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8월은 미국의 횡포를 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우리 다시 만나요”

위의 노랫말은 8월 7일부터 ‘주한미군은 떠나라’와 ‘평화여 오라’의 목소리를 높이며 전국을 누비고 있는 반미통일선봉대 ‘한반도 디톡스’의 만남과 작별의 인사입니다. <주권방송>은 지난 8월 10일부터 8월 12일까지 이들의 모습을 동행, 밀착 취재했습니다. 북한과 미국의 맞대결정국으로 사상초유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부산, 광주, 서울의 의미 있는 공간을 오가며 보고 듣고 느낀 취재기(르포르타주)를 부산, 광주, 서울 편으로 나눠 총 3편을 가감 없이 솔직히 전하고자 합니다. 우선 부산의 이야기입니다.

0810 부산 : 서면 도착, 기지개 편 디톡스 대원들

푹푹 찌는 8월의 10일. 먼 부산광역시 서면으로 가기 위해 모처럼 아주 일찍 바깥에 나섰다. 부천역을 거쳐 서울역에 도착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니 오전 7시를 약간 넘은 시간. 출근할 때마다 늘 같은 동선을 유지해 왔기에 일상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들었고 어색했다. 이른 시기에 둥지를 떠나는 ‘아기새’의 기분이랄까. 이제는 익숙해진 왕십리역 아파트단지 부근의 골목길. 과거에는 ‘케이크 아트공예’를 가르치는 제과제빵학원이 있었던 그 곳에 지금은 인터넷매체 <주권방송> 사무실과 그 성원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나는 <주권방송>의 막내기자다.

반미통일선봉대 한반도 디톡스 대원들과 함께 하는 2박 3일간의 동행취재. 첫 번째 목적지는 부산의 서면시장 부근이었다. 서울역 KTX 플랫폼에서 함께 취잿길에 나선 <주권방송> 대표 K님과 만나 자리에 앉아 부산역으로 향하면서 이야기 몇 토막을 주고받았다. 그 중에는 일촉즉발로 치닫는 한반도 정세에 대한 우려도 섞여있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북한과 미국이 치열하게 ‘맞공방’을 벌이는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언론은 어떤 보도를 해야 할 것인가. 결국 이 고민이 나를 동행 취재의 장으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부산광역시 서면 시립 부전도서관 인근 길가 ⓒ 박명훈

한반도 디톡스는 8.15 광복절을 맞아 30대부터 50까지 각 지역에서 ‘반미’와 ‘자주통일’을 내걸고 활동하는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를 비롯한 다양한 세대의 시민단체 회원들이 뭉친 재기 넘치는 연대다. 언뜻 영화에서 볼 법한 독립열사의 분위기 있는 중절모를 빼닮은 챙이 좁은 누런 밀짚모자를 머리에 얹고, 가볍고 바람이 잘 통하는 흰 윗도리를 입고 가슴팍에는 ‘미국의 내정간섭 중단!’이라는 구호가 담긴 팻말을 거리낌 없이 내걸었다.

▲한반도 디톡스의 사회를 맡은 대원이 발언하고 있다. ⓒ 박명훈

디톡스 대원들은 부산 서면 부전시장 앞 횡단보도 근처에서 시민들에게 한국정부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미국의 민낯을 폭로하는 한편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를 통한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더 이상 전쟁위기 없는 한반도의 평화, 나아가서 우리민족이 주도하는 통일을 염원하며 다채로운 활동을 펼쳤다.

전세버스를 타고 부산 서면으로 이동한 20여명의 한반도 디톡스 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짐을 나르며 본격적인 ‘활동 채비’에 나섰다. 구멍 숭숭 뚫린 플라스틱 광주리와 공연용 앰프, 미국의 부당한 개입과 평화통일을 호소하는 발언과 다채로운 시(時)와 그림이 그려진 시화전, 도서 판매,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서명(태블릿PC를 활용한 온라인서명과 A4용지 규격으로 출력한 종이서명) 요청, 남정현 작가의 ‘반미(反美) 소설집’ <편지 한통-미 제국주의 전상서>를 함께 읽는 책읽기 등의 활동이 조를 나눠 동시에 진행됐다.

▲한반도 디톡스 대원들이 거리선전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 ⓒ 박명훈

입추를 지났건만 맹위를 떨치는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대원들의 표정에서는 생기가 맴돌았다. 일정을 시작하고 사흘이 지나서인지 대원들의 몸놀림에서는 다소 지쳐 보이는 기색도 느껴졌지만 서명을 위한 간이테이블을 펼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부터 책과 시와 그림을 전시하는 구도를 이리저리 바꾸며 마당사업을 벌이는 모습까지 하나같이 인상적이었다. 뭐랄까. 20대 청년층에서는 결코 풍겨 나오지 않는 정제되고 세련된 그러면서도 우직하고 안정된 분위기가 일렁였다. 이른바 반미(反美)라는 구호가 거북함이 들지 않았던 비결이다.

