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 목사 방북기14]우연히 알게 된 김정일위원장의 실제 운명시각

나의 이번 방북 기간은 2014년 9월 25일 부터 10월 6일 까지 이며 내가 설립한 NK VISION 2020의 중요 기관 중에 하나인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 원장의 자격으로 방문을 했다. 특히 이번 방북에는 평소 중국과 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은 미국 시민권자 신분의 목회자 부부가 학술원 회원의 자격으로 나와 함께 동행을 했다. 

이번에 나의 방북 목적은 종교적인 업무와 학술적인 업무를 비롯하여 남과 북의 양측 사회가 서로 소통하고 통합 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 세 명은 매우 차분하면서도 기대감이 넘치는 마음으로 중국 심양에 당도하여 북한 영사관측으로부터 비자를 받고 평양발 고려항공편에 몸을 실었다. (필자)

편집자 주: 통일뉴스 동시 게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운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

나와 일행은 평양에서도 유명한 통일거리에 위치한 하나음악정보센터를 방문했다. 이곳을 참관하며 담당 해설사로부터 내부 시설물에 대한 통상적인 설명을 듣던 중에 우연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뜻하지 않은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다름 아니라 이곳이 바로 김위원장이 생애 마지막으로 현지 지도를 했다는 유서깊은 장소라는 것이다. 해설사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갑자기 나의 머릿속에는 그동안 김위원장의 운명과 관련한 한국 언론들의 추측성 보도와 낭설들이 떠오르며 스쳐지나갔다. 

나는 해설사에게 들은 이야기를 계기로 김 위원장이 운명하기 직전 일주일간의 공개된 일정과 한국의 왜곡된 보도 자료들을 일일이 대조하며 비교해 보았다. 한국의 일부 보수언론들은 당시 김 위원장의 죽음을 미스테리처럼 접근하여 추측성 보도를 해왔으며 현재의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신변에 대해서도 편협되고 부정적인 왜곡 보도들을 지속적으로 양산해왔다. 이같은 ‘아니면 말고’식의 보도 행태들은 한국 국민들에게 북한이라는 국가와 그 나라의 통수권자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고 그 체제를 잘못 판단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정확한 진실을 알리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음악도서관 홀 입구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친필휘호 “나의 첫사랑은 음악입니다”라는 예술적 영감이 서린듯한 어록이 대형 스크린에 적혀 있었는데 이는 평소 예술 감각이 매우 뛰어나다고 소문난 그의 통치 스타일을 함축성 있게 표현하고 있는 듯했다. 해설사의 설명에 의하며 그의 집무실 책상 위에는 언제나 새로 작곡된 악보들이 놓여있고 최신 창작곡들의 음악 선율이 집무실 안에 흐르고 있다고 한다. 음악과 함께 국정을 구상하고 노래를 듣고 사색하는 중에 정치적 결단도 했다고 하였다. 나는 김 위원장이 첫사랑이라고 고백했던 음악이 그에게 있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를 생각하며 조심스레 1, 2층을 모두 돌아보았으며 이곳을 떠날 때는 그에 대한 궁금증이 다소 풀렸다. 그가 이곳을 공식적으로 생애 마지막으로 방문했듯이 그에게 있어 음악예술은 그의 운명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나의 첫사랑은 음악입니다’

하나음악정보센터 건물에 도착해 주변을 살펴보니 건물 좌측에 매우 익숙한 건물이 자리잡고 있어 자세히 바라보니 내가 이미 방문했던 평양 단고기집이었다. 냉면으로 말하면 옥류관을 떠올리듯 평양 단고기집은 북한 개고기음식의 총화라고 할 수 있는 단고기의 옥류관격인 셈이다. 

