이고, 또한 인민의 의식주 가운데 입을 것에 대한 지도자의 관심이 얼마나 컸던가를 알 수 있는 자료다. 북부조국에 인민들이 입는 옷감을 생산하는 다른 공장들도 많이 있겠지만 전쟁 후 대부분의 공장들이 파괴된 상황에서 헐벗은 인민들에게 옷을 입히는 일에 이곳 평양방직공장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기도 하다.

그 다음 자료를 보니 이곳 평양방직공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친인 김정숙 여사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인 1948년에 이곳에다 방직공장을 건설하여 헐벗은 인민들에게 좋은 옷을 해 입히자고 제안한 것을 1948년 10월 10일 김일성 주석이 지시하여 공장을 짓게 된 것으로 되어있었다. 이 공장의 이름이 왜 김정숙평양방직공장으로 되었는지의 유래를 알 수 있는 자료다.

평양방직공장은 1950년 6월 27일에 기본적인 건설이 완공되어 공장이 가동되었다고 한다. 전쟁 가운데 53년 1월 2일에는 크게 폭격을 맞아 20여 명의 노동자가 희생되었다고 하는데 바로 이틀 후인 1월 4일에 김 주석이 지하방직공장을 방문하여 위로하고 격려하였다고 한다. 전쟁으로 대부분의 생산시설들은 지하로 옮겨져 생산을 계속했는데, 정전 후 군인들이 나서서 전후복구사업으로 공장건물을 복구하였고 이후 생산 목표량은 언제나 초과하여 달성했다고 한다.

1960년대 중반엔 큰 수해로 공장이 침수되어 엄청난 피해를 보았는데 종업원들과 외부에서 지원자들이 몰려와 다시 밤낮으로 수해를 복구하여 두 달 만에 조업을 정상화시킨 일도 있었다. 지금은 서해갑문으로 평양이 다시는 수해를 입을 일이 없다고 한다. 


자료로는 ‘제2의 고난의 행군 시절’ 동안 평양방직공장이 얼마만큼의 어려움을 겪었는지 내가 알 수는 없지만 1994년부터 2004년까지의 기간 동안 ‘신념으로 이겨낸 고난의 행군, 강행군’이라는 도표가 있었다. 나라 전체가 어려움에 처했을 동안 평양방직공장 또한 함께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기간 동안 생산을 위한 전력에 문제가 있었을 수 있다. 전기 없이 어떻게 생산이 가능하랴. 또한 실을 뽑기 위한 원료의 공급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천연섬유나 화학섬유 재료의 생산과 공급 또한 나라 전체가 어려울 때라면 당연히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을 것이고, 이런 기본적으로 방적과 제직에 필요한 원료의 조달에 문제가 있었다면 생산량 또한 크게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제2의 고난의 행군’이라고 부를 만큼의 어려웠던 외부로부터 주어진 상황 속에서도 평양방직공장 또한 북의 모든 인민들이 스스로 그 어려움을 극복하였듯이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온 힘을 다하여 그 기간을 지혜롭게 극복해낸 것 같다. 이곳 자료들이 전시된 ‘혁명사적교양실’도 2003년 11월에 건설된 사진을 보니 고난의 행군 기간의 시련을 이때쯤엔 모두 이겨내었기에 가능하였으리라. 

평양방직공장의 지난 역사를 살펴본 이후 이곳에서 오랫동안 열정적으로 일해온 두 분의 노동자와 깊이 있는 대화를 하였는데 그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먼저 내가 이곳 사회주의 나라에서 인민을 위하여 옷감을 생산하는 방직공장에 대하여 느낀 점들을 오늘은 말하고 싶다.

첫째, 평양방직공장은 누구의 공장인가 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의 공장은 모두 국가의 소유로 알고 있다. 한마디로 국영기업체다. 국가의 소유라는 말은 바로 모든 인민이 주인이라는 말이다. 한 예로 국가가 모든 주택과 아파트들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인민을 위해서 지어졌고 인민이 그 안에서 무료로 사는 나라가 바로 여기 북부조국이다. 

