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공존체제]아인슈타인의 후회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하지만 그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글쓰기를 생각해본다.
– <외딴방>, 신경숙

1장. 트리니티 테스트(Trinity Test)

#1 아인슈타인

“그래, 한 번 얘기 좀 해 보게. 이건 자네가 완성한 이론 아닌가.”

실라르드는 아인슈타인을 재촉했다. 아인슈타인은 할 말이 없었다. 이들이 정말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않은가. 다만 그는 질량이 줄어들면서 엄청난 에너지가 나온다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이토록 빨리 현실에서 응용될 줄은, 그리고 그것이 제일 먼저 신무기 개발에 이용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을 뿐이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실라르드의 요청을 받아들여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에 서명했다. 이 편지가 훗날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불러올지는 당시만 해도 아무도 몰랐다. …

상대성이론과 여러 현대 물리학의 출발을 열었던 아인슈타인은 각국의 초빙을 받으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미국의 뉴저지 프린스턴에 새로 설립될 고등연구소 교수 제안을 받은 아인슈타인은 1933년 이곳을 자신의 여생을 보낼 곳으로 선택했다. 그 시기 아인슈타인의 모국인 독일은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총리로 임명된 히틀러는 군국주의와 유태인 박해에 매달렸다. 유태인이었던 아인슈타인은 독일 시민권을 포기하고 미국에 망명했고, 히틀러 정부는 아인슈타인의 재산을 몰수하고 현상금까지 내걸었다. 히틀러의 광기를 피해 미국에 정착했지만 아인슈타인의 근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당시 독일에서는 핵물리학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중세 유럽의 연금술사들이 납으로 금을 만들려다 결국 실패했지만 핵물리학자들은 실제로 금속 종류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 비결은 바로 중성자다. 원자의 종류를 결정하는 건 원자핵이고,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다. 정확히 말하면 양성자의 개수가 원자의 종류를 경정한다. 그런데 원자핵에 중성자를 쏘면 충돌해 중성자 개수가 늘어나고 다시 중성자가 양성자로 변하면서 원자의 종류가 바뀐다. 예를 들어 양성자 개수가 78개인 백금 원자에 중성자를 하나 붙이면 중성자 개수가 하나 늘었다가 양성자로 바뀌면서 양성자 개수가 79개인 금 원자가 된다. 물론 백금이 금보다 더 비싸기 때문에 이런 걸로 금을 대량 생산하지는 않는다.

핵물리학자들은 원자핵 반응을 통해 새로운 원자핵들을 만드는 재미에 빠졌다. 자연에 존재하는 가장 무거운 원소는 우라늄이다. 물론 우라늄보다 더 무거운 넵투늄이나 플루토늄도 있기는 하지만 너무 희귀해서 보통은 우라늄을 가장 무거운 원소라고 부른다. 우라늄에 중성자를 쏘면 자연에 없는 인공원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핵물리학자들은 우주의 창조자가 된 기분으로 새로운 인공원소를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 독일의 과학자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도 마찬가지였다. 1938년 이들은 우라늄에 중성자를 쐈는데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엉뚱하게 우라늄보다 훨씬 가벼운 원소들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고민 끝에 중성자에 맞은 우라늄 원자핵이 쪼개졌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우라늄 원자핵이 쪼개지면서 중성자가 튀어나왔고 이게 다른 우라늄 원자핵을 쪼개는 연쇄반응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질량이 줄어드는 괴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줄어든 질량은 에너지로 전환되는데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르면 그 양이 화학반응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했다. 만약 이걸 무기에 사용한다면? 화학반응을 이용한 다이너마이트와는 차원이 다른 폭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1939년 4월 독일은 원자력 프로젝트를 개시했고 자신들이 점령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우라늄 광산 판매를 중단시켰다. 본격적인 핵폭탄 개발을 암시했다. 핵폭탄 이론의 아버지 실라르드는 아인슈타인을 찾아갔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 발발이 초읽기에 들어갔고 만약 히틀러가 핵폭탄을 만들면 인류는 끔찍한 상황을 맞을 것이라고 아인슈타인을 설득했다. 이들은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핵무기 개발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기로 하였다. 실라르드, 텔러, 위그너가 편지를 썼고 아인슈타인이 함께 서명을 했다.