단고기집 주차장 바로 옆에 자리잡은 2층 구조의 하나음악정보센터는 DVD플레이어를 생산하는 공장이면서 동시에 일반 주민들을 대상으로 오픈된 음악도서관의 기능을 갖추고 있는 사회시설물을 겸하고 있었다. 이곳은 북한과 세계 각국의 음악과 무용에 관련한 예술자료들을 수집, 편집, 보급하는 곳으로서 이를테면 북한의 ‘종합 예술정보 캠프(기지)’라고도 볼 수 있는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1층에는 거대한 공간의 음악전자도서관 홀이 나온다. 주변을 돌아보니 다양한 이용자들이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 깊은 침묵 속에서 저마다 헤드셋을 끼고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제공되는 음악 감상에 푹 빠져 각기 다양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1층 홀 입구에는 김정일, 김정은 두 지도자가 직접 사용했다는 음악컴퓨터가 기념물처럼 비치되어 있었고 “나의 첫사랑은 음악입니다”라는 붉은 색 친필휘호가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적혀 있었는데 해설사는 도착한 우리 일행에게 친필에 대한 배경을 설명해 주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곳을 찾아주시어 일꾼들에게 ‘나의 첫사랑은 음악입니다’ 라는 뜻깊은 말씀을 남겨 주셨습니다. ‘첫사랑은 음악’이라는 고백속에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인생관, 음악관이 력력히 비껴있으며 소중한 추억과 감회가 뜨겁게 어리여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절세위인의 무한한 음악사랑의 세계를 폐부로 절감할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도서관은 이용자들에게 첨단 음향기자재를 통해 음악관련 정보를 연구하도록 설비되었고 인근 아파트촌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청년, 학생들이 제한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었으며 북한의 음악예술 전문가들도 빈번하게 찾아와서 이용하고 있었다. 이용자들이 음성 및 동영상 자료들과 도서, 악보들을 시청하거나 열람할 수 있게 전자도서관형식으로 꾸려진 이곳은 부지면적이 7,600㎡이고 연건평은 5,736㎡라고 했다. 1층 홀의 한 코너에는 방문자 일행이 잠시 회의와 휴식을 취하거나 방명록을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이 고급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도서관 홀 끝에는 다통로(멀티채널) 감상실이 있는데 그 안에 들어가면 특수한 멀티스크린과 최고의 오디오 시스템을 갖춘 음악감상 소극장으로 꾸며져 있었다. 마치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듯 30석 규모 정도의 객석을 갖춘 작은 홀이며 안락한 의자에 앉으면 음악공연 실황을 30분 동안 상영해준다. 내가 본 공연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음반이 팔린 안드레아 보첼리와 사라 브라이트만이 듀엣으로 부른 “Time to say goodbye” 공연 실황과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수준 높은 오케스트라 공연이었는데 그야말로 미국에 살고 있는 나도 듣기 힘든 최첨단 오디오 시스템과 스크린으로 수준높은 공연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음악센터 2층에 올라가면 넓은 공간에 많은 여성 근로자들이 선채로 ‘하나전자합영회사’에서 추진하는 DVD 플레이어기기를 생산하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공장장의 설명에 의하면 하나전자합영회사의 설립은 유럽계 투자회사인 피닉스 커머셜 벤처스(P.C.B)라는 기업이 주도했다고 한다. 지난 2003년에 북한의 문화성과 P.C.B측이 5대 5의 지분으로 합작해서 국내 내수용 DVD 플레이어 생산업체를 설립했고 지금은 평양 시내에 최신 레스토랑과 대규모 레저시설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고도 한다. 요즘 북한 주민들은 드라마나 영화는 물론 중국과 동구권 등의 각종 드라마와 영화를 DVD로 시청하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어났기 때문에 이곳에서 생산된 기기들이 주민들에게 DVD 보급과 상용화를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보여서 희망적으로 보였다.

김정일위원장의 병환과 운명에 관한 해설사의 증언

음악정보센터에 도착하자 3명의 여성들로 구성된 해설사와 안내원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화사한 비취색 조선옷(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미혼의 담당 해설사는 헤드셋을 끼고 어깨에는 메가폰을 멘 채 우리일행을 인솔하며 센터 내부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소상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 도중에 과거 김정일 위원장이 이곳을 참관했다는 언급을 하더니 순간 두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며 울먹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김 위원장을 회상하며 얼마나 서글프게 울던지 쳐다보는 내가 민망할 정도였다. 내가 보기에는 해설사의 그 모습이 가식적이거나 인위적으로는 도저히 보여 줄 수 없는 애틋한 슬픔처럼 보였다.