마찬가지로 이런 생산공장 또한 국가가 소유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바로 인민을 위해서 생산하고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인민을 위해서 더 많은 생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북의 지도자들이 이곳을 수십 차례에 걸쳐서 방문한 것이다. 그 지도자들이 이곳을 방문한 목적이 생산을 늘려서 지도자들의 수중에 더 많은 재산을 축적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을 독려하려고 왔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독자들이 있는가? 

자 이제 생각을 좀 더 넓혀보자. 과연 북부조국 인민들을 어느 누가 가난하고 못산다고 할 수 있는가? 나 또한 방문기를 쓰면서 몇 번을 가난하다는 말을 사용하였으리라. 그리고 그것은 북부조국을 방문했을 때 내가 가끔 듣기도 하는 이야기였다. 한데 그 가난한 인민들이 실제로는 이렇게 북부조국의 수많은 생산공장들을 모두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북부조국에서는 모든 노동자들이 나라의 것이면서도 자신의 것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가난한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이렇게 부자인 것이다. 

둘째, 이 평양방직공장은 누구를 위한 공장인가하는 문제를 생각해보자. 이미 윗글에서 인민을 위해서 생산하는 공장이라고 했다. 북의 사회주의가 인민의 복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지도자들이 저렇게 수십 번을 방문하여 생산을 독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늘 말하는 의식주 문제에 있어 바로 그 첫 번째인 옷감을 생산하는 공장이 이곳이다. 

북부조국은 12년의 의무교육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교복을 제공하는 나라다. 이번 방문에서 내가 그 일을 다시 물어보지 못하였지만 이미 80년대에 내가 읽었던 방문기에서 그 내용을 알았으니 북부조국이 학생들의 교복을 무료로 제공한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의 일일 것이다. 인민들이 입을 옷은 당연히 돈을 받고 팔아서 다시 이렇게 생산하여 이 공장이 운영되도록 하겠지만 한편으로 북부조국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료로 교복을 제공하기도 하는 곳이다. 무료로 교복을 주는 것으로도 이 공장이 누구를 위해서 운영되는지를 알게 되지 않는가? 바로 인민을 위해서 운영되는 것이다. 인민을 위해서 운영하는 이 공장은 바로 내가 위에서 거론하였듯이 인민이 그것을 소유하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내가 살펴본 공장 내부의 실을 뽑는 방적기와 베를 짜는 직포기들은 남한이 오래전부터 수출을 하기 위해서 해외에서 일류 기계들을 들여와서 생산하던 설비에 비하여 턱없이 부족한 시설일 수도 있다. 이미 70년대에 남한에선 방직공장들은 사양산업이라는 말을 했었다. 그러다가 재벌들의 차관으로 가능했던 자본의 투자로 인해 아주 좋은 시설을 갖추게 되고 값싼 노동력을 발판으로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 해외수출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경기가 좋을 때는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기도 했을 것이다. 한데 지금은 수많은 후진국들이 그 일을 하고 있으니 방직산업이 다시 사양산업이 되었다가 아주 잠깐 일어났다가를 반복하는데 그것은 순전히 해외수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부조국의 이런 방직공장 시설과 설비들이 자본주의 공장들에 비해서 부족할 수는 있어도 이 공장이 문을 닫을 일은 없다. 해외의 산업들과 경쟁할 필요는 없지만 지나간 공장의 역사처럼 앞으로도 인민의 필요에 의하여 꾸준히 생산시설을 확장하여 보다 자동화되고 좋은 기계로 바꿔 노동자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능률적으로 일하게 될 것이다. 노동자들도 인민을 위하여 보다 많은 생산을 하겠노라고 지속적으로 다짐하며 열심을 다하여 일하는 곳이다. 이곳 평양방직공장의 노동자들의 복지에 관해서도 이어지는 글에서 거론하게 될 것이다. (2014.11.18.)

CJ Kang

미국 시애틀에서 <사람사는 세상 시애틀 한마당>(hanseattle.com)을 공동운영하고 있으며 <사람사는 세상을 위한 시애틀 모임> 대표를 하다가 현재 고문으로 있다. 또 유권자민주연대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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