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역사의 반복 : 1946년 반탁과 2016년 개헌

광화문 촛불은 개헌 보다 적폐청산을 요구하지만 여야 정치인들이 가리지 않고 개헌을 입에 올리고 있다. 개헌은 정국을 주도하고 싶은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이끌릴 매력 포인트다. 그러나 지금의 개헌논란엔 기득권 세력의 암수가 숨어 있다. 1946년의 찬탁/반탁 대립의 교훈이 그것을 말해준다.
신탁통치 논란
일제가 패망하고 독립을 쟁취한 1945년 당시, 친일파를 제외한 대다수 조선인들은 누구나 새 조국 건설의 염원을 안고 통일자주독립국가 수립을 원했다. 일제강점기 때 권력을 휘둘렀던 친일파 세력들은 하루아침에 매국노가 되어 권력을 잃을 상황에 처하였다.
그러나 우리민족의 자주독립정권 수립 열망은 1946년에 확산된 친탁/반탁 논쟁으로 꼬여버리고 말았다.
친일파들은 미군정과 손잡고 국면전환을 노려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를 조작하였다. <동아일보>는 1945년 12월 27일 신문 1면에 “외상회의에 논의된 조선 독립 문제,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소련의 구실은 삼팔선 분할 점령. 미국은 즉시독립 주장.”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왜곡 보도하였다.
조선에서 40년간 신탁통치를 하자고 주장한 나라는 사실 미국이었다. 미국이 너무 오랜 기간의 신탁통치를 주장하자 소련은 단일정부수립을 이룰 때까지 최소한의 신탁으로 5년간의 신탁통치를 제안하였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이를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독립주장”이라 전면 왜곡하였다.
<동아일보>의 보도가 오보란 것은 1946년 1월에 곧바로 밝혀졌지만 이승만과 친일파 세력들은 오히려 모스크바 3상회의를 인정하는 모든 언행은 곧 외세에 나라를 팔아먹자는 매국행위라고 공격하였다. 이들은 친일파 처단에 앞서 당장 신탁통치에 찬성하는 놈들을 처단하자고 대중을 선동하였다. 친일파들은 찬탁반탁의 소용돌이에서 반탁으로 애국자 행세를 하며 미군정의 적극적 지원을 등에 업고 끝내 이승만 정권을 창출하였다.
백범 김구 선생의 후회
이 국면에서 무분별한 반탁운동에 나선 나머지 역설적으로 친일파가 살아나는데 일조해버린 인물 중에 백범 김구 선생이 있다. 김구 선생은 <동아일보>의 교활한 오보를 액면 그대로 믿은 나머지 “우리가 해외에서 36년 동안 조국 광복을 위해서 기약 없는 독립운동을 했는데, 해방된 조국에 신탁통치가 왠 말이냐?”며 “반탁 독립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라고 하고, “반탁운동은 제2의 독립운동이다.”라며 반탁운동을 무턱대고 받아들였다. 김구 선생은 “탁치 순응자는 반역자로 처단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제시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2월 30일 포고령을 내려 전국민 파업을 지시했다.
김구 선생은 반탁운동으로 해방정국을 주도해 그 힘으로 상해임시정부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승만을 지지하던 미군정의 마음을 꿰뚫지 못한 나머지 너무나 안타깝게도 미군정과 친일파에게 이용당하고 만 것이다. 김구 선생의 반탁운동은 결국 친일파들이 기득권을 회복할 계기가 되었고 조선의 자주독립을 지연시키고 분단정권이 수립되는 거름이 되고 말았다.
훗날 <동아일보>의 보도가 교활한 허위보도임이 판명되자 김구 선생의 입장은 매우 초라해졌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에서는 <동아일보>의 허위기사가 판명되자 “김구는 너무나 체면이 구겨져 이승만의 뒷전에서 놀 수밖에 없게 되어 있었다.”라고 하였다. 백범 김구 선생은 미군정과 친일파들의 교묘한 국면전환 술책에 이용당한 나머지 해방정국의 반탁활동을 후회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무분별한 반탁운동을 비판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김구 선생에 대해 “김구 선생은 독립투사였고 절세의 애국자였지만 정치인으로는 아쉬운 점이 있었다.”라고 하며 ”신탁통치를 무조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시한부 신탁통치를 받아들였어야 했다.”고 지적하였다.
독립운동가이자 의열단 단장이었던 김원봉도 반탁운동을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에 비유하여 비판하였다. 김원봉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프랑스 함대와 미국 함대를 격퇴시킨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는 그 나름대로 민족적, 국수주의적 견지에서 통쾌한 일이었지만, 세계정세에서 살펴보면 민족의 장래를 그르치게 한 어리석은 짓”이라고 하였다. 반탁운동 역시 글자 자체만 해석한다면 외세를 반대하는 것이지만, 당시 정세를 살펴본다면 그것은 미군정과 친일파의 의도에 이용당해 버린 것이란 뜻이다.
개헌은 기득권의 신분세탁 카드
지금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일고 있는 개헌논란도 해방정국의 찬탁/반탁 논란과 유사하다. 무려 1000만의 촛불이 타올라 박근혜 탄핵, 부역자 처벌, 새누리 해체, 적폐청산의 목소리를 높였다. 90% 이상의 국민이 박근혜 정권을 반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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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대한민국을 살 맛 나는 세상으로 만들자는 압도적 국민의 열망이 기득권세력을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박근혜는 직무정지가 되었으며 최순실은 구속되었다. 이재용은 가까스로 구속을 피했지만, 김기춘, 조윤선이 구속되며 특검이 박근혜를 수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1945년에는 친일파들이 매국노로 몰렸듯이, 2017년에는 기득권세력이 ‘적폐’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1945년에 친일파들이 ‘반탁’운동으로 애국자 코스프레를 하며 신분세탁을 하였듯이, 마찬가지로 2017년에도 박근혜 부역자들은 ‘개헌’운동으로 애국자 코스프레를 하며 신분세탁을 시도하고 있다.
손학규를 비롯한 일부 야권 인사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턱대고 개헌논란에 뛰어든 나머지 현 ‘적폐’세력들이 신분세탁을 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에 일조하고 있다. 이는 마치도 무분별한 반탁운동으로 친일파에게 이용당한 백범 김구 선생의 우를 다시 보는 듯하다.
해방정국의 우를 다시 범하면 안 된다. 일부 야당 정치인들이 ‘개헌’으로 정국을 주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지금 정국은 ‘개헌’이 아니라 ‘촛불’이 주도하고 있다. 지금 거론되는 ‘개헌’은 적폐로 내몰린 박근혜의 부역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신분세탁의 술수가 숨어있다.
현 정국에서는 일체 개헌 논의를 중단하고 박근혜 즉각 퇴진, 민주정부 수립에 매진할 필요가 크지 않은가. 그리고 개헌이 정 필요하다면 대선 이후에 차분히 토론해서 민주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맞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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