“우리 장군님께서는 2011년 12월 15일, 목요일 오후에 이곳을 현지 지도하셔서 일꾼들과 성원들을 일일이 격려해주시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세심하게 지도해 주시었습니다.

해설사의 설명에 의하면 이날 김 위원장 일행이 이곳에 도착하기 직전에는 ‘광복지구상업중심’에 있는 대형마켓을 방문하여 내부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시찰했고 뒤이어 이곳 하나음악정보센터는 오후 서너시경에 도착했다고 한다. 

“우리 장군님께서는 우리 센터를 찾아주시어 현지 지도하시는 도중에 겹쌓인 피로 때문이신지 갑자기 힘에 겨운신듯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시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셨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으신 상태에서도 몸을 가다듬으시고는 관계자들의 보고를 모두 다 들으셨으며 한참을 의자에 앉아 계시다가 이내 다시 기운을 차리시더니 아래층을 일일이 돌아보셨으며 마지막으로 2층에 있는 생산공장도 직접 올라가셔서 공장 관계자들과 일꾼 성원들을 일일이 격려해 주시며 지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곳을 떠나가시기 전에는 우리 일꾼들과 예술인들과 함께 기념사진 촬영까지 마무리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날이 공식적으로는 생애 마지막 현지시찰이 되신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날이 우리 장군님의 마지막 현지 지도가 되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 장군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것이 저희들은 너무나도 비통하고 원통합니다”

“그러면 그 후 정확히 언제 돌아가신 겁니까? 그냥 알고 계신대로 편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장군님이 그날 그렇게 여기를 떠나가시고 저희는 못내 걱정스런 마음은 품고 있었지만 그날이 마지막 현지 지도가 될 줄은 그 어느 누구도 몰랐습니다. 우리 장군님은 이곳을 떠나신 후 그 다음날(금요일, 16일)에도 열정적으로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토요일(17일)에도 현지 지도를 떠나시다가 겹쌓인 과로로 인해 달리는 열차 안에서 그만 서거하셨습니다. 저희는 월요일(19일)에 출근하여 일을 하던 중에 낮 12시 텔레비죤의 특별 보도를 듣고 장군님의 서거소식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해설사의 설명과 증언은 분명했고 확신에 넘쳤으며 일반 주민들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상식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센터에 근무하는 해설사와 안내원들에게 궁금한 질문들을 거리낌 없이 주고 받았다. 예민한 내용이지만 어차피 내가 먼저 꺼낸 이야기가 아니다보니 질문을 건네기가 매우 편하고 자연스러웠다. 

나는 센터의 모든 참관을 마치고 해설사와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건물 입구로 나가 계단에 섰다. 건물입구 천정을 살펴보니 마침 김정일, 김정은 두 지도자가 이곳을 현지지도했다는 기념 현판 두 개가 나란히 걸려 있었는데 자세히 읽어 보니 두 지도자가 2011년 12월 15일자에 함께 방문한 것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현판은 김정일 위원장의 현지지도에 현재의 김정은 제1위원장도 함께 동행한 것을 두고 각각 두 개의 현판으로 따로 제작한 것이다. 남측의 보수언론들의 왜곡된 주장처럼 북한 당국이 김정일 위원장이 운명한 시각을 은폐하기 위해 현지 지도한 날짜까지 바꿔치기한 것은 전혀 아니다. 북한의 언론과 관리들을 비롯한 일반 주민들이 모두 다 아는 방문 날짜와 기념촬영 시간을 왜곡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날 김정일 위원장의 하나음악정보센터 현지지도에 수행한 인물들을 보면, 당시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김경희, 장성택 부부가 함께 동행했으며 박도춘 군수담당비서, 주규창 노동당 제1부부장, 리재일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권혁봉 노동당 부부장 등이 수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7명의 핵심 수행원들은 김정일 위원장과 별도의 기념촬영은 하지 않았으며 음악정보센터에 소속된 음악 일꾼들과 여성 가수들만 김정일 위원장과 단체 기념촬영을 했다. 

