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땅’ 오키나와를 가다 ⓶요미탄손(読谷村) 홈스테이 체험

‘진보 오타쿠’의 일본이야기 <정치>
지난 2015년 8월 1일부터 8월 3일까지 2박 3일 동안 오키나와(沖縄)에서 지냈습니다. 처음 마주하는 이채로운 풍경에 감탄하면서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정리해 소개합니다.

▲ 요미탄손 문화센터 오키나와를 떠나는 마지막 날 송별회가 열린 장소.

마을주민들이 모두 나와 손을 흔들며 배웅하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⓶요미탄손(読谷村) 홈스테이 체험

땡볕이 몹시도 뜨거웠던 어느 한여름 날 오키나와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일본학과 3학년 재학생이었던 저는 학과 교수님의 권유로 주한일본대사관이 선발하던 ‘재외공관 선발 한국청년방문단’에 지원했습니다. 그리하여 2015년 7월 29일부터 8월 7일까지 9박 10일간 일본 연수를 갔습니다. 일본인들도 아무나 못 간다는 그 ‘꿈의 휴양지’ 오키나와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얼떨떨하면서도 설렜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도를 펼쳐보면 일본열도보다는 오히려 타이완과 훨씬 가까운 오키나와는 아열대 지방입니다. 현지에 가니 초록빛깔 도마뱀이 가정집에서 기어 다녀 놀랐고 보름달이 한국에서보다 참 크고 또렷해 감명 깊었습니다. 푸르른 비취색을 뽐내는 바닷가에 발을 담그고는 “내가 정말 여기에 와있구나”를 실감했습니다. 차창 밖으로는 ‘망고 팝니다’란 내용의 입간판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오키나와의 거리는 일본 내 여타 지역과도 남다른 이채로운 분위기를 물씬 풍겼습니다.
오키나와에 가기 전 여러모로 사전조사를 했습니다. <오키나와로 가는 길> 등 오키나와 관련 서적을 읽고 일본 사이트를 검색해 봤습니다. 일본열도에서 한참 남서쪽에 위치한 곳으로 1879년까지는 독자적인 문화를 뽐내던 류큐(流球)왕국이 번성했던 곳.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과 일본이 다툰 치열한 전장이었고 오늘날은 미군기지가 주둔한 곳. 미군 관련 범죄 속출에 불안한 나날이 이어진다는 소문, 주민들은 오키나와를 ‘우치나’라고 일컬으며 옛 문화를 이어오고 있다는 정보를 머릿속에 챙겼습니다.
우치나말(오키나와 사투리)도 어설프게나마 익혔습니다. “하이사이(안녕하세요)” “니훼데비루(고맙습니다)” “멘소레(어서오세요)” 등등 도저히 일본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울림을 주는 우치나의 표현들. 오키나와를 알아갈수록 새로웠고 씁쓸했습니다. 기존에 제가 파악하던 일본은 오키나와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존재 할 수 없었다고 해야 맞을 테지요. 일본에 병합된 오키나와는 일본이면서도 일본이 아닌 지역으로 다뤄져 왔습니다.
식민지조선을 지배하던 1940년대의 일제가 조선인을 일본인과 동급으로 대우하겠다며 내선일체(內鮮一體) 정책을 펼치겠다고 했으나 그 실상은 조선인의 전쟁동원을 위한 명분 쌓기였습니다. ‘우치난추도 식민지 조선인들과 닮은 차별을 겪었겠구나’라는 아찔함이 등줄기를 타고 스쳐갔습니다. 하지만 막상 직접 오키나와를 찾았을 때 날은 무척이나 푸르렀고 온갖 상점이 즐비한 번화가는 왁자지껄했습니다. 과거와 오늘이 단절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안타까우면서도 들뜬 마음을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습니다.
도쿄(東京) 소재 하네다공항에서 오키나와 소재 나하(那覇) 공항까지 2시간 30분 남짓 걸렸는데요. 오키나와의 중심지인 나하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홈스테이 장소인 요미탄손까지 가는 데에는 아마 4시간 이상 걸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버스에 줄곧 갇혀 있어 답답한 몸이 비명을 지르던 차에 다행히도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소마(相馬) 씨 가족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남자 대학생 4명은 소마 씨 댁 다소 비좁은 2층 방에 묵었습니다. 어머님은 제가 니훼데비루라고 답하자 “니훼데비루라고 했어”라며 반기셨습니다. 오키나와에서도 명성 있는 도자기 공방을 운영하는 소마 씨 가족은 본래 요코하마에 거주하다 오키나와로 이주했다고 했습니다. 즉 소마 씨 가족은 원래부터 우치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치나의 정체성을 오롯하게 이어가고자 한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후 저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던 어머님은 미군이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상황을 비판하시면서 분개하기도 했습니다.
첫 식사로 오키나와 전통의 오키나와소바(뜨거운 돼지고기 육수를 부운 국수), 매우 쓴 맛이 나는 채소 고야로 만든 냉면을 대접 받았습니다. 뜨끈뜨끈하고 담백한 오키나와소바는 어딘지 익숙한 맛이었지만 시큼하면서도 씁쓸한 고야 냉면은 맛을 보고 바로 질겁했습니다. 어색한 분위기 속 엉겁결에 식사를 마치고 준비한 선물을 드리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저는 개발이 한창 진행되기 전 제주도의 초가집과 주변 풍경을 담은 사진집을 한지로 포장해 선물했습니다.
따님인 치에 씨가 먹거리인 ‘김’을 훨씬 좋아하는 표정을 바로 앞에서 보고 조금은 마음이 상했습니다만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겼습니다. 흔히 일본인들은 속내를 숨긴다고 하는데 치에 씨는 표정과 태도에서 솔직함이 풍겨 상당히 놀랐습니다. 그 때는 미처 몰랐지만 나중에 미군들이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니던 오키나와의 분위기를 떠올려 봤습니다.
소마 씨 가족과 지낸 마지막 날에는 ‘아메리칸 빌리지’를 찾았습니다. 미군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미제 상품들이 많았습니다. 저녁으로 소마 씨 가족이 적극 추천한 음식점에서 갈릭버터볶음밥을 먹었는데요. 글쎄.. 고추장 얹어 참기름 한 방울 톡 떨어트린 비빔밥의 맛이 정말 그립더군요. 소마 씨 가족이 식사를 하면서 “파쿠상 다이죠부?(박씨 맛 괜찮아요?)”라며 제 반응을 계속 살피기에 “괜찮다”고 답했습니다. 솔직히 별로 추천 드릴 맛은 아닙니다.