1939년 8월 2일 루스벨트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렸다.

“지난 4개월 동안 미국의 페르미와 실라르드, 그리고 프랑스의 졸리오의 연구 성과에 따르면, 많은 양의 우라늄으로 핵분열 연쇄반응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 보입니다. 이 연쇄반응은 엄청난 에너지와 대량의 새로운 원소를 만들어냅니다. 이는 가까운 미래에 확실히 가능한 일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엄청나게 강력한 새로운 유형의 폭탄 제조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폭탄은 단 한 발만 보트에 실어 항구로 보내 터트리면, 항구 전체와 주변 지역을 파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이 편지는 즉각 전달되지 않았다. 누구를 통해 보낼지가 문제였다. 그러는 사이 9월 1일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루스벨트와 친분이 있는 알렉산더 삭스가 편지를 전달한 건 두 달도 더 지난 10월 11일이었다. 그런데 루스벨트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가 볼 때는 세상 물정 모르는 과학자들이 확실하지도 않은 정보를 가지고 호들갑떠는 것 같았다. FBI는 아인슈타인을 신뢰할 수 없다고 보고했다.

답답해진 아인슈타인은 1940년 3월 7일과 4월 25일에 또 다시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보냈고 대통령 과학 자문역인 버니바 부시와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도 루스벨트를 압박했다. 여기에 핵무기 개발을 의결한 영국 우라늄위원회(MAUD) 결론을 전달받은 루스벨트는 그제야 핵무기 개발을 승인, 일본의 진주만 공습 하루 전 날인 12월 6일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무려 2억 달러, 지금 가치로 대략 25억 달러 정도의 예산이 투입됐다.

#1-1 아인슈타인의 후회

아인슈타인은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보내 핵무기 개발을 독촉한 것을 두고, 자기 인생의 최대 실수 가운데 하나라고 자책했다. ‘억제용’으로만 사용될 것으로 믿었던 핵무기가 실제로 사용되고 또한 핵무기 경쟁이 격화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것이다. 사실 아인슈타인은 서명만 했지 편지를 직접 쓰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편지가 루스벨트의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내가 만약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일을 예견했었다면, 1905년에 쓴 공식을 찢어버렸을 것이다.”

“총알은 사람을 죽이지만, 핵무기는 도시를 파괴한다. 탱크로 총알을 막을 수 있지만, 인류 문명을 파괴하는 핵무기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핵무기 개발을 촉구한 자신의 선택을 평생 후회하며 핵무기 폐지에 남은 일생을 바쳤다. 1955년 영국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과 발표한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은 훗날 반핵·군축을 논의하는 퍼그워시 회의(Pugwash Conference)의 계기가 되었다.

“가장 권위 있는 사람들 모두가 만장일치로 공감하는 견해에 따르면, 수소폭탄을 사용하는 전쟁이 한 차례만 일어나더라도 인류가 종말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

이제 우리는 여러분에게 적나라하고도 무시무시하고도 피할 수 없는 문제를 제시하겠다. 인류는 종말을 초래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전쟁을 포기할 것인가? …

여러분의 인간다움을 상기하라. 그런 다음에 나머지는 모두 잊어버려라.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새로운 낙원으로 향하는 전망이 열릴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인류 전체가 멸종당할 위험이 여러분 앞에 다가오게 될 것이다. …

향후에 세계 대전이 일어날 경우, 핵무기가 틀림없이 사용될 것이고, 그러한 무기가 인류의 지속적인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세계의 모든 정부는 자국의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세계 대전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자각하고 공식적으로 인정할 것을 촉구한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들 사이에 발생하는 모든 분쟁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서 평화적 방법을 강구할 것을 촉구한다.”

– 러셀-아인슈타인 선언(The Russell-Einstein Manifesto) 중에서


한반도 핵문제의 시원과 역사, 그리고 새로운 단계를 그린 팩션 [핵공존체제]

1장. 트리니티 테스트(Trinity Test)
아인슈타인의 후회
스탈린의 걱정
히틀러의 핵개발을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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