운명 발표 직전 1주일간의 긴박한 일정들

이날 나의 담당 해설사가 구체적으로 증언한 내용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병환상태와 직결되어 운명한 사건과 직접적인 자료가 될 만한 내용들이라고 생각되어졌으며 북한의 일반주민들이 알고 있는 부분이 어디까지인가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운명 직전 1주일간의 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떤 비밀스런 흑막이 도사리고 있을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급박하게 돌아간 것을 볼 수가 있다. 

북한 정부가 김정일 위원장의 유고에 대한 공식발표를 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 오히려 비교되며 김 위원장의 죽음보다 더 흑막에 가려 있었다는 것은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사실들이다. 아래에 언급된 김 위원장의 사인에 대한 의학적 발표문을 보면 그가 평소에 앓고 있던 개인적인 질병들이 모두 적나라하게 나열되어 있고 직접적인 절명 원인도 숨김없이 매우 투명하게 공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운명하던 해인 2011년 한해에만 무려 143차례의 고강도 현장지도를 강행군했으며 특히 운명하기 3개월 전인 2011년 9월 이후에는 몸은 야위고 움직임이 불편했지만 매우 활발한 현지 시찰을 펼쳤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병세가 매우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후계자인 김정은 부위원장과 함께 동행하면서 한쪽 팔에는 늘 장갑을 끼거나 아니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상태에서 2011년 한해에만 16차례나 군부대를 함께 시찰했으며 월별로는 7월에 2회, 9월에 1회, 10월에 3회, 11월에 7회, 12월에 2회였다. 이는 건강악화설이 불거진 9월 이후에 오히려 현지시찰이 집중됐기 때문에 김 위원장의 갑각스런 운명소식은 북한 주민들에게 크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으며 아울러 한국 정부와 정보 당국자, 국방 당국자들도 전혀 예기치 못한 사태에 매우 당황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일 위원장이 운명하기 전 1주일간의 공개적인 활동과 행적을 북한의 대표적인 언론매체인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TV)의 당시 보도 자료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도록 하자. 12월 10일(토)에는 조선인민군 제324 대연합부대의 예술선전대 공연관람을 했으며 11일(일)에는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하루에만 2.8비날론연합기업소 급수침전지를 필두로 해서 룡성기계연합기업소 분공장, 신흥산화학공장, 함흥편직공장, 흥남구두공장, 성천강수출품출하사업소, 함흥시 회상지구에 새로 건설된 남새온실(채소농장 온실) 등 함흥시 일대 지역의 7개 생산공장과 농장들을 두루 다니며 현지지도를 강행군 했다. 

14일(수)에는 평양시 방어사령부에 해당하는 조선인민군 제966 대연합부대 화력타격훈련을 후계자인 김정은 부위원장과 이영호, 김경옥, 김원홍, 박재경, 현철해 이상 6명을 대동하고 현지지도를 했다. 그리고 15일(목)에는 중국식 표현인 ‘광복지구상업중심’의 대형마트를 방문해서 1, 2, 3층으로 이루어진 매장을 직접 도보로 걸어다니며 두루 시찰하며 상품의 가짓수와 진열상태, 판매계획에 대해 구체적으로 점검하는 등 왕성한 현지지도를 했고 그날 곧바로 통일거리에 있는 하나음악정보센터로 이동하여 현지지도를 했다. 이어서 16일(금)에는 조선중앙통신이 “양력설을 맞이하는 평양시민들에게 청어와 명태를 공급할 데 대한 문제를 요해하고 결론을 준 문건에 수표를 했다”고 보도한 것으로 보아 이날도 어김없이 평소처럼 공개적인 업무를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17일(토)에는 아침 일찍 현지시찰을 가던 중 달리는 열차 안에서 갑자기 심근경색과 심장박동 이상증세를 보여 담당 의료진들이 특별 열차 내에 갖춰진 첨단 의료시설들을 활용하며 긴급히 응급치료를 시도했으나 마침내 오전 8시 30분에 운명했다. 현지지도 장소가 구체적으로 어딘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출발준비를 감안할 때 오전 7시 혹은 새벽시간에 현지로 향하는 열차가 출발했으며 이미 한참을 달리는 도중에 그같이 임종을 맞이한 것으로 추정한다. 

