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학교 무상화를 거부한 일본법원의 ‘후안무치’

일본정부의 주장에 힘 실어준 일본법원

조선고급학교(고등학교) 학생 등이 학교를 수업료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한 일본정부의 조치가 헌법에 위반된다며 제기한 소송에 대해 일본법원이 정부의 손을 들었다. 이번 판결은 정부의 조치가 민족교육을 배우는 조선학교 학생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는 가운데 내려진 첫 판결로 파장이 거세질 전망이다.

▲지난 7월 19일 ‘조선학교 무상화 판결’이 나기 전 히로시마 지방재판소 앞에 도착한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조선학교의 무상화를 호소하고 있다. ⓒ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일본 학교교육법에 따르면 조선학교는 지자체의 인가를 받은 각종학교다. 일본인이 다니는 학교에 준하는 교육과정을 도입했으며 학생들은 ‘조선’의 역사 등을 배운다. 문부과학성(교육부)은 2016년 5월 1일 기준 조선고급학교는 11개교가 있으며 1389명이 재학한다고 밝혔다.

지난 7월 19일 히로시마 지방재판소(지방법원)의 재판부는 “조선고급학교가 고교무상화법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삼은 처분은 적법하다”라면서 원고 측의 청구를 기각했다. 소송비 전액은 원고 측이 부담하도록 했다. 이날 오후 4시부터 열린 재판은 불과 15분 만에 끝났다. 원고와 피고 측이 서로 주장의 타당성을 호소하는 ‘법리 공방’은 볼 수 없었다.

학교법인 히로시마조선학원과 히로시마조선고급학교(고등학교)의 당시 재학생 110명은 앞서 지난 2013년 8월 1일 일본정부를 상대로 ▲조선고교의 무상화를 제외한 정부의 조치를 처분할 것 ▲6000만엔의 국가배상금을 지급할 것 ▲무상화의 지정의무화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모두 기각했다.

▲지난 7월 14일 서울시 홍대입구역 인근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몽당연필 페스티벌’에 참가한 아이들.행사는 1인극, 조선학교 사진 전시회, 배우 권해효와 함꼐하는 몽당연필 토크 콘서트 등으로 진행됐다. ⓒ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최근 4년 동안 17회에 걸친 구두변론이 제기된 재판에서는 히로시마조선학원이 법령에 맞는 학교운영을 하고 있느냐가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원고인 조선학원 측은 정부가 조선고교를 무상화 대상으로 규정한 문부과학성의 성령(省令)을 삭제하는 등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을 정식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정부의 정치적, 외교적 이유에서 국제인권법 등에 어긋나는 차별적 취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 측은 국내외 보도와 공안조사청의 보고서 등을 근거로 제시하며 “북한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등과의 밀접한 관계가 의심되며 취학지원금이 수업료로 쓰이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정부 측의 주장이 적법하며 문부과학성이 재량의 범위를 일탈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조선총련의 강력한 지도 하에 있는 자가 총련을 위해 학원의 자산을 유용한 과거가 있다”고 지적하며 정부의 주장에 힘을 싣는 모습도 보였다.

▲지난 7월 20일 ‘조선학교 무상화 기각’이라는 결과를 받아든 히로시마 조선고급학교 학생들과 관계자들이 ‘판결 선고 보고 집회’를 가졌다. ⓒ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결과가 나오자 조선학원 측은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다. 변호인단의 아다치 슈이치(足立修一) 대표변호사는 “판결은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베껴 일본의 학교와 조선학교와 간에 명확한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원고의 생각을 어떻게 하면 재판소가 이해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히로시마조선고교의 김영웅 교장은 성명을 통해 “조선학교만을 공적 조성제도에서 배제하는 것은 민족교육의 권리를 부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재일조선인은 차별을 당해도 당연한 존재이며 나아가서는 국가의 뜻에 따르지 않는 이는 차별을 해도 좋다는 풍조를 국가가 선동하는 것이다. 왜 스스로의 뿌리를 배우는 것이 이런 형태로 부정되어야만 하는 것인가”라며 강하게 성토했다.

무상화에 대한 엇갈린 언론 반응

‘무상화 소송 기각’ 판결이 나오자 일본 언론의 입장은 엇갈렸다.

지난 7월 20일 산케이신문은 유력 일간지 중 유일하게 관련 기사를 1면에 배치했다. ‘조선학교 인정 않은 히로시마지방재판소 ‘총련에 유용혐의’ ’라는 제목을 내건 해당 기사는 “조선총련의 지도에 따라 학원의 명의와 자산을 유용한 과거가 있으며 그러한 사태가 이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밝힌 재판부의 발언을 강조했다.

또한 신문은 ‘민족교육을 받을 권리를 포함한 학습권과 헌법상의 평등권 침해’를 강조한 조선학원 측의 주장에 대해 “(무상화의 적용제외는) 지급요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민족을 이유로 삼은 것이 아니며 위헌이 아니다”라고 한 재판부의 입장을 소개했다. ‘세월호 7시간’ 보도로 유명한 이 신문의 논조는 극우로 분류된다.

같은 날 마이니치신문은 사설을 통해 “사회전체에서 아이들의 성장을 지탱하도록 하는 (교육)제도의 이념에 예외가 인정되는가를 다퉜다”고 운을 떼면서 이번 판결이 과연 타당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사설은 조선학교는 일제 패망 직후 재일조선인 어린이에게 ‘조선어’를 가르치기 위해 각지에 설립된 국어강습소가 그 전신이라며 의의를 설명했다. 아울러 조선학교는 다른 국제학교와 마찬가지로 ‘각종학교’에 해당돼 무상화의 대상이 맞다고 부연했다.

