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Kang 방북기24]최고인민회의대의원이 된 리화순 직포공의 이야기

재미동포 CJ Kang께서 2014년 9월 3~11일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NK투데이는 필자와 협의 아래 방북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의 승인 아래 원문의 표현 가운데 일부를 한국 실정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외부 기고는 본사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내가 평양방직공장을 방문하면서 이곳에 대하여 좀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은 이곳이 북부조국 인민의 의복문제를 해결하는 생산공장이기도 하지만 특히 미주에서 1992년에 발행된 홍정자 여사의 ‘내가 만난 북녘사람들’책에 수록된 리화순 직포공의 이야기를 기억하였기 때문이었다. 북조선의 최고명예훈장인 ‘노력영웅’이자 남한의 국회의원 격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된 리화순 직포공이 바로 이곳 평양방직공장에서 그 전설적인 생애를 산 것이다. 

홍정자 여사는 나의 가장 존경하는 통일운동의 스승, 고 홍동근 목사님 사모님이시다. 2001년 돌아가실 때까지 온 생을 통일운동에 헌신한 홍동근 목사님에 대해서는 이후에 방문기에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홍정자 여사는 내가 작년 이맘때 로스앤젤레스에 방문하였다가 옛날 홍동근 목사님과 함께 뵌지 28년 만에 뵙게 되었다. 

홍 목사님께서 내게 통일에 관한 책들과 편지를 자주 보내주셨고 나 또한 90년대까지 내내 서신으로 연락을 하였으니 홍정자 여사 또한 나를 잊지는 않으셨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노길남 박사님 통해서 연락이 닿자 나를 너무도 잘 기억해주셨다. 그렇게 작년에 아주 반갑게 서로 만난 이후로 서로 안부를 물으며 연락을 끊지 않고 지내고 있다. 

근래에 내가 북을 다녀온 후 홍정자 여사께 연락하여 방북기를 쓰고 있다고 하자 고마워하면서도 한편으로 나를 너무도 사랑하는 나머지 그토록 어려운 길을 이제 내가 걷게 되었다고 하면서 위로해주셨다. 홍 목사님과 당신이 너무도 험난한 통일운동의 길을 걸어왔기에 내가 피할 수만 있으면 그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란다는 나를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해주신 그 깊은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지 못하랴. 

여기저기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시절 또한 통일로 가는 분위기라면 굳이 내가 이 길을 걸을 이유가 없다. 정말 10년 전처럼 내가 참여하지 않아도 남북이 서로 오고 가면서 정상회담을 하는 그런 시절이면 아무 걱정없이 내 생업에만 집중해도 좋겠지만 지금은 남과 북이 다시 멀어져버렸고 남의 민중은 통일에 대한 꿈마저 잃어버린 시절이 되어버렸으니 그걸 알면서 어떻게 이 길을 회피할 수 있을까. 

내가 학문을 연구해온 학자도 아니고 진보적인 신앙의 목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튼튼하게 굴러가는 사업체를 가진 사람도 아닌, 그야말로 살기 어려워 오래 전에 미국으로 온 가족이 이민을 와서는 온갖 밑바닥 일부터 다해보며 살아왔고, 아직도 북의 어떤 인민의 표현처럼 ‘조마조마하게 마음 조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민초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통일문제의 선각자로서 이 일을 회피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통일운동가들 가운데 홍정자 여사만큼 북부조국의 수많은 인민들을 여러가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수차례 방문하여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깊은 내면을 우리들에게 알려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두 권의 저서 ‘내가 만난 북녘 사람들’과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를 통하여 독자들은 북의 인민들이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는지, 즉 그들의 삶의 목적에 공감하게 된다. 이웃이 서로 사랑하되 내 가족보다 이웃을 더욱 사랑하고, 내가 속한 사회와 나라를 내 몸보다 더 사랑하는 그 거룩하기까지 한 그들의 정신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런 북부조국의 인민들을 그 책을 통하여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되면서 나 또한 깊은 감명을 받았고, 동족인 그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북부조국을 깊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오늘의 나의 방문기는 홍정자 여사가 ‘내가 만난 북녘사람들’ 책에서 평양방직공장에서 리화순 씨를 만나 인터뷰한 이야기로 대신 하기로 하자. 홍정자 여사는 공장 접대실에서 리화순 씨를 만나 자세하게 인터뷰를 하였는데 그 내용은 너무도 진한 감동을 주는 글이다. 홍정자 여사의 수준 높은 문장력으로 아주 자세하게 묘사된 그 이야기를 내가 간략하게 그 줄거리만 여기 옮기기는 하는데 그 감동을 이렇게 줄여서는 제대로 전할 길이 없어 너무도 아쉽다.