18일(일요일)에는 최고지도자의 전용병원인 봉화진료소 담당 의료진들과 책임 주치의들의 주도하에 가족들과 특별 고위층들 입회하에 김 위원장의 시신을 대상으로 병리학적 해부검사를 실시하여 사인에 대해 인민들에게 발표할 의학적인 최종 결론을 내렸다. 

한국의 일부 보수 언론들이 ‘김 위원장은 희천발전소에 문제가 생겼다는 보고를 받고 아침 일찍 현지를 향해 급히 떠나다가 부실공사 문제 때문에 격노하던 중에 쓰러졌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했으나 북측의 공식 자료 어디에도 희천발전소로 향했다는 언급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김 위원장이 2009년부터 운명 이전까지 희천발전소를 8차례나 현지 지도를 하며 발전소의 완공에 많은 애정을 쏟은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을 만한 자료는 북한의 2011년 12월 22일자 노동신문 기사에서 김 위원장의 마지막 현지지도를 회고하며 “또다시 조국의 북변(北邊)으로 향한 열차에 몸을 실으신 장군님”이라는 내용을 언급함으로써 ‘북변’이 희천발전소가 위치한 자강도나 양강도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측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근거없이 왜곡된 추측성 보도들은 통일지향적인 남북관계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한국의 일부 언론들은 인지해야 한다.

19일(월)이 되자 북한의 주요 3대 방송매체인 조선중앙TV, 조선중앙방송, 평양방송 등은 특별방송을 연속으로 예고했으며 특히 조선중앙TV에서는 오전 10시에 ‘정오 특별방송’이 있을 것임을 예고한 뒤로 10시 23분과 10시 30분에도 연달아 3회에 걸쳐 예고했다. 원래 조선중앙TV는 평일에는 오후 5시부터 방송을 시작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이날은 오전 9시부터 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했으며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오전 10시 뉴스도 생략을 하고 예고방송만 내보냈다. 

이미 예고된 대로 19일(월) 낮 12시 정각(정오)이 되자 비로소 김 위원장이 운명한지 51시간만에 공식적으로 발표하게 된 것이다. 조선중앙TV는 이춘희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운명 소식을 17분간 다루면서 특별 보도를 내보냈으며 곧이어 김 위원장의 사인에 대한 의문점을 풀어줄 ‘질병과 서거원인에 대한 의학적 결론서’라는 제목의 특별방송과 부고소식을 남자 아나운서를 통해 연이어 내보냈다. 

최초의 공식발표는 남녀 아나운서에 의해 두 번에 걸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2월 17일(토), 현지시찰을 위해 달리던 열차 안에서 오전 8시 30분에 급성 심장병으로 순직했고 국영방송인 조선중앙TV에서는 운명 첫 소식과 사인에 대한 내용을 발표하면서 국가장의의원회 조직 등 부고를 알리는 특별방송을 두 차례나 공식적으로 진행했다. 첫 번 방송은 19일 낮 12시 정각에 17분간 진행된 이춘희 아나운서의 특별 방송이었다.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함>

….(중략)…..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주체 100, 2011년 12월 17일, 8시 30분에 현지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셨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알림……..(중략)…….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선노동당 중앙 군사위원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주체 100, 2011년 12월 17일(이춘희 아나운서의 클로징 멘트)-

이춘희 아나운서는 시종 울먹이는 어조로 원고를 읽어 내려가며 방송을 진행했으며 연이어 두 번째 방송은 남자 아나운서가 바통을 이어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질병과 서거 원인에 대한 의학적 결론서’라는 제목의 특별 방송을 연이어 진행했다. 이때 남자아나운서의 클로징 멘트는 “주체 100, 2011년 12월 18일”이라고 언급했다. 