다만 사설은 재판부가 조선학교와 북한이 연계됐다고 한 정부의 주장을 인정하고 있다며 이와 관련, 조선학교 측이 우려를 씻기 위해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반면 재판부가 일본정부의 입장에 동조해 잘못된 판결을 내린 점을 지적하며 조선학원의 ‘조건 없는 무상화’를 옹호하는 보도도 나와 시선을 끌고 있다.

7월 21일 아사히신문은 사설을 통해 “교육의 기회를 공평하게 보장한다는 제도의 이념으로 되돌아가 판단해야만 하는데 너무나도 조잡한 논리에서 도출된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사설이 제기하는 판결의 문제점은 세 가지다. 첫째로 ‘조선학교가 조선총련의 부당한 지배를 받고 있다’고 지적한 재판부가 실태파악에 온 힘을 쏟았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것. 설령 조선학교가 조선총련과 관계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부당한 지배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란 지적을 재판부가 간과했다는 설명이다.

둘째로 재판부가 소명을 요구한 조선학원 측의 입장을 물리친 사례도 도마에 올렸다. 사설에 따르면 조선학원 측은 조선고교의 증인심문과 학교현장의 (직접) 검증을 요구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법정에서 수업내용을 촬영한 비디오영상을 보는 것으로 대체했다.

사설은 이는 원고와 피고 쌍방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선학교와 조선총련의 관계자를 증인으로 채택해 법정에 소환하거나, 일본정부가 조선학교에서 조선총련으로 흘러간 자금이 부당하게 사용됐다고 주장한 만큼 재무자료를 제출케 해 검토해야 했으나 구체적인 확인이 전혀 없었다는 지적이다.

셋째로 이 같은 재판부의 판단은 정치, 외교적으로 직접관계가 없는 조선학교의 학생에게 ‘제재’를 가한 것과 다름없다는 점을 쟁점으로 다뤘다.

사설은 중화학교와 브라질인학교를 비롯해 40여 개의 외국인학교가 일본정부에 무상화를 신청했고 받아들여졌는데 조선학교만 신청을 거부한 것은 이를 우려하는 유엔 산하 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입장을 외면했다고 봤다. 그러면서 학생들의 배울 권리와 관련된 교육행정의 공평성을 담보하기 위해 향후 고등법원이 올바른 판결을 내리길 기대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무상화제도는 지난 2010년 4월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이 도입한 정책이다. 고교수업료무상화법에는 공립고등학교가 아닌 조선학교 등의 ‘각종학교’에도 취학지원금(1인당 해마다 11만8800엔)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민주당은 북한이 대연평도를 포격했다는 이유로 조선학교에 대한 심사를 보류했다. 이후 2013년에 집권한 자민당은 ‘북한과의 연계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히로시마조선고교를 포함한 조선학교 10곳을 무상화 대상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무상화 재판의 첫 판결이 기각되면서 다른 지역의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재 재판은 히로시마를 포함해 토쿄, 오사카, 후쿠오카, 아이치(나고야) 등 다섯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각각 오는 7월 28일과 9월 13일에 열릴 오사카와 토쿄의 판결을 앞두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조선학교 해설

조선학교는 일제 패망 직후 일본 각지에 설립된 국어강습소가 그 전신이다. 국어강습소는 조국으로 돌아가기 전 재일조선인의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이후 1957년부터 북한이 조선학교에 재정을 지원하기 시작한다.

다만 2014년 기준 조선학교에 재학 중인 한국국적 재일동포의 비중은 60%에 달한다. 이는 우리말과 역사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조선학교를 제외하고 전무한 상황에서, 조선학교가 일본에서 민족의 얼을 가르치는 유일한 교육기관으로 남았다는 의미다.

초급(초등), 중급(중급), 고급(고등)의 교육과정이 설치됐고 2014년 기준 전국의 조선학교 수는 134곳이다. 일본정부는 조선학교를 ‘비공식’ 기관인 각종학교로 분류한다. 2010년대 들어 일본정부의 보조금 중단, 학생 수 감소, 교육의 질 저하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과 가깝다며 억압받는 조선학교

일본정부는 1955년에 설립된 친북한계 재일동포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이 조선학교의 교육과정에 개입한다는 이유로 조선학교를 의심하고 있다.

앞서 기사에서도 언급했듯이 일본에서는 ‘불량국가’로 인식되는 북한과 가까운 조선학교에 재정을 지원하면, 그 재정이 교육을 위해 활용되지 않고 북한으로 흘러들어가 무기개발 등에 쓰일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조선학교에 대한 ‘혐오 여론’은 일본사회에 퍼져있다. 조선학교는 2007년에 설립된 극우 시민단체인 ‘재일 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의 표적이기도 하다. 재특회 회원들은 조선학교의 운동장을 점거하고 “조선인은 일본에서 나가라”는 등의 폭력적인 행동을 일삼아왔다.

사실 이 같은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사회의 인식은 재일동포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건너와 차별을 감내하며 살아온 역사를 외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조선학교가 한국어(조선어)와 민족교육을 학습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라는 사실은 묻혀버린다. 반면 ‘조선학교는 북한과 가까우니 위험하다’는 생각만이 두드러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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