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해진 '6.15'의 기억, 나에게 쓰는 통일편지

남북대화가 차단된 지난 9년

2000년 6월 15일 남북 정상은 평양에서 손을 맞잡았다. ‘만났으니 통일이다’라는 뭉클함이 TV화면을 통해 힘차게 울려 펴졌다. 하지만 또다시 6월 15일을 맞은 2017년 현재 그 기억은 거의 파묻혔다. 당시 11살이었던 난 28살의 어른이 되어 돌이켜본다. 촛불혁명이 한창 진행 중인 지금 한반도 평화통일이라는 커다란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맞잡은 손 들어올린 남북정상 지난 2000년 6월 14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금강산 목란관에서 만찬을 가진 뒤 남북공동선언문에 합의했다. ⓒ 김대중평화센터

왜 한반도 평화통일을 커다란 도전이라 말하는가. 나는 지난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간 남북대화를 스스럼없이 내건 김대중, 노무현의 민주정부를 만났다. 2009년부터 2017년까지는 남북대결을 아랑곳없이 내건 이명박, 박근혜의 수구정부를 겪었다. 내 학생시절과 어른시절은 두 정부의 궤적과 정확하게 맞물렸다. ‘이명박근혜’ 9년 동안 정말 힘든 나날이 이어졌고 분노하기에도 바빴다. 고백하건대 구색은 좋아 보이는 평화통일을 생각할 틈일랑 없었다.

광우병 파동,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 사망,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이르기까지. 민중을 개돼지로 업신여긴 수구정부는 잔인했다. 지극히 상식적인 비판에 ‘종북’이라는 낙인을 찍고 국가폭력을 자행한 제 2차 유신의 시대. 그러한 시대를 우두커니 통과할 수 없었기에 촛불을 들었다. 그렇게 이명박 정부가 쇠고기 검역 주권을 저버려 태동한 2008년 광화문광장의 촛불집회는 2017년 “박근혜는 퇴진하라”를 부르짖는 1700만의 촛불혁명으로 나아갔다.

국민은 “촛불혁명을 실현하겠다”고 밝힌 대통령 문재인을 촛불의 대리자로 선택했다. 문재인 정부는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민정수석으로 기용, 검찰개혁 의지를 드러내며 적폐청산의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또한 우리민족이 주도하는 평화통일을 내건 6.15남북공동선언을 계승하겠노라고 선언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5.24 조치로 단절된 민간접촉도 대거 승인했다. 드디어 평화통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짬이 생겼다.

6.15공동선언발표 16돌 기념 민족통일대회 지난해 6월 15일 임진각에서 6.15공동선언발표 16돌을 기념하는 민족통일대회가 열렸다. ⓒ 6.15남측위원회

알면 알수록 눈앞이 캄캄해지더라. <개성공단 사람들>의 저자 북한·통일문제 전문가 김진향 박사가 “매일 작은 통일이 이뤄진다”고 밝힌 개성공단은 평화통일의 밑거름이었다. 반세기 넘도록 분단체제가 지속됐지만 남과 북의 마음은 통했다. 더구나 한국 기업의 자금력과 북한 노동자들의 노동력이 더해진 개성공단은 남북 경제화합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박근혜 전 정부는 북한 흡수통일을 내걸며 대화의 문을 쾅 닫아버렸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북한의 토지개발에만 쏠린 천박한 인식에 매몰된 조치였다.

지난 3월 29일 <뉴시스>에 따르면 당초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 반대했던 통일부는 당시 박근혜 정부의 입김에 꼬리를 내렸다. 대북대결을 강조하는 통일부를 가리켜 ‘통일 반대부’라는 굴욕의 꼬리표가 붙었다. 주무부처가 제 역할을 못 하는 상황에서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했다. 한반도, 나아가서 동북아시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미국의 대북정책을 면밀히 검토해야 했지만 통일부는 ‘세월아 네월아’ 우두커니 위기상황을 보고만 있었다.

