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전봉준투쟁단이 온다

2008년 즈음, 농업관련 토론회에서 한 토론자가 ‘농민들이 파업을 해야 한다. 한 해 농사를 짓지 말고 국민들이 굶주려봐야 농업, 농민 귀한 걸 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사실 발언만으로는 농업·농민의 가치를 역설하는 좋은 내용이었다. 그 발언은 박수를 받았을까? 천만에. 그 박수는 야유를 받았다. 그 자리에 있던 농민들이 순간 웅성웅성 하더니 그 토론자는 졸지에 나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아무리 좋은 뜻이라도 국민들의 먹거리를 볼모삼아 싸우면 안 된다는 것이 농민들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런 농민들의 마음을 볼모삼아 수십 년 동안 농업을 희생하여 기업을 살리는 정책을 강요해온 것은 오히려 이 땅의 정권들이었다. 그 강요는 GATT에서 시작해서 우루과이라운드, WTO, 온갖 FTA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어왔다.
2015년, 정부는 결국 농업에서 마지막 남은 쌀까지 개방했다. 농민들은 일찌감치 11월 14일을 농민대회날로 잡았다. 그 날이 특별한 날이어서가 아니다. 아무리 중요한 싸움도 농사를 몽땅 포기하고 나설 수 없기에 가을걷이가 끝나는 시기에 맞춰 날을 잡은 것이다. 그러나 2015년은 농민들에게만 가혹한 것이 아니었다. 노동법 개악 등으로 노동자들에게도 가혹했고, 미래의 노동자가 될 젊은이들에게도 가혹했으며,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도 가혹했다. 소수자들의 인권도 무시했고 학생들의 교육권까지 침해했다. 결국 11월 14일은 농민대회가 아니라 민중총궐기가 되었고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요구를 외치며 광화문에 모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 칠순의 어르신이 목숨을 잃었다. 젊어서는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하여, 그 후 반평생을 이 땅의 안전한 먹거리를 위하여 헌신하신 분이었다.
11월 5일 백남기 어르신의 장례식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그러나 그 아픔은 더 이상 농민들만의 아픔이 아니었다. 쓰러지신 후부터 돌아가시기까지, 돌아가신 후부터 장례식까지, 그 고비마다 농민들만이 아닌 전 국민의 힘으로 모든 사악한 시도들을 물리쳐낼 수 있었다.
11월 26일 10일간의 트랙터와 트럭을 몰고 전국 각지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투쟁을 이끌었던 농민들이 이번 주 8일 평택을 시작으로 10일 민중총궐기를 향해 다시 상경한다. 농민들이 직접 나서서 세상을 바꾸고자했던 120여 년 전 동학의 후예가 되어, 모두가 전봉준이라는 마음으로 모두가 백남기가 되어 서울로 향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상경은 농민들만의 상경이 아닐 것이다. 지난 투쟁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이 경찰에 의해 막혔다는 소식에 먹을 것, 몸 녹일 것들을 들고 밤늦은 시각부터 새벽까지 찾아와서 함께했던 이들이 또다시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이후 우리는 확실히 달라졌다. 더 정확히는 2014년 4월부터였다. 그전에는 노동자, 농민, 빈민, 여성, 청년, 학생 모두가 하나라고 말은 했지만 솔직히 진짜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도 종종 있었다. 1년 반 사이 우리는 20만 명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그 후 6개월 만에 선거에서 지역구도에 흠집을 냈다. 그 후 6개월, 우리는 200만 명 이상이 한 자리에 모였으며 그 몇 배의 사람이 한 마음이 되었다.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우리는 더 이상 그런 나약한 개인이 아니라 똘똘 뭉친 하나의 횃불이 될 준비가 되었다. 이 횃불이 말한다. 박근혜 퇴진만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고. 우리는 공범인 새누리당, 재벌, 국정원을 심판해야 한다고 결의할 정도로 깨었으며,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 그 어떤 정치인도 신뢰하지 않을 것임을 외치고 있다.
그 외침이 전봉준투쟁단과 함께 당당하게 서울로 들어오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힘으로 우리는 일제강점기부터 끊임없이 싸워왔던 친일친미사대매국세력들을 몰아내고 대동단결의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다.
김은진 원광대 로스쿨 교수(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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