리화순 씨는 서울 인근에서 태어났는데 원래 이름은 이화자였다. 충청도로 이사를 갔다가 아버지가 빨치산으로 산으로 들어갔는데 7살 때 아버지는 총에 맞고 죽었다고 경찰이 알려오면서 협박하여 시체마저 찾지 못하도록 했다. 이후에 제대로 옷도 걸치지 못하고 굶주리며 살아가는 동안 너무도 고생이 되어 어머니와 이별하고 서울로 팔려가 아이를 봐주고 청소를 하며 겨우 허기를 채우며 살게 되는데 그런 동안에 주인을 잘못 만나 많이도 맞으면서 심한 고생을 하였다. 

그러다가 9살 때 전쟁이 터졌고 주인은 따로 피난을 가서 혼자가 되어 떠도는 동안 폭격을 맞고 시체들 사이에서 울고 있는데 한 무리 인민군대 아저씨들이 나타났다. 옷이 헤어져 살이 드러나는 것을 배낭에서 끄집어낸 군복 저고리를 입히고 성큼 안아서 배낭 위에 업고는 후퇴하여 평양까지 간 것이다. 평양 시내의 애육원에 데려다주고는 평양에 왔으니 이제 걱정없이 잘 있으라하고 인민군인들은 같이 가겠다고 울부짖는 리화순을 두고 떠났다.

바로 그날 밤, 전쟁으로 고아들을 일단 안전하게 중국에 유학보내기로 한 결정에 따라 중국으로 간다는 웅성거림을 듣고는 리화순은 중국에 간다는 것이 겁난데다 어머니를 만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애육원을 도망쳐 나왔다. 다시 이집 저집 다니며 아이 봐주고 나무해주고 밥을 먹으며 지내는 동안 평양대폭격을 겪고 피신하던 중 김 주석의 교시에 따라 고아들을 모두 ‘평남신의주초등학원’에 보내게 되는데 거기 끼여져 남신의주로 갔다고 한다. 거기서 난생 처음으로 제 이름자 쓰는 것을 배우고 책읽기를 배웠고 참으로 오랜만에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리 걱정을 않게 되어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정전이 되고 온 나라가 재건사업을 시작했을 때 리화순은 평양방직공장 소녀공으로 가겠다고 지원하였다. 무엇보다 헐벗고 춥게 살아왔던 그녀는 스스로 베를 짜서 마음껏 옷을 입고 살아보고픈 생각에서였다. 순이의 직공 생활은 너무도 행복했다고 한다. 처음 1년간 기술공부를 마치고 2대의 직포기를 맡아 짜기 시작했고, ‘혁신언니’ ‘노력언니’들이 친절하게 기술을 가르쳐주었다. 남들보다 열심히 쉬지않고 일한 결과 처음 2대에서 9대, 16대 그리고 마침내 48대의 직포기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것은 1964년 최고의 기록으로 그해 연간 생산계획을 김주석의 생신인 4월 15일 이전에 이미 초과달성한 것이다. 

공장에서 ‘대기대공’으로 추대된 순이는 그해 10월 25일에 공장을 찾은 김주석을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나는 동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기쁩니다”라고 직포공들에게 둘러싸여 말하는 김주석에게 공장 지배인이 순이가 혼자서 48대를 담당하고 있다고 말하자 김주석이 “조그만 동무가 일잘하누만, 용기 잃지 말고 더 잘하라구” 하시면서 등을 토닥여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함께 동행했던 외국 귀빈들에게 ‘모범노동자’로 소개하며 “어디 아픈 데는 없는가, 일이 너무 힘들지 않는가”하고 물으며 공장의 근로환경과 노동자들의 월동준비에 대해서 염려하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그동안 수없이 부자들에게 매를 맞고 굶주리며 헐벗고 살아오면서 등에 업은 아이의 오줌내가 가실 날 없었던 순이의 등을 토닥여준 김주석을 생각하며 순이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자신에게 새 학생복을 입혀주고 글눈을 뜨게하고 이렇게 노동자로서 보람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한 그의 은덕을 보답하기 위하여 더욱 열심히 일하자는 각오를 하였다.

