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정상회담 특집3]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끈끈한 우정

김정은 제1위원장이 5월 9일 러시아의 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로 밝히면서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북러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에 북한-러시아, 나아가 북한-소련 관계의 역사를 돌아보고 최근 북러 관계 변화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집중 분석해보고자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등장과 북-러 관계의 변화

1994년부터 북-러 관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한국에 경도된 옐친 대통령의 외교노선에 대해 러시아 내부에서는 “균형외교를 할 때에 비해 무엇을 얻었는가?”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게다가 미국을 추종하다 강대국 소련이 후진국 수준으로 추락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반미 입장이 러시아에서 인기를 얻었다. 자연스레 대표적인 반미국가인 북한에 대한 우호적 인식이 확산됐고 정치인들도 여론의 변화에 따르기 시작했다. 특히 하원은 노골적인 친북성향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면 등장은 러시아 내 자성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계기가 되었다. 러시아는 1994년 9월 파노프 외무차관 방북을 계기로 북-러 관계회복에 본격 나섰다. 10월에는 지리놉스키 자민당 당수가 방북했고 이듬해에는 러시아 의회대표단이 방북했다. 

1996년 프리마코프 외무장관 취임 이후 북-러 관계 회복은 더욱 속도를 냈다. 고위급 인사들의 방북이 늘어났고, 6년 동안 중단된 <북-러 경제·과학·기술 공동위원회>도 재개됐다. 1999년에는 <북-러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을 대체하는 <우호·선린·협력조약>을 가조인했다. 양국 관계는 공식적으로 복원되었다. 

1999년 12월 31일 옐친 대통령이 전격 사임했다. 옐친 대통령의 뒤를 이어 등장한 푸틴(Влади́мир Влади́мирович Пу́тин) 대통령은 취임 첫 해에 북한을 방문했고 이 때부터 북-러 관계는 급격히 발전하게 된다. 

푸틴 대통령의 등장과 연이은 정상회담

물론 푸틴 대통령은 옐친 대통령의 후계자다. 옐친이 대통령 시기 푸틴 대통령을 총리로 지명했고 이 때문에 북한은 초반에 푸틴 대통령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2000년 2월 이바노프 외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바노프 장관을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나토의 동진정책을 반대하고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 구축을 반대하는 등 미국에 대항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북한은 푸틴 대통령에 대해 옐친 대통령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나토의 동진정책이란 미국이 동유럽 국가들과 소련에서 분리된 독립국가들을 나토에 가입시키려는 움직임을 말한다. 이는 러시아로 통하는 전략요충지를 장악하려는 시도로 러시아의 강한 반발을 불렀다. 미국은 2004년 발트3국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나토에 가입시켰고, 이후 우크라이나를 가입시키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다 결국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5월 “한반도는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러시아의 국익에 포함된다”면서 극동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곧바로 북한에 방북을 제안했고 북한이 이를 수용하자 2개월 만인 7월 북한을 전격 방문했다. 

푸틴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러시아를 압박하는 미국에 대항하고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인 푸틴 대통령은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가 몰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에 휘둘리지 않는 강력한 러시아를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굳혔다. 이를 위해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회복해야 했으며 반미 국가인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게 급선무였다. 

북한 역시 소련과 동구권 몰락 이후 미국의 경제봉쇄로 고립되었고 거듭된 자연재해로 나라 전체가 피폐해졌기에 대외 관계를 확대하고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러시아와 관계를 빠르게 개선해야 하였다. 

2000년 7월 소련, 러시아를 통틀어 처음으로 국가 정상이 북한을 방문하면서 북-러 관계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양국은 군사협력 강화, 국제 패권 반대, 주권 존중, 한반도의 자주적 통일, 양국 우호협력 증진 등 11개 항이 담긴 <북-러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이 공동선언 내용은 ▲북-러 관계 복원과 ▲미국 중심 세계 질서 반대로 압축할 수 있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국제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완전한 현대인으로 보였으며, 그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주권국가의 이해와 국방문제 등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해박한 인물”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듬해인 2001년 여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무려 23박 24일의 일정으로 러시아를 방문했다. 한 달에 가까운 외국 방문은 그만큼 북한 정치가 안정되어 있음을 과시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나온 <북-러 모스크바 선언>에는 상호존중과 호혜평등의 원칙 아래 정의로운 새세계 건설에 이바지하며, 탄도탄요격미사일(ABM)조약을 유지하고, 양국관계를 더욱 발전시키는 등의 8개항이 담겨 있었다. 특히 ▲시베리아횡단철도(TSR)-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 ▲한반도 통일문제를 조선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해결 ▲주한미군 철수 등 중요하고 민감한 내용들도 포함되었다. 