“<조선노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의 질병과 서거 원인에 대한 의학적 결론서>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심장 및 내혈관 질병으로 오랜 기간 시련을 받아 오시었다. 강성국가 건설을 위한 초강도 강행군의 나날에 겹쌓인 정신 육체적 과로로 인하여 주체 100년, 2011년 12월 17일, 달리는 야전 열차안에서 중증 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한 심장성 쇼크가 합병되었다. 발병 즉시 모든 구급치료 대책을 세웠으나 주체 100, 2011년 12월 17일, 8시 30분에 서거하시었다. 주체 100, 2011년 12월 18일에 진행된 병리해부 검사에서는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정되었다” 

-주체 100, 2011년 12월 18일(남자 아나운서의 크로징 멘트)-

이때 남자 아나운서의 발표가 끝난 이후에는 계속해서 추모음악과 장송곡을 내보냈다. 의학적 결론서를 요약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의학적 결론서 요약>

1. 김정일 위원장은 ‘심장 및 뇌혈관’ 질병으로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아왔다. 강성국가 건

설을 위한 초강도 강행군의 나날에 겹쌓인 정신적 육체적 과로로 하여 2011년 12월 17일

달리는 야전 열차안에서 ‘중증 급성 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한 ‘심장성 쇼크’가 합병되었다.

2. 발병즉시 모든 구급치료 대책을 세웠으나 2011년 12월 17일 8시 30분에 운명하였다. 

3. 2011년 12월 18일에 진행된 병리 해부검사에서는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정(결정)되었다.

운명 당시의 전용열차 집무실을 참관하다

나는 지난 2014년 봄에 금수산태양궁전에 별도로 마련된 김정일 위원장이 생전시 이용했던 전용열차 집무실을 참관한 적이 있었다. 우리 학술원의 차원에서 <북한의 국립묘지에서 역사의 대화를 시작하다>라는 남북분단 70년행사 프로젝트를 위해 방북할 때마다 틈틈이 평양시에 소재한 북한의 5대 국립묘지를 찾아가서 역사의 화해를 시도하는 작업을 했다. 우선 특급 국립묘지로 분류된 평양시 대성구역 미암동의 금수산태양궁전을 비롯해서 제1순위 국립묘지인 대성산 혁명열사릉과 2순위인 신미리 애국열사릉을 방문했다. 또한 평양시 연못동 조국해방전쟁 참전열사릉, 용궁동 재북인사묘, 용산리 해외동포 애국자묘 등을 방문하여 화해와 상생을 통해 남북이 공유할 수 있는 역사의 공통분모와 민족적 가치관을 찾는 작업을 시도한 것이다. 

태양궁전 내부는 워낙 면적이 거대하고 넓으면서 복잡하여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본관 1층은 대형로비가 있고 온통 대리석으로 내장되어 있어 고풍스런 분위기를 보였으며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 있고 각종 사무실과 편의시설이 있었다. 본관과 연결된 별관에는 김일성 주석이 마지막까지 사용했다는 사무용 집기와 전용열차 1량과 외제승용차 등을 전시한 홀이 있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 사후에는 부친인 김일성 주석과 동일하게 생존시 사용하던 사무용 집기, 전용열차, 전용보트는 물론 평소 애용하던 벤츠승용차까지 진열되어 있었다. 

김 위원장이 생전에 1,647회에 걸쳐 이용했다는 열차 집무실은 해당 전용칸 1량만 전시되어 있었으며 열차 내부는 당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듯 보존되어 있었다. 외부는 전체가 녹색으로 도색되었고 열차 중하단부에는 노란색 띠가 열차 둘레를 한 바퀴 돌며 칠해져있었다. 특별 전용 열차칸 내부에 비치된 집무실 책상 뒤에는 대형 벽걸이 TV와 접견자들이 앉는 누런 소파들이 서로 마주보고 길게 비치되어 집무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특히 집무 책상 밑에는 발맛사지 기계가 눈에 띄었고 장화스타일의 구두도 한 켤레 놓여져 있었다. 

또한 생존시 국내외 언론에 보도된 열차 집무실 책상 위에 있던 미국 애플사의 로고가 선명한 노트북 컴퓨터는 보이지 않았고 다른 노트북 한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책상위에는 결재 서류들이 가지런히 널려 있었으며 결재 서류에는 김 위원장이 빨간색 펜으로 친필 서명하여 결재한 것까지도 열차 창문 밖에서도 뚜렷하게 보였다. 이곳에는 특별히 안내원이나 해설사가 없었고 침묵 속에 조용히 참관하는 것만 허락이 되었기에 누구에게도 궁금한 것을 질문할 수 없었다.