 

▲ 아메리칸 빌리지
식사 후 저녁나들이 삼아 소마씨 가족과 아메리칸 빌리지 근처 바닷가를 걸었습니다. 벼룩시장에서 일본 만화계의 거장 테즈카 오사무(手塚治虫)의 자서전을 100엔에 구입했습니다. “팔았다”며 활짝 웃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봤습니다. 기뻤습니다. 한편으로는 미국 문화를 적극 받아들이는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의아했습니다. “미군을 거부하면서도 갈릭버터비빔밥과 스테이크를 즐기는 까닭은 왜일까, 모순이 아닌가?” 고민해 봤습니다.
어머님 같이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미군 기지에 비판적이지만 젊은 세대의 생각은 다른 듯했습니다. “이런 티비 한국에도 있어요?”라는 질문으로 저를 당황하게 한 치에 씨처럼 복잡한 세상사에 큰 관심 두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테지요. 그래도 치에 씨는 한식집에서 먹은 나물이 맛있었다며 우리의 기분을 살펴줬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던 치에 씨의 딸인 린카도 처음 보는 덩치 큰 한국 대학생 4명을 잘 따라줬습니다.
미군 문제에 대한 세대별 인식차이는 있을지언정 미국의 문화 자체는 적극 받아들이는 오키나와의 모습.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미군의 영향으로 기름진 고기를 섭취하는 식습관이 생긴 오키나와의 비만율은 일본 최고치입니다. 한 때 일본이 자랑하는 장수촌으로 명망 높았던 오키나와는 미국 식습관의 영향을 받아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만약 미군 기지를 오키나와에서 내보내면 풍요로운 미국 문화를 더 이상 누릴 수 없을 거라는 지적이 크게 불거진다면 우치난추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오키나와의 모든 사람들이 미군기지 이전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기에 이런 질문은 중요합니다. 사실 1945년 미군이 오키나와를 점령하는 사건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민은 할 필요조차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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