이듬해인 2002년 8월에도 양국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2003년 북한은 6자 회담에 러시아의 참가를 요구했고 러시아는 본격적으로 한반도 문제에서 발언권을 갖게 되었다. 러시아는 6자회담은 물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여러 자리에서 북한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다. 

심지어 러시아는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에서 동결된 북한 자금을 북한에 전달하는 은행도 제공했다. BDA 사태는 미국이 북한 돈세탁 계좌가 있다면서 BDA 북한 계좌를 동결한 사건이다. 북-미 사이에 치열한 격돌이 펼쳐진 후 2007년에야 미국이 동결한 북한 자금을 돌려주기로 하였으나 어느 은행도 이 자금을 중계하려 하지 않았다. 미국의 금융제재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 때 러시아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또한 2010년 11월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한 것에 대응해 12월 한국군이 포격 훈련을 추진하자 러시아는 러시아 주재 한국 대사와 미국 대사를 불러 훈련 중지를 촉구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를 소집하기도 했다. 당시 채택은 안 됐지만 러시아가 준비한 성명 초안에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비난하는 문구가 없어 한국 외교 관계자들이 불만을 터뜨렸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는 연평도 포격 직후에는 북한을 비난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한반도에 긴장을 격화시키는 모든 행위를 반대한다는 일관된 모습을 보인 셈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끈끈한 우정

많은 이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에 대해 비슷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두 정상은 외교적, 실무적 관계를 넘어선 모습을 보였다. 북-러 관계가 급진전할 수 있는 배경일 것이다. 

2001년 북-러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수행한 풀리코프스키 대통령 전권대표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만일 나를 외교적으로 대하면 나도 외교관이 됩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내게 마음을 열고 대했기에 나 또한 그에게 내 마음을 열어 보인 것이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푸틴 대통령도 “나는 <파트너>가 되고 싶지 않다. 친구 사이에는 <파트너> 운운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옵샤니코프 러시아 대통령악단 수석지휘자는 2001년 여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기념해 <우리 친선 영원하리>라는 노래를 작곡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2년 러시아를 방문한 후 러시아정교회 교회인 정백사원을 평양에 건립하였다. 정백사원을 유지하기 위해 북한인 4명을 모스크바 정교회 신학교에 파견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2005년 5월 각국 정상 가운데 유일하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2차 세계대전 승전 60주년 기념 메달을 수여했다. 김일성 주석을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2008년 메드베데프(Дми́трий Анато́льевич Медве́де)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도 북-러 관계는 흔들림 없이 지속적으로 발전하였다. 2011년 8월에는 울란우데 외곽의 제11공수타격여단 영내에서 북-러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6자회담 재개문제, 북한을 경유하는 한-러 가스관 연결 문제, 북한이 구 소련에 진 채무 문제 등이 논의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기 북-러 관계를 종합하면 ▲고르바초프 시기 무너진 양국 관계를 급격히 회복했으며 ▲미국의 압박과 봉쇄에 대항하기 위한 공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남북한에 대한 등거리 외교를 유지했고 북한 역시 중국과의 외교관계에 더 비중을 두었고 ▲구 러시아 시기 북한의 채무 문제가 풀리지 않아 경제교류를 전성기 시기만큼 회복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북한이 김정은 제1위원장 시기로 넘어가면서 북-러 관계는 더욱 심화된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계속)

* 참고자료

박종수, ≪21세기의 북한과 러시아≫, 오름, 2011.

풀리코프스키/성종환 옮김, ≪동방특급열차-김정일과 함께한 24일간의 러시아 여행≫, 중심, 2003.

문경환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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