남북대치가 장기화되면서 한때 ‘4월 전쟁 위기설’이라는 유언비어도 떠돌았다. 이런 와중에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국방부장관 등은 텅 빈 청와대 대신 제멋대로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는 군사농단을 저질렀다. 북한과 중국은 이에 거세게 대응했다. 균형을 잃은 대한민국의 국제외교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대북대결이라는 이름의 위험천만한 연쇄의 고리를 싹둑 끊어내지 않는 한 전쟁은 일상이 된다.

평화통일의 숨결을 6.15에 다시 불어넣자

한반도 평화통일은 ‘게임’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적을 모조리 죽여 승리하면 그걸로 끝인 <스타크래프트>는 현실이 될 수 없다. 동포 간 전쟁에서 승리자가 존재할 수 있나? 초토화 된 한반도에서 목숨을 잃은 숱한 사람들에게 대한민국 정부가 이겼으니 안심하라고 기만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남북대화를 방해하는 암초가 많다고 어떤 이들은 말한다. 핵실험을 일삼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북한이 ‘도발’을 밥 먹듯이 하고 있고 UN이 북한을 제제하고 있는 만큼 관계 회복은 시기상조라고 말이다. 그런데 남북이 평행선을 달렸던 지난날을 떠올려보자. 대화가 전무했던 상황에서 도대체 어떠한 해결책이 나왔나? 일단 허심탄회하게 만나서 대화해야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은 마땅한 상식이다.

마침 6.15 17돌을 맞았다. 이를 계기로 허심탄회한 남북대화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민간단체의 대북접촉을 허가하는 문재인 정부의 반가운 발표가 있었다. 6월 민주항쟁 기념식에서는 박원순 시장의 “6월의 주역인 우리세대가 통일을 이루자”는 메시지가 가슴을 울렸다. 그렇게 한국사회 내부에서 한동안 분단되어 있던 민주항쟁의 6월과 평화통일의 6월은 다시 손을 맞잡았다.
이제 얼어붙었던 6.15에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어 되살릴 때다. 그를 위해 우선 남과 북은 6.15 남북공동선언문에 담긴 사항들을 발 빠르게 실행에 옮겨야 한다. 늦기 전에 흩어진 가족들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해 ‘이산가족 상봉’이 아닌 정기화된 만남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경제협력 활성화와 더불어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교류를 발판삼아 서로의 신뢰를 다질 수 있도록 첫 단추를 꿰어야 한다.

6.15공동선언발표 16돌 기념 민족통일대회 지난해 6월 15일 임진각에서 6.15공동선언발표 16돌을 기념하는 민족통일대회가 열렸다.ⓒ 6.15남측위원회

6.15선언 당시 초등학교 3학년생이었던 나는 남북정상의 만남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맞잡은 손을 번쩍 들어 환한 미소를 내뿜던 장면은 나중에 ‘유튜브’를 통해 시청했다. 신냉전의 각축장이 되어가는 현재 한반도를 떠올렸다. 그리고 평화와 공존이 넘실거렸던 6.15의 소중함을 마음속에 간직했다. 나와 소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든든한 집 한반도. 그리고 우리겨레가 경술국치를 눈앞에 두고 열강 사이에서 쩔쩔매던 20세기 초엽의 상황을 또다시 맞닥뜨리고 있다.

단순히 조심만 해서는 이 험난한 풍파를 넘어설 수 없다. 이제는 도전에 나서 이 땅에 흔들림 없는 평화통일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어린 아이들의 마음에 숨결을 불어넣는 교육이 현장에서 병행되어야 한다. 2017년부터는 통일한반도의 새싹들이 6.15의 기억을 밑거름 남아 푸릇푸릇 돋아나기를 바란다. 6.15에서 2007년의 10.4 남북정상선언으로, 10.4에서 머지않은 미래의 평화통일협정으로 우리역사는 거뜬히 큰 한걸음을 내딛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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