매해 8월은 흔히 무더위와 광복절로 기억되지만,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도는 위기상황이 펼쳐지는 전쟁의 계절이기도 하다. 8월 말마다 국군과 주한미군이 북한을 적으로 겨눠 합동 대규모 군사연습을 전개하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훈련이 연례행사처럼 전개된다. 표면적으로는 한미연합사령부의 틀 아래 한·미 양군을 동등하게 통합 지휘한다고 하지만 내실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1953년 이승만 정권이 전시작전권을 미국에 넘겼고 이로 인해 전쟁 발생 시 국군은 철저히 미군에게 예속된다. 당연히 실제전쟁을 가정하고 전개되는 을지훈련에서 실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미군이다. 즉 한미연합사의 지휘체계는 미군이 장악하고 있다.

이는 전쟁 발발 시 한국정부가 전쟁에 대한 어떠한 권한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증명한다. 1953년 7월 27일 6.25전쟁의 막을 내린 정전(停戰)협정의 주체는 북한군과, 중국군, 미군을 필두로 한 유엔군이었다. 권한을 송두리째 넘긴 한국군의 역할은 고작 미군에게 철저한 보조를 맞추는 정도에 머물렀다. 현재 북한이 한국과의 직접대화가 아닌 미국과의 전면 대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북한이 풀어야 할 가장 긴급한 숙제는 정전협정으로 맺어진 북미관계의 재조정이지, 동족인 한국과의 대화는 아니라는 씁쓸한 현실.

▲한대련 통일대행진단 단원이 사드배치 반대 등을 내건 피켓을 들며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서명동참을 요쳥하고 있다. ⓒ 박명훈

현 미국 대통령, 그러니까 도널드 트럼프의 “전쟁이 일어나면 한반도에서 수천 명이 죽을 것”이라고 한 ‘막말’은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에 대한 세간의 우려, ‘반미 감정’에 다시금 거센 불길이 일고 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미국은 한반도의 매 순간순간을 좌우해 왔다. 2002년 여중생 효순, 미순양이 미군 장갑차에 있는 짓눌려 별이 되었을 때, 2009년 광우병 검역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위험한 미국산 소고기가 한국에 수입될 것이라는 소식이 일파만파 퍼졌을 때, 북한의 ICBM을 방어할 수 없는 ‘무용지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경상북도 성주군 소성리에 속전속결로 배치 될 때 이 땅의 시민들은 분노했고 함께 촛불을 들었으며 세상의 변화를 소망했다.

지난 엄동설한에 촛불을 들었던 대원들은 이번에는 ‘트럼프 아웃’의 기치를 크게 들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가능성을 내비치는 트럼프의 고강도발언과 선봉대의 일정은 딱 맞물려 돌아갔다. 마당사업이 끝나고 나서는 트럼프와 관련된 기사 및 현장에서 이어진 인상 깊은 사진과 발언을 꼽아 카드뉴스로 제작했다. 이를 페이스북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해 지인들에게 알리는 온라인 선전전도 빼놓지 않았다.

▲한반도 디톡스 대원들이 ‘미국의 내정간섭 중단!’ ‘평화협정 체결!’ ‘사드반대!’ 등의 구호가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 ⓒ 박명훈

마당사업을 오후 5시 30분에 마치고 저녁을 먹은 뒤 오후 7시. 서면역 4번 출구 앞에서 대학생으로 구성된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통일대행진단과 함께 하는 반미 문화제가 열렸다. 부산 8부두에는 일제의 악명 높은 731부대의 연구 성과를 활용한 주한미군의 생화학무기 세균전 실험실이 있다. 현장에서는 이에 대해 미국이 한국민을 ‘파리 목숨’보다 못하게 여기고 있다는 지적이 빗발쳤고 호응이 잇따랐다. 이 땅에는 미국이 뿌린 파괴의 씨앗이 아찔하게 자라나고 있다. 100만 명쯤은 우습지 않게 학살할 수 있을 만큼 막대한 양.

‘주한미군 집에 가라’ ‘촛불의 명령이다 미국적폐 청산하라’라는 구호, 어딘가 어설픈 중장년층 대원들이 도저히(?) 보여줄 수 없었던 대학생들의 파릇파릇하고 산뜻한 율동, 가수 바비킴의 노래 ‘사랑 그놈’을 개사해 미국의 횡포를 풍자한 ‘미국 그놈’ 공연을 끝으로 부산에서의 활동이 마무리됐다.

▲한반도 디톡스 대장 H님이 대학생들에게 자양강장제를 건네며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 한반도디톡스문화예술팀

디톡스 대장 H님이 대학생들에게 활기찬 응원의 인사말을 밝게 전하면서 ‘사랑하는 후배들 잘해쓰’라는 애정의 문구를 담은 스티커를 덧붙인 자양강장제를 건네주는 모습을 봤다. 선배에서 후배에게 전해지는 진한 마음이 기분 좋다는 느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존재가 여전히 한국에서 엄혹한 현실로 남아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깐 동안 그대로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 한반도 디톡스와 한대련 통일대행진단의 조화가 어우러진 흥겨운 장면 ⓒ 박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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