1968년 5월 9일, 평양대극장에서 있은 대회에서 김 주석은 리화순을 옆자리에 앉게 하고는 지금은 72대의 직기를 본다고 하자 “흠, 그러면 매일 180리를 걸어야 한단 말이지. 그러면 1년을 300일로 치더라도 6만리를 걷는 것이니 이건 우리가 항일유격투쟁을 해봤지만 그렇게 걷는 것이 간단치 않습니다. 이것은 혁명입니다”하며 감탄하고 치하해주었다고 한다. 뒤에 알려진 사실로 김 주석은 순이가 그렇게 달려도 건강에 지장이 없는지 의사에게 문의했고, 아무일 없다는 답변을 들은 후에야 안심하셨다고 한다.

그날 리화순은 김주석이 대회장에서 자신을 치하하며 당중앙위원회에서 이번에 ‘노력영웅’ 칭호를 수여하기로 했다며 “여러분, 리화순 동무가 한해에 짜내는 옷감이 백만메터입니다. 이 동무야말로 참다운 천리마 기수이며 영웅입니다. 누구나 옷을 입을 땐 우리 리화순 동무를 생각하시요”라고 말한 후 덧붙여서 “화순동무, 이젠 공장에 돌아가 후비를 서너 명 더 양성하고 학교에 가서 공부도 하고 시집도 가오” 하였고, 수줍어 얼굴만 붉힌 순이에게 이후에 아무래도 인민군 배낭에 업혀서 왔으니 인민군 신랑감에게 시집가도록 마음을 써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순이가 인민군 가운데 준수한 청년에게 시집가는 날 김주석께선 신부의 꽃다홍 비단옷감까지 손수 골라서 보내주었다고 한다.

김주석과 당의 순이에 대한 배려는 그것뿐만 아니라 속성으로 중고등과정을 밟게 하였고, 이후 순이는 조선인민경제대학 행정과에 입학하여 4년간의 대학과정을 기어이 마쳤다. 노력영웅 리화순씨는 1977년에 당비서로 임명되며 같은 해 조선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국회의원)으로 피택된다. 또한 1982년 김주석 탄생 70돌에 김일성 훈장을 수여받았다.

다음은 1990년 경에 홍정자 여사가 리화순 씨와의 인터뷰에서 들은 대로 옮긴 리화순 씨의 말이다. “남반부 인민들이 TV 방송 보는 대로 반공사상으로 무장돼 있으니 우리 공화국 조국의 현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내 자신을 본보기로 살아온 체험을 알려주고 또 우리 인민이 얼마나 통일된 해방조국을 갈망하는가를 만나서 아는 대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림수경 대표가 13차 축전에 참석해서 우리 인민들의 사랑과 환영을 많이 받았는데 자기 결심대로 38선을 디디고간 그 통일의 애국적 일꾼을 두손에다 철쇠를 채워 감옥에 집어넣었으니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림양은 북조선에 와서 무슨 반동사상을 말한 것도 없고 오직 세계의 청년대표들, 세계 기자들 보는 앞에서 다시 전쟁이 없이 통일된 하나의 조선을 이루자고 간절히 말하고 전한 것밖에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반민족분자처럼 죄인으로 잡아넣을 수 있습니까…(중략)…그러나 반드시 나라는 통일되고 정의를 믿는 사람들이 승리할 겁니다. 북남 없이 한민족 한국토가 통일이 되어 다같이 잘살 수 있도록 우선 내 자신이 만 명 넘는 이 공장 노동자들과 더 훌륭한 노력영웅으로 살 일념입니다.”

(이상 홍정자 여사의 저서 ‘내가 만난 북녘 사람들’ 가운데 ‘노력영웅 이화순’에서 발췌함)

내가 이번에 평양방직공장을 방문하면서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었던 숨은영웅 리명순 씨에게 리화순 여사가 아직도 살아계신지 물었더니 2000년도까지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은퇴하여 연로보장으로 지내셨는데 애석하게도 2001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노력영웅 이화순’씨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가 북부조국을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기 옮겼다.

CJ Kang

미국 시애틀에서 <사람사는 세상 시애틀 한마당>(hanseattle.com)을 공동운영하고 있으며 <사람사는 세상을 위한 시애틀 모임> 대표를 하다가 현재 고문으로 있다. 또 유권자민주연대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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