다만 동행한 인솔자와 안내원 그리고 해외동포로 보이는 단체 일행들과 북한 관리들로 보이는 일행들이 간혹 열차 집무실을 바라보며 흐느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태양궁전 내부를 빠져나가면서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안내원과 인솔자들에게 궁금한 내용들을 질문하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간단히 답변해주었다.

“그때 당시 우리 위대한 장군님께서 인민생활 향상을 위하여 현지지도의 길에서, 더욱이 달리는 야전 렬차안에서 과로로 순직하셨다는 비통한 소식은 아직도 온 나라 인민들이 잊지 않고 회상하고 있으며 안타까운 저희들은 못내 장군님의 열차를 보면서라도 위안을 얻고 있습니다. 방금전에 보신 열차는 장군님의 고귀한 한 생애을 싣고 강행군 궤도를 39만 8000km를 쏜살같이 달려왔던 야전열차이며 우리 인민들을 위해 불철주야 일하셨다는 증거물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처럼 지병인 심장병으로  69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했다. 1974년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공식화된 지 37년만이었으며 부친인 김주석이 운명한 직후 3년 탈상을 마치고 1998년이 되어 곧바로 국방위원장으로 추대되며 자신의 선군정치시대를 연지 13년만이었다. 자신이 강성대국 원년으로 선포했던 2012년을 불과 12일을 눈앞에 두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마침 북한은 지난 2014년 12월 17일, 에볼라 바이러스방역 문제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주기행사를 내부적으로 비교적 조용히 마쳤다. 이날 낮 12시 정각이 되자 북한의 전체 인민들은 잠시 일손을 놓고 평양의 금수산태양궁전을 향해 3분간 추도묵념을 했으며 전국의 기관차들과 선박들, 자동차들이 고동소리와 크락션 소리를 울리며 추도하는 것으로 3년 탈상을 마쳤다고 한다. 

그러나 김위원장의 사후 지금까지 3년 동안 한국의 일부 보수언론들은 김위원장의 죽음에 얽힌 왜곡보도를 무수히 생산해냈고 후계자인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보도들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북한에 대해서는 어떤 내용을 보도해도 언론중재위를 통한 정정 요청이나 소송이 들어 올 우려가 없다고 판단해서 마음 놓고 그런 행태를 보여주는 것 같다. 언론인들이 북한관련 뉴스에 접근하는 방식을 보면 매우 무책임하며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소위 ‘아니면 말고’식의 보도를 생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보다는 오보라도 상관없다는 잘못된 태도가 대부분이었으며 일부 보수언론들의 북한관련 보도는 자신들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가공하고 각색하여 왜곡한 흔적들이 뚜렷하며 반공이데올로기와 반북의식에 찌들어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국 국민들에게 북한이라는 국가와 그 나라의 지도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키고 체제를 잘못 판단하도록 만들면 오판을 하게 되고 오판은 자칫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중대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왜곡보도는 하루 빨리 시정돼야 한다. 

동족의 관점에서 북한을 바라본다면 정확하게 보도해야 하며 아울러 적대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더더욱 객관적이고 정확한 언론 보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북한의 체제 구조로 볼 때 북한의 최고통수권자에 관한 정확한 보도야말로 민족화합과 통일의 기초가 되는 전략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사실과 진실을 보도해야 하는 언론의 의무와 윤리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한국의 일부 보수 언론들의 북한관련 보도의 정확성과 객관성은 모두의 국익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이번 하나음악정보센터 방문을 통해서 조심스럽게 해 보았다.

1 COMMENT

  1. 자본주의국가들은 진짜 점점 피폐해져가고있는데 전세계 유일의 공산사회주의국가인 북녘땅은 소박하면서도 정갈하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아름다운곳이다! 남녘땅이 어서빨리 개방해야 남북이